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85호 2018년 8월] 뉴스 본회소식

동문여행: 월드컵 결승날, 크로아티아 거리 메운 응원단을 만나다

8박 9일 동유럽 여행기


월드컵 결승날, 크로아티아 거리 메운 응원단을 만나다


8박 9일 동유럽 여행기




프라하 구시가지 존 레논이 낙서한 벽 앞에서 동문들이 재미있는 포즈를 취했다.

이하 사진=박우민(의학88-93) 대전 우리들병원 원장



누군가 “여행은 눈을 뜨고 꾸는 최고의 꿈”이라고 했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꿈같은 9,000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았다. 넓은 아량과 포용력이 있는 성숙한 2018년 7월 동유럽여행팀은 진주알들의 모임 같았다. 한 분 한 분의 지혜와 재치로 여행 내내 많이 웃고 같이 떡을 떼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명력을 되찾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2018년 하반기를 승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 있어서 장소도 중요하지만 동행하는 사람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동문이라는 이름하에 견장 떼고 무장해제한 무방비상태로 서로 편안하게 시작했다. 마치 오래 사귄 친구처럼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사소한 말에도 맞장구치고 정말 많이 웃었다. 어떤 분은 이번 여행에서 1년치 웃음을 다 웃었다고 했다. 이번 여행엔 서정숙(식품영양75-79)·전희동(공업화학75-79)·조균석(법학77-81)·이상기(서양사81-87)·박우민(의학88-93)·김순란(AIP 43기)·정연삼(FIP 9기)·정연옥(KFL 8기) 동문과 배우자들이 함께했다. 우리의 여행지 체코·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슬로바키아·헝가리 등 6개국은 유럽 역사에서 서로마제국이 망하고(476년), 동로마제국이 멸망(1453년)할 때까지 약 1,000년의 중세 분위기를 간직한 곳이다. 중세 유럽의 발자취를 찾아 우리는 먼저 체코로 향했다.


중세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다


첫째 날 : 11시간 비행 후 프라하 하벨공항에 도착해 그곳에서 남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체스키부데요치에서 하루를 묵었다.


둘째 날 : 중세로의 시간여행은 13세기 지어진 체스키크롬로프성(城)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블타바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나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는 미리 예약하여 성의 내부, 영주가 살던 궁전과 바로크식 극장 등 중세 귀족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1638년 최고 권력자가 교황에게 선물할 때, 딱 한 번 사용되었다는 ‘황금마차’가 인상적이었다. 건축물이 다채롭고, 벽면은 화가의 캔버스 같다. 그야말로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아쉽지만 일행은 망토다리에서 단체사진 찍고, 3시간 이동하니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잘츠부르크 대성당이 나온다. 두 번째 방문국 오스트리아다.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배경이 된 미라벨 정원, 게트라이테 거리, 모차르트 전시관을 방문하고, 호엔 잘츠부르크 성을 거쳐 호텔 도착. 모차르트 전시관 관람 내내 가슴이 아렸다. 어린 나이에 왕과 귀족들 앞에서 공연하고 ‘유사귀족’ 체험을 하며 잘츠부르크에 적응 못한 채, 마차 타고 유럽 순회공연 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모차르트. 요즘 악덕 프로덕션에서 혹사당하는 아이돌과 뭔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생각일까?



체스키 크롬로프 망토다리 아래서 기념촬영



셋째 날 : 잘츠카머구트로 이동. 볼프강 유람선도 타고, 케이블카도 타고 아기자기하게 생긴 마을을 지나 산꼭대기에 십자가가 세워진 곳까지 가보았다. 그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없이는 살기 힘들었나보다. 하늘은 더 없이 맑고 깨끗하고, 강물은 한없이 코발트빛으로 빛난다. 오후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로 이동, 보트를 타고 블레드 성에 올라 호수 경관도 감상하고 맛있는 케이크 먹고 다시 포스토이나로 이동했다. 보트를 탔을 때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금방 옆으로 기울어지고 때론 뒤집히기도 한단다. 우리의 인생도 중심 잘 잡고 균형 잡힌 생활을 할 때 전복되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항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넷째 날 :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카르스트 동굴인 포스토이나 동굴에 도착. 우리는 유원지에 온 아이들처럼 들떠서 꼬마기차를 타고 추운 동굴 안을 관광하고 웅녀가 아니라 선남선녀가 되어 나왔다. 땅 위 뿐 아니라 땅 속 동굴까지도 아름답게 창조하신 창조주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굴 안에서 어떤 분이 내게 묻는다. “혼자 있을 때 뭐 하냐”고. 내 답은 이랬다. “회개합니다.” 한바탕 웃음이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 제1국립공원 플리트비체로 가는 도중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아뿔싸! 우리 일행을 나흘간 안전하게 태워준 버스가 그만 앞차를 받은 것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여자들은 찻집에 앉아서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어느 누구도 뜻하지 않은 사고 앞에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그들의 인격에 다시 한 번 감동 받았다. 여행 가기 전부터, 우리 일행 중에 의사, 변호사, 기자가 동행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면 그분들이 문제해결에 도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직업을 가진 분들이 동행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야호’ 외쳤다. 일종의 보험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의 분들도 매우 소중한, 한 분 한 분 사회가 매우 필요로 하는 분들이었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귀국하게 되어 다시 한 번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 사건 후 좀 늦었긴 했지만 플리트비체 공원까지 가서 폭포 앞에서 사진도 찍고, 생선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후 우리는 늦은 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이동했다.


잊지 못할 부다페스트 야경


다섯째 날 : 자그레브 옐라치치 광장, 성 마르코 성당 방문. 성마르코 성당은 독특한 지붕으로 유명한데 빨강, 파랑, 흰색의 타일을 모자이크로 크로아티아 문양과 자그레브의 문양을 나란히 장식하고 있다. 정면에서 바라볼 때 왼쪽이 크로아티아, 오른쪽이 자그레브의 문양이다. 성당 외관은 고딕양식이지만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독특한 모양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 이날 오후 5시 크로아티아 대표팀은 프랑스와 러시아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어 아깝게 패했다. 한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나올 즈음엔 옐라치치 광장을 거리응원단이 절반 이상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국경을 넘어 헝가리로 이동했다. 발라톤에 도착. 발라톤 호수는 헝가리 서부에 위치한 중부유럽 최대의 호수라고 한다. 거기서 버스를 탄 채로 다뉴브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마을 티하니 수도원을 산책하고 부다페스트로 이동.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말로 형용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프랑스 세느강, 체코 프라하와 함께 유럽 3대 장관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듯한 주변의 건물(아니 예술품)과 불빛, 세치니 다리는 우리로 하여금 환상의 나라에 온 기분을 맘껏 느끼게 했다. 물론 유람선에서 내리는 순간 현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국회의사당 위를 맴돌던 새떼를 놓고 “드론이다” “아니 새가 맞다”고 어린이처럼 내기 아닌 내기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여섯째 날 : 헝가리 영웅광장과 헝가리 풍 뾰족 지붕 일곱 개의 이색적인 어부의 요새, 겔레르트 언덕을 보고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이동. 구시가지에 있는 익살스런 동상, 츄밀(훔쳐보는 남자)과 브라티슬라바 성을 조망하고 또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


일곱째 날 :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알려진 쉔브른 궁전 방문. 궁전 내 부는 화려하고 우아한 로코코 양식으로 되어 있다. 마침 그곳에 클림트 작품이 있는데 가이드로부터 ‘유디트(Judith)’란 여인에 관한 얘기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즉 ‘이스라엘판 논개’인 것 같았다. 어느 나라나 난세에 여인들도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른트너 거리, 성슈테판사원을 보고 다시 국경을 넘어 프라하로 이동. 카를교 위에 세워진 많은 성인들의 동상 중 *얀 네포무크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야경을 감상한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긴장되어 제대로 관광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프라하 와이너리 식당에서 즐거운 만찬



여덟째 날 : 프라하 구시가지를 오픈 벤츠카로 신나게 달리다가 존 레논이 낙서한 벽 앞에서 내려 마치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들떠서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재미있는 포즈도 취했다. 사진도 찍고 한껏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어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프라하성과 1,000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성비투스 성당 안과 밖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정면으로 프라하의 세종대왕 격인 카를 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나라에 어울리는 성당을 만들게 한 건축물로 1344년 기초를 놓았다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일품이다. 그곳에서 농담만 하던 일행 중 한 사람, 진지하게 오랫동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프라하 최대의 번화가인 바츨라프광장에서 체코 커피도 마시고, 구시청사의 천문시계도 관람했다.


아쉽지만 18일 먼저 귀국하는 팀과 바츨라프 광장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가이드가 공항 다녀올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여행 중 늘 느끼는 거지만 무거운 짐이 있으면 자유를 만끽할 수가 없다. 마음의 짐도 마찬가지. 다 내려놓고 비우면 자유롭고 평안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인도 발마사지 숍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저렴하지는 않았다. 잔돈이 생겨서 팁을 주었더니 머리까지 마사지해 준다. 조그마한 것에 감사하는 인도 아가씨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맑은 공기, 청명하고 드높은 하늘


아홉째 날 : 뜻하지 않은 하루를 보너스로 더 받은 우리는 프라하 성벽을 거닐며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봤다. 유명 예술인들이 묻힌 비셰흐라드 공원묘지에서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드보르작과 체코의 국민작곡가라고 불리는 스메타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최근 들어 거의 매일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과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들었는데 아마 이분들을 만나려고 그랬나보다 라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 이번 여행 행사를 주관한 삼홍여행사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공원묘지 앞에 위치한 성 베드로와 바울성당도 관람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이방인 선교에 앞장선 바울에 대해 잠시 생각하며, 크리스찬으로서의 본인의 모습을 재조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공원을 통과하여 프라하 공항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동유럽 나라들…. 맑은 공기, 청명하고 드높은 하늘, 찬란한 태양, 그냥 그곳에 있기만 해도 모든 근심과 질병이 나을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재충전되어 ‘Blooming Again’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정연옥(KFL 8기) 통번역가, 이상기(서양사81-87) 아시아엔·매거진N 발행인



※얀 네포무크 : 왕비의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 왕이 왕비의 고백 내용을 말하라고 재촉했으나 끝까지 침묵하여 죽임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