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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호 2021년 7월] 뉴스 모교소식

“나무 이름 열 개만 알아도 숲이 달리 보여요”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 여성연구소 특강


“나무 이름 열 개만 알아도 숲이 달리 보여요”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 특강




“열 가지 나무와 풀 이름만 알고 산에 가 보세요. 막막했던 숲이 정다운 공간으로 바뀔 겁니다.”

‘반려 식물’ 시대, 식물학자 이유미(임학81-85) 국립세종수목원장이 식물과 친구 되는 법을 알려줬다. 6월 25일 여성연구소(소장 권오남)가 ‘포스트-코로나19 시대, 식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라는 제목으로 연 온라인 강연 서여리강(서울대 여성 리더십 강연)에서다.

아스팔트 공간에서 밀려났던 식물이 이제는 ‘코로나 블루’의 치유법이자 답답한 집안에서 정 붙일 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멀어졌던 친구처럼 식물과 우리의 관계는 어쩐지 서먹하다. 이 동문은 “우리는 본질적으로 자연에서 태생했기 때문에 그리워하고 돌아가고픈 감정, 회귀본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식물과 친구가 돼보자’며 세 가지 방법을 안내했다. △멈추고 서서 바라보기 △이름 알기 △식물의 삶을 존중하기다.

“바라보는 순간, 수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고 나와 자연의 공유점이 생깁니다. 나무마다 봄에 내어놓는 새순의 색이 다 달라요. 한 나무에서 단풍이 드는 색과 방향도 다르고요. 단풍빛만 봐도 ‘겨울이 저기서 오는구나’ 알 수 있죠.”

이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식물의 이해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왜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해보면 즐겁게 이름을 알 수 있고, ‘식물의 집안’을 알면 식물이 빨리 는다는 ‘꿀팁’도 제시했다. ‘쇠무릎(우슬초)’은 줄기가 소 무릎 같이 생겼다. ‘붓꽃 집안’을 알면 ‘각시붓꽃, 난장이붓꽃, 노란붓꽃, 노랑무늬 붓꽃’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물의 스펙트럼은 넓건만 우리는 ‘백목련’도 ‘목련’이라 부르고, 봄에 피는 분홍 꽃은 모두 ‘철쭉’으로만 안다. ‘나무’, ‘꽃’, ‘풀’과 같은 몇 가지 카테고리와 단어에 한정해 식물을 만나고 있는 건 아닌가.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이 동문이 아쉬워 하는 점이다.

“산철쭉과 철쭉, 진달래는 다른 종입니다. 종이 다르면 생태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모두 존중해야 할 대상이에요. 가을 산에 가서 산국, 쑥부쟁이, 구절초 정도 이름만 불러주셔도 색깔이 달라질 거예요.”

꽃 이름이 궁금하면 앱(다음 꽃 검색 기능 및 ‘모야모’ 앱)을 활용하고, 전문가들의 손길이 닿은 수목원과 식물원부터 적극 활용해 보라고 권했다. 지난해 세종시에 문을 연 국립세종수목원은 특히 요즘 화두인 정원 문화의 확산과 공유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공원은 만들어놓은 걸 즐기는 것이고, 정원은 키워내고, 변화하고, 가꾸는 행위가 들어가 환경도 개선되지만 나도 치유되는 효과가 있어요. 수목원에서 뛰노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수십년 전 외국에서 입 딱 벌리고 부러워 했던 그 문화가 우리 눈앞에 와 있구나 싶죠. 반복적으로 화려한 꽃을 심고 잔디를 깎으며 가꿔온 기존의 정원이 소비적인 정원이라면, 앞으로는 재생과 생명의 공간으로서 정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도 제 안의 화두입니다.”

이 동문은 입학 당시 유서 깊은 임학과 창설 이래 6번째 여학생이었다. 산림청 임업연구사로 공직에 입문했다. 2014년 광릉 국립수목원의 제9대 원장에 취임, 산림청 개청 이후 첫 여성 고위 공무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남성들과 똑같이 산을 타고, 짐을 지면서 평생을 부단히 노력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우리 나무 백가지’, ‘내 마음의 들꽃 산책’ 등 식물 알려주는 책도 여럿 썼다. “갈수록 지식의 미천함을 느끼지만, 애정만큼은 맹목적으로 변해 간다. 평생 일하고 공부하는 대상이 식물이어서 고맙다”며 “나이 들면서 나무처럼, 식물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좀 안다고 생각이 굳어져요. 수백년을 살아도 매년 여린 순과 꽃을 피워내는 나무처럼 나이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은 어려우면 본성이 나오는데, 나무는 가장 어려운 시간을 앞둔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발현합니다. 이런 존재가 나무 말고 또 있을까요?”

치열한 경쟁사회에 시사하는 바도 있다. 나무 꼭대기에서 뻗은 가지와 잎들이 다른 나무의 것과 서로 경계를 이루는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 현상도 그의 눈엔 남다르다.

“수분과 햇빛을 경쟁하면서 숲이 우거져도, 나무 끝 가지를 보면 서로 경계를 이루며 공유하는 공간을 내어주고 있어요. 경쟁 위주의 삶에서 우리도 저런 조화의 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