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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호 2019년 10월] 뉴스 기획

모교 축제 변천사 그때는 ‘의미’ 지금은 ‘재미’

쌍쌍파티 즐기고 한쪽에선 축제 거부

모교 축제 변천사 
그때는 ‘의미’ 지금은 ‘재미’




① 1979년 청춘남녀가 쌍쌍파티를 즐기는 모습.
② 1975년 마이티 카드게임을 하는 남학생들.
③ 1975년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는 남학생과 여학생.
④ 1975년 열린 ‘맥주마시기’ 대회.
⑤ 1987년 열린 진군제에서 주점 플래카드를 거는 학생들.
⑥ 1987년 땡전뉴스로 비판 받던 KBS 9시 뉴스를 풍자하는 연극.



국가 사회보다 개인 중점

지난 9월 24일부터 같은 달 26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된 모교 가을축제의 주제는 ‘내모난꿈’이었다. 이는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한편, 젊은 학생들이 가슴속 깊이 간직한 저마다의 꿈을 마음껏 펼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네모와 동그라미 등 도형에 착안한 단체게임이 행정관 앞 잔디마당에서 개최됐다. 커다란 천 위에 동그란 공을 올린 채 반환점을 돌아오는 1라운드 ‘동그라미의 여정’, 정사면체의 각 면을 뒤집으며 특수미션을 수행하는 2라운드 ‘세모의 역습’, 네모난 통에 더 많은 공을 골인시키는 3라운드 ‘네모의 꿈’ 등으로 구성됐다.

같은 장소에서 꿈을 주제로 한 미니게임이 축제 기간 내내 펼쳐졌다. 물총으로 공을 맞혀 골을 넣는 ‘Target for Dream’과 포켓볼 형식을 차용한 ‘Shoot for Dream’, 바닥이 없는 네모난 통에 공을 던져 그 안에 빈 그릇을 채우는 ‘Throw for Dream’ 등이다.

아이디어 공모에서 당선된 공모전 수상 부스도 눈에 띄었다. 서울대 응원단의 ‘SNU CHEERS’는 무료로 타투 스티커를 붙여줬으며 방탈출 동아리 ‘트랩드’는 야외 방탈출 게임을, 디자인싱킹 학회 ‘OGI’는 타로체험과 무알콜 칵테일 시음을 준비했다. 2018년부터 대학 축제에서 술을 팔면 처벌받게 돼 과거 단대 중심으로 운영되던 주점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⑦ 1995년 대동제에서 단체율동을 선보이는 학생들.
⑧ 2019년 자국의 전통음식을 선보이는 국제대학원 학생들.
⑨ 2019년 가을축제 폐막제에서 초대가수의 공연을 관람하는 학생들.
⑩ 2019년 게임에 참가해 고무공을 던지는 학생들.
[사진=모교 중앙도서관, 축제하는 사람들]


쌍쌍파티 즐기면서 한쪽에선 축제 거부

대학신문에 따르면 모교 축제가 지금처럼 재미 위주의 문화를 형성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다. 공동체 의식과 저항 정신의 열기가 옅어지고 축제가 교문 앞 시위 행렬로 이어지던 일도 1992년 이후 종적을 감췄다. 
틀이 정해져 있던 집체적 연극의 비중이 줄고 장르와 주제를 불문한 다채로운 공연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인식해 관악 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도 종종 열렸다. 1994년 가을 열린 ‘녹두문화제’에선 아예 녹두거리에서 축제를 열어 주민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벽화를 그렸다. 이러한 형태의 축제가 몇 차례 계속되자 관악구청의 금전적·행정적 지원을 받았고 많은 주민들이 함께해 서울대 부근 신림9동을 ‘대학동’으로 개칭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까지의 축제는 정치적·사회적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57년 제1회 ‘서울대문화제’가 대학생 사상통일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 ‘학도호국단’에 의해 열렸으며 4·19혁명을 거치면서 학도호국단이 해체돼 열리지 않다가 1975년 캠퍼스 종합화가 이뤄지면서 부활했다. 학도호국단이 주최한 ‘대학축전’은 표면적으론 대동(大同)의 장이었지만, 캠퍼스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축제 때 ‘쌍쌍파티’를 즐기면서도 한편에선 축제 거부 시위가 벌어졌다.

이후 학내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운동권 총학생회가 주최한 축제는 학생 운동의 일부로 여겨졌다. 학도호국단의 강압을 피해 건물 안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민중가요 동아리 ‘메아리’의 공연처럼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학생들은 사회참여 정신과 저항정신을 내세우며 대동제를 열었고 축제가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학도호국단은 1985년 폐지됐고, 독립적 축제 운영기구인 ‘축제하는 사람들’이 2003년 설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병서(기계항공16입) 축제하는 사람들 대표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내년부턴 축제 기간 단축이 거론되는 상황”이라며 “화려하진 않지만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모교 축제 고유의 정체성이 동문들의 후원으로 오랫동안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