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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016년 10월] 기고 에세이

동문광장 : 언어취향 따르기에 앞서

김병연 전 경기상고 교사


언어취향 따르기에 앞서

김병연(생물교육69-76) 전 경기상고 교사





요즈음 ‘음식’이나 ‘조리’로 말해야 할 곳에 모두 ‘요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리라는 말은 ‘요리음식점’(한성주보, 1886년 10월 4일자)으로 처음 기록되었는데, 조선 말 한성에 맨 먼저 진출한 일본인들이 스스로 ‘료리’라고 부르는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였다.


요리는 우리말의 음식에 해당하는 일본말 ‘료리’의 한자표기를 두음법칙을 적용해 읽어 쓰는 것이라고 좋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일본사람들이 쓰던 말을 별 문제의식 없이 따라 쓰는 것일 뿐이다. 그 당시 친일 고관이나 부유층들이 드나들던 요릿집 음식들은 뭇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법하다. 그러니 그때 ‘료리’라는 일본말이 우리말 속에 파고든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광복 이후 지금까지 대대로 활개 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국의 ‘랴오리(料理)’는 ‘일을 처리하거나 정리하다’, ‘아이나 환자를 돌보거나 보살피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는데 ‘채소에 육류를 넣고 볶은 술안주’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는 음식을 가져다가 넓은 의미로도 쓰고 좁은 의미로도 썼는데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더욱이 낱 음식은 딱 맞아떨어지는 말로 불렀으니, 음식재료에 붙여 부른 ‘볶음, 구이, 튀김, 부침, 전골, 찌개, 찜, 회, 탕, 국’들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격동기를 거치는 동안 ‘판매되는 음식’의 한자말을 마련하지 못한 사이에 ‘음식’이 쓰일 자리에 ‘요리’가 쓰이는 현상이 굳어진 것이다.


중국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뜻하는 말은 ‘펑즈(烹制)’이다. 우리는 종합적으로 ‘음식하다’라는 말을 비롯해 구체적으로 ‘끓이다, 조리다, 삶다, 찌다, 데치다, 볶다’ 같은 수많은 고유어를 썼기에 한자말이 필요 없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 탸오리(調理)는 ‘몸조리하다, 돌보다, 훈련시키거나 길들이다, 정리하다’로 쓰는데 일본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일’까지로 넓혔다.


우리나라 식품위생법(1962년 제정)에 조리사 자격을 규정하였고 모든 교과서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조리로 표현한다. 이제 단체급식소에서만 조리하는 것이 아니므로 친숙하게 여겨 늘 쓸 수밖에 없다. 마침 조리에 어울리는 말은 요리보다는 음식이라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


똑같은 푸성귀들을 중국이 수차이(소채), 한국이 채소, 일본이 야사이(야채)로 달리 부르고 세 나라의 음식문화 또한 사뭇 다르다. 차이, 음식, 료리는 세 나라의 음식을 담는 그릇과 같은 말이다. 한국음식을 일본접시에 담는다면 그 음식은 료리의 아류가 될 뿐이다. 요즈음 ‘식문화’라는 말도 쓰던데 한자 한 글자로도 말을 만들어 쓰는 일본사람들의 말이며 중국에서도 음식문화를 쓴다. ‘식자재’라는 말도 식품재료(식재)와 조리기구(자재)를 함께 파는 일본가게의 간판일 뿐이다.





*김 동문은 모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976년부터 2006년까지 30년간 생물교사로 재직했습니다.  2009년 방송통신대학에서 농학을 공부하면서 ‘요리’에 의문을 품은 그는 동 대학 국문학과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일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또한 김 동문은 최씨음식법 영인 출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