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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호 2017년 11월] 뉴스 기획

“서울대, 스스로 바뀌어야 국민 기대 보답한다”

교수협의회 대토론회서 서울대 현재와 미래 논의


“서울대, 스스로 바뀌어야 국민 기대 보답한다”


교수협의회 대토론회서 서울대 현재와 미래 논의




안도경 교수 “총장 선임제 시기상조, 임기는 연임제로”
윤제용 교수 “6년 이상 임기의 서울대 입시위원회 설립”
오정미 교수 “싱크탱크 역할 미래전략연구소 구축”
임정묵 교수 “수익사업 전문화해 안정적 재정 확보”


“지금 서울대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고, 서울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서울대인은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겨레의 대학으로서 국민의 기대와 사랑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모교 교수협의회 정책연구팀장을 맡은 강창우(독문84졸)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지난 11월 6일 관악캠퍼스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의 시대적 소명과 발전 방향 대토론회’ 기조 발표에 나서 이같이 강조했다. 모교 교수협의회(회장 이정상)가 개최한 이날 토론회는 모교 교수들이 법인화 6년차인 서울대가 직면한 문제를 짚어보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50여 명의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재정과 인프라’, ‘거버넌스’, ‘교육과 사회공헌’, ‘연구와 국제화’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이번 토론회의 내용은 지난 4월 출범한 제33대 교수협의회 정책연구팀이 진행해온 논의를 중간 정리한 것이다. 이정상(의학76-83) 교수협의회장은 “수 년 안에 고등교육제도가 바뀔 수 있다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서울대가 외부 충격에 의해 변하기보다는 스스로 앞길을 생각하고 고민해나가자는 뜻”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성낙인 총장과 김병섭(농경제72-76) 평의원회 의장,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표(물리79-83) 군산대 물리학과 교수 등도 토론회에 참석했다. 성 총장은 축사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재탄생했지만 현재 모교는 국립대와 사립대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라며 “이제 서울대만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전국 국공립대학과 힘을 합쳐 국공립고등교육의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조발표자인 강창우 교수가 “서울대가 사회에 공헌하는 확실한 방법은 연구와 교육의 수월성을 달성하고 사회와 연계하려는 노력”이라며 대학 운영 시스템 혁신과 법인화법 개정 등을 제안했다. 또 “법인 체제 정착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며 모교가 교육과 연구, 국제화, 재정적 자율성과 재원 확보, 비정규직 문제, 학내 갈등, 공공성 등의 문제에 처했다고 정리했다. 



왼쪽부터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윤제용·오정미·임정묵·안도경 교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선결돼야 할 것 중 하나는 소요 재원 확보와 바람직한 거버넌스 정립이다. ‘재정과 인프라’를 주제로 발표한 임정묵(수의학82-87) 농생명공학부 교수는 정부출연금 지원이 점차 감축되고, 등록금 인상이 어려운 사회 분위기와 세제 혜택 감소로 기부금 모금도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재정을 확보하는 방법은 수익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봤다. 평창캠퍼스 목장장인 임 교수는 경험에 비추어 대학의 학사 기능과 수익사업 조직을 분리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가장 급한 일로 꼽았다.
‘거버넌스’를 주제로 발표한 안도경(정치85-90)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총장선출제도의 현재 틀은 선임제와 직선제의 문제점들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사회 또는 이사회 중심의 총장선임기구에서 총장을 임명하는 선임제는 제대로 시행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제도지만 아직 서울대에서는 시기상조다. 법과 규정의 틀 내에서 직선제의 요소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총장선출을 위한 숙의와 공론의 조직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 4년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꾸자는 주장을 펼쳤다.


‘교육과 사회공헌’을 주제로 발표한 윤제용(공업화학80-84)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자율성의 제약으로 고유 입시 모델 개발의 어려움이 있다고 봤다. 이에 6년 이상 임기의 서울대 입시위원회를 설립해 입시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입시 연구소를 설립해 70년간 축적된 서울대 입시 데이터를 종합 분석하고 공유하자고 제언했다.


오정미 약학과 교수는 ‘연구와 국제화’ 주제발표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할 미래전략연구소를 구축하자고 제언했다. 또 국제 협력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서울대 국제공동연구실 프로그램을 비롯해 관악캠퍼스와 신림동·낙성대 일대, 시흥캠퍼스를 잇는 벤처 삼각벨트를 구성하자고 말했다.




각 발제 후에는 지정토론자들이 주제별로 종합토론을 펼쳤다. 김상표 국교련 상임회장, 김완진(경제72-76) 경제학부 교수, 오세정(물리71-75) 국회의원, 이현숙(대학원90-92) 생명과학부 교수가 ‘교육과 사회공헌’, ‘연구와 국제화’ 주제로 토론했다. 김상표 상임회장은 “서울대가 과연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지”를 반문하며 “정량적인 지표를 강조하다 보면 획기적인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재정과 인프라’, ‘거버넌스’ 주제로는 김수욱(경영85-89) 경영학과 교수, 본회 부회장인 김진국(정치78-85) 중앙일보 대기자(본지 논설위원), 신현석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홍준형(법학75-79) 행정대학원 교수가 나섰다. 김진국 대기자는 총장 선출에 대해 “직선제 선거는 표 사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보다는 대표 집단을 만들어서 공론화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사회가 학교 사정을 잘 알고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교수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방법은 없는지” 주문했다.


발전기금 기금본부장을 지낸 김수욱 교수는 수익 사업과 관련해 “아직 모교 내에서도 ‘서울대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마인드가 많다”며 “공익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추구하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서울대가 가진 우수한 인프라를 활용해서 재정을 늘리는 데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오세정 국회의원·이현숙 교수의 제안

맏형 의식 버리고 연구 국제화의 허브 역할해야




이날 논의의 기저에는 현재 서울대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부정적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깔려 있었다. 그간 언론 보도에서 졸업생 중 사회 병폐에 깊숙이 연루된 사례나 학내 갈등 상황이 부각됐고, 서울대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이날 ‘교육과 사회공헌’, ‘연구와 국제화’ 부문 토론자인 오세정 국민의당 국회의원(사진 왼쪽)과 이현숙 생명과학부 교수(사진)는 각각 학부 교육의 강화와 사회와의 소통에서 답을 찾자고 제안했다.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지낸 오세정 의원은 “학교를 떠나서 보니 서울대 위상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국회에서도 ‘서울대가 한 게 뭔가, 왜 도와줘야 하나’란 말을 공공연히 듣는다”고 운을 뗐다.
오 의원은 “서울대가 가진 위상은 일종의 소프트파워다. 한 번 없어지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며 “노벨상 받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되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학생들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공공의식을 갖고 있는 졸업생들을 서울대가 선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수들이 공공성을 가진 학생들을 길러내는 학부 교육에 좀 더 신경쓰게 만들려면 평가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의계획서와 교과서, 숙제, 시험문제를 살펴보고 학생 인터뷰까지 하면서 교육자를 평가하는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학부 교육을 평가하는 방법이 아예 없진 않다”고도 말했다. 한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싱크탱크가 꼭 필요한데, 인문사회부터 자연과학까지 인프라를 갖췄고 정부 입김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서울대가 가장 적임”이라며 오정미 교수가 제안한 ‘미래전략연구소’에 동의하기도 했다.
이현숙 교수는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으로 서울대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과거 케임브리지대가 동문들을 비롯해 전 세계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표본을 추출해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해 성공했던 사례를 들었다. “서울대에 대해서 여론조사를 했을 때 자신 있게 ‘혁신의 대학’, ‘세계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 말이 나오진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그렇다면 그 부분은 교정하고 혁신하는 것이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학 네트워크에서 서울대의 책임감을 일컫는 ‘맏형론’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연구와 국제화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봤을 때 동반자적, 수평적 관계에서 국내 대학들의 연구 국제화에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교수는 “서울대가 가진 자원들이 해외로 뻗어나가기에 가장 좋다. 누구라도 여기 와서 같이 연구하고 서울대를 교두보 삼아 해외로 나갈 수 있다면 훨씬 더 사회에 공헌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고, 이는 대학의 공공성과도 통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 통일 문제, 바이오메디신 등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주제로 허브가 되는 연구소를 구성하고, 장비도 혼자 쓰기보다 대학 간에 개방해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만들면 훨씬 더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