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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482호 2018년 5월] 기고 에세이

평창올림픽 봉사활동에서 받은 값진 선물

김치경 (생물교육58-64) 충북대 명예교수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회식을 마친 후 선수단 관리 팀원들과 김치경 동문(세 번째 줄 왼쪽부터 네 번째·중앙 반다비 좌측)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대학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후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2016년 어느 날, 나는 인터넷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 모집광고를 발견했다. 올림픽이 세계적인 스포츠축제란 의미를 생각하니, 나의 경력과 건강이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욱이 이런 기회는 내 평생 다시없을 것 같아 올림픽과 함께 패럴림픽까지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2018년 겨울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개·폐회식 운영요원으로 배정받고 올림픽스타디움에서 50여 일간 선수단을 관리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예년에 없이 추웠던 대관령의 한파와 눈바람을 맞으며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주어진 업무를 열정으로 성실히 수행했다.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패럴림픽도 모범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나니 자원봉사자로서 보람도 있었고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올림픽 개회식을 준비하던 2월 초, 연합뉴스로부터 “여러 국제학회의 임원을 역임했고 대학교수로 정년퇴임한 원로학자가 팔순의 연세에 노익장을 과시한다”면서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요즘 자원봉사자들이 열악한 환경과 처우 때문에 이탈자가 많다는데, 올림픽 자원봉사활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추운 날씨에 어려움도 있지만 자원해서 봉사하러 왔으니 국가적 행사를 위하여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한다”고 했다.


봉사란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이다. 봉사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위해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올림픽 자원봉사를 통해 물질로 보상할 수 없는 보람과 삶의 가치를 선물로 받았다. 매일 짜인 스케줄에 따라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했더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느슨해졌던 삶에서 일종의 긴장감을 느끼면서 몸이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니 마음도 즐거웠고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선물은 봉사활동 아니었으면 받을 수 없었던 선물이었다.


그리고 젊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10여 년은 더 젊어져서 재직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힘들고 궂은일에도 앞장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뿐더러 그들의 순수한 봉사정신이 고귀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나에게 인생경륜에서 얻을 수 있는 조언을 구하는 젊은이들이 기특하기도 했다.


나는 장애인 선수들의 패럴림픽에서 새롭고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들이 겪은 갖가지 장애사연뿐 아니라 온갖 고통과 편견을 극복하고 일어섰던 불굴의 의지와 노력은 인간한계를 초월한 승리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옆에서 그들을 도와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의인들의 희생정신이야말로 너무도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간애의 표상인 것 같았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였던 강추위와 이틀이 멀다 하고 내렸던 10cm 이상의 눈과 싸웠던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받은 또 한 가지 선물은 건강에 대한 경종이었다. 패럴림픽이 거의 끝나던 날 가슴팍에 생긴 붉은 반점 때문에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는 대상포진이라고 진단을 내리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사실 나는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인다는 체력을 믿고 마냥 건강한 줄 착각하고 살았다. 집사람은 걱정했던 대로 장기간의 피로가 쌓여 탈이 났다면서 나의 몸 관리 태도에 대하여 핀잔을 주었다. 나는 그것 또한 합당한 경고이자 고마운 선물이라고 받아들였다.


인생이란 복잡하고 다난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이다. 더욱이 나이 들어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면 자기만을 생각하기 쉬운 것이 노인들의 모습이다. 나는 이번 올림픽 자원봉사를 통해 흐트러졌던 생활태도를 가다듬을 수 있었던 귀한 선물을 받았다. 정년퇴임을 한 지 14년이 된 팔순 노객이지만, 평창올림픽 자원봉사활동은 나에게 새로운 삶의 의욕을 갖게 해주었고 인생의 아름다운 의미와 고귀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앤드류 파슨스 위원장으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을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준 데 대하여 감사배지 선물도 받았으니 지난 겨울은 보람 있고 행복한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