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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022년 7월] 뉴스 모교소식

한국인 첫 필즈상 허준이 동문, “목표를 정하면 마음이 경직”



한국인 첫 필즈상 허준이 동문
“목표를 정하면 마음이 경직”

서울대와 한국시스템 발판으로 성장






허준이(물리02-07 프린스턴대 교수·사진) 동문이 7월 5일 2022년 국제수학자대회에서 한국 수학계 출신으로는 최초로 수학계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했다.

필즈상은 수학 분야의 우수한 성과에 대해 노벨상과 비견되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상이다.

수학계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국제수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ICM)는 국제수학연맹이 주최해 다양한 수학분야에 관한 토론 및 강연을 여는 전 세계 수학자들의 축제로, 최근 4년간 독보적인 업적을 보여준 40세 이하의 수학자를 선정해 필즈상을 수여한다.

수상자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1만5000 캐나다 달러(약 1500만원)의 상금을 준다. 나이 제한 때문에 39세(1983년생)인 허 교수에게는 올해가 필즈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허 교수의 연구분야는 조합 대수기하학(combinatorial algebraic geometry)이다. 이는 사칙연산을 바탕으로 기하학적인 대상을 연구하는 대수기하학의 방법론으로 네트워크와 같은 대상을 연구하는 조합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허준이 교수는 대수기하학의 심오한 성과에 기반해 조합론의 오래된 난제를 다수 해결함으로써 조합 대수기하학의 대표 연구자로 학계에서 평가받고 있다. 


필즈상 수상 후 귀국길에서 허준이 동문과 아들 허단 군. 사진=연합뉴스 



“모교 석사과정 시절, 가장 행복했던 나날”
프린스턴대·고등과학원 교수로 활동

허준이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 허명회(계산통계74-78)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모교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부터 대학 학부와 석사 과정까지 한국에서 마쳤다. 2002년 모교 물리학부로 입학해 물리천문학부(물리전공)로 학부를 졸업하고, 2009년 모교 수리과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부 3학년 때부터 석사학위 과정까지 지도교수였던 김영훈 모교 수리과학부 교수는 “이후 미시간대 수학과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쳤으나, 석사학위 과정 중에 만나게 된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를 통해 본인의 연구주제를 설정했고 이것이 이후 업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허준이 교수는 서울대와 한국시스템을 발판으로 성장한 수학자”라고 말했다.

허준이 교수가 해결한 주요 난제 중에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리드(Read) 추측과 호가(Hoggar) 추측이 있다. 일반적인 그래프의 채색다항식(chromatic polynomial)에 등장하는 계수들이 단봉(unimodal)패턴을 보인다는 가설이 1968년에 만들어진 리드 추측이며 로그-오목성(log-concavity)을 가진다는 예상이 호가 추측이다. 허준이 교수는 이 추측들을 심오한 대수기하의 정리들을 이용해서 해결하여 수학 최고 학술지인 미국수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에 게재했다. 그 이후 그래프를 일반화한 임의의 매트로이드(matriod)에 대해서도 ‘특성다항식(characteristic polynomial)의 계수들이 같은 로그-오목성을 만족한다’는 훨씬 어려운 추측을 대수기하학에 등장하는 차우 환(Chow ring)의 조합적 정의 위에서 호지-리만 관계를 증명함으로써 규명해 내었다.

허 교수는 모교 졸업 후 2014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클레이 수학연구소 연구원, 스탠퍼드대 교수 등을 거쳐 2021년 이후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2022년부터 고등과학원(KIAS)의 석학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에 뉴호라이즌상(New Horizons in Mathematics Prize)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사이먼스 재단에서 수여하는 사이먼스 연구자상(Simons Investigator Award)과 호암재단에서 수여하는 호암과학상을 수상했다.

허 교수의 아내는 모교 수리과학부 대학원 석사 동기인 김나영(대학원07-09) 동문이다. 김 동문도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연구자로 활동했다. 허 교수는 아내를 ‘친구이자 동반자, 때로는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7월 13일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허 동문은 자녀의 수학교육 방법을 묻는 질문에 “큰아들이 하루에 수학 문제를 한 개씩 만들어오면 내가 그 문제를 풀고, 아들이 채점한다”고 말했다. 김나영 동문은 “남편이 아기띠를 메고 세미나에 다녔다”며 가정적인 면모를 전했다.

한편, 모교는 2008년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으며, 당시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지구환경과학부 폴 크루젠 교수, 영국 런던시티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지낸 사회학과 안토니 우드위스 교수 등 해외 석학들을 교수로 임용한 바 있다.



허준이 동문의 말말말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 하나가 27동(자연대)과 상산관을 오가면서, 매일 단조롭지만 소소하고 알차게 지냈던 석사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2021년 5월 26일 서울대 강연에서)


“노트에 연필로 글씨 쓰는 걸 좋아합니다. 수학은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 같죠. 식이든, 계산이든, 명제(statement)든 노트에 꾹꾹 눌러서 쓰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워요. 목수가 의자를 만들듯이,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쓰기 전엔 존재한다고 말하기조차 애매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나가는 느낌이 뭔가 굉장한 충만감을 줍니다. 그게 학문의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2021년 5월 26일 서울대 강연에서)

“수학은 나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아직 우리가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들은 이해의 통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21년 6월 1일 호암상 수상식에서)

“목표를 정해두면 마음이 경직되기에 어떤 문제를 ‘내가 꼭 풀어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되 조금씩 도와주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조용히 공부하며 아이들이 자라고 저와 아내가 늙어가는 과정을 천천히 느낄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
(2022년 7월 5일자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도전하고 있는 또 다른 난제가 있냐’는 질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