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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2019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무용 따위’ 하다가… 폭 빠져 들었네요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

‘무용 따위’ 하다가… 폭 빠져 들었네요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




10월 2일 예술의전당서 시댄스 개막
독일 등 40여 나라에 한국춤 알려



오는 10월 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제22회 서울세계무용축제(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이하 시댄스)가 막을 올린다. 한국은 물론 미국, 영국, 스페인, 덴마크, 이탈리아, 베트남, 르완다, 탄자니아 등 15개국의 무용가들이 참가해 장장 19일 동안 ‘춤바람’을 이어간다. 이종호(불문73-77) 시댄스 예술감독은 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1996년 유네스코 산하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에 취임한 그는 1998년부터 현재까지 회장 겸 예술감독으로 축제를 주최해 오고 있다. 지난 8월 21일 서울 서교동의 사무실에서 이종호 동문을 만났다.

“시댄스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양질의 컬렉션이란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무용축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초기엔 국제무대에서 검증받은 우수한 해외 무용단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주력했었죠. 20세기 발레혁명가로 불렸던 모리스 베자르, 공연계의 이단아 필립 드쿠플레 등 뛰어난 안무가를 초청해 관객들의 안목을 한껏 높여 놨습니다. 한국 무용계에 커다란 자극이 됐죠. 동시에 국내 레퍼토리의 제작·발굴 및 한국 현대무용의 세계 무대 진출을 지원했습니다. 지금은 해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한국 무용도 발전했어요.”

이 동문은 올 한 해에만 10개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독일·이탈리아·체코·러시아 등지에선 ‘코리아 포커스’란 타이틀로 각 나라에 한국 무용을 소개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의 춤을 외국에 알린 것이 40개국, 200여 건에 이른다. 세계 4대 발레 콩쿠르로 꼽히는 ‘로잔 콩쿠르’에 한국인 심사위원 추천 및 한국인 무용가의 참가를 안내했다.
그러나 무용은 비슷한 성격의 공연예술인 뮤지컬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것이 현실. 30여 년 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무용평론가를 겸해 한 발만 담그고 있던 이 동문도 지금처럼 완전히 춤에 빠져들게 될 줄은 몰랐다고.

“2014년 작고하신 고 조동화(약학49-54) 선생의 영향이 컸습니다. 한국전쟁 때 서울약대를 다녔던 분인데 그 시절 발레와 피아노를 배울 만큼 문화예술 분야에 깨어 계셨죠. 그분이 월간 ‘춤’을 발행했습니다. 해외 무용 관련 기사를 번역해 제공했던 것이 인연이 됐죠. 그때도 눈이 무척 높아서 저는 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어요. 중학 시절부터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을 휘저으며 연극과 클래식 음악을 섭렵했으니 무용 따위는 유치했죠.
그런데 시간이란 게 참 무섭더군요. 조 선생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 한 발 담그고 있던 무용계에 허리가 잠기고 어깨가 잠기고 정수리까지 폭 빠져들었으니 말이에요. 어줍잖은 제 평론을 따뜻하게 읽어주는 무용가도 적지 않았고요. 시댄스는 그런 무용가들에게 바치는 감사의 꽃다발이기도 합니다.”

2018년부터 시댄스는 정치적 사회적 주제를 담고 있다. 현대무용을 중심으로 한 무용 예술의 보급과 확산, 인식의 제고라는 초기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평가 위에 감독으로서의 이 동문의 취향을 축제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 지난해 ‘난민’에 이어 올해는 ‘폭력’을 주제로 잡았다.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성차별, 인종차별, 관계의 폭력까지 포괄한다.

수차례 내한 공연을 거쳐 ‘믿고 보는 무용단’으로 자리매김한 벨기에의 ‘울티마 베스’가 개막작을 맡았고, 덴마크의 메테 잉바르첸이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19금 퍼포먼스 ‘69포지션즈’를 선보인다. 관객도 69명만 받는다. 스웨덴·영국·독일·스페인 등 다국적 무용가들이 모여 결성한 ‘스발바르 컴퍼니’는 컨템포러리 서커스를 통해 이성과 본능 사이의 경계를 희롱하며, 노르웨이의 토니 트란과 안테로 하인은 스며들 듯 멀어지는 몸동작으로 분열을 통해 탄생하는 관계와 그에 따른 폭력을 형상화했다.

“시댄스는 일반인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관객의 저변을 넓히고자 추진한 ‘커뮤니티 댄스’를 통해서죠. 전문 안무가와 일반인 참가자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형성된 공감대를 춤에 담습니다. 올해는 한국의 최보결·최병일, 스페인의 페레 파우라가 300여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렇듯 춤은 지식의 수준에 상관없이 즐기는 직관의 예술이에요.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역동적인 매력이 있죠.
이성의 논리로 분석하는 건 평론가들에게 맡기시고, 그저 보고 듣고 느끼는 데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현대무용도 친근하게 다가올 거예요.”

나경태 기자


10월부터 시작하는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예매 및 공연 안내: http://www.sidanc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