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63호 2016년 10월] 기고 에세이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김성희(회화82-86) 모교 동양화과 교수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김성희(회화82-86) 모교 동양화과 교수



일전에 어느 교수님께서 이 시대에 왜 붓을 잡는지, 펜을 잡으면 되지 않는지, 붓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매우 날카롭고 어려운 질문을 하셨다. 펜을 잡을 때는 손목과 손바닥 일부를 바닥에 대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붓은 아무리 작은 이미지를 표현하려 해도 손과 팔을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허공에 둔다. 붓을 잡고 있는 손도, 팔도 공허한 공간을 가지며 붓조차도 휘청 휘청 부드러운 양모로 돼있다. 긴장된 힘을 주지 않으며 손목만을 절대 쓰지 않는데 이는 온 몸의 기운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붓과 손, 팔, 그리고 온 몸이 함께 운용된다. 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자 정신이다. 그래서 ‘심수상응(心手相應)’한 상태를 추구했다. 마음의 작용, mind control, 그리고 몸의 표현이 일체(一體)가 된다.


예를 들어 동양화에서 난초를 그린다고 할 때, ‘그린다’고 하지 않고 ‘친다’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집에서 가축을 기를 때에도 ‘치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치다는 ‘기르다’라는 뜻이다. ‘먹으로 난초를 친다’는 것은 ‘난초를 기르다’라는 것인데 그림 속의 난초를 어떻게 기르나. 그것은 붓을 들고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여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이 길러진다는 뜻이며, 그 결과물로 생명력을 가진 난초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동양의 사유는 모든 것이 기(氣)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하나의 기운의 덩어리인 난초는 관자의 생명력과도 연계가 된다.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편에 포정(丁)의 이야기가 나온다. 동양에서는 백정의 기술조차도 도(道)와 연계된다. 도의 단계, 예술의 단계에 오른 백정의 칼은 19년을 썼어도 막 새로 숫돌에 간 것처럼 예리한 새 날이다. 기술이 성취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한 번을 써도 칼날이 무디어진다. 최고의 기예의 단계는 도의 단계이며 몸과 정신이 망가지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로 양생(養生)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진정한 창의성은 머리로 짜내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정신이 하나로 생동하는, 각자의 고유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동양에서 도의 추구는 현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오랜, 그러나 새롭게 적용될 수 있는 보물같은 전통을 지금 붓을 잡고 계신 서울대 교수님들께서 실천하고 이어가고 계시다. 한국의 문화가 서서히 일어서는 현시점에서 문인화를 실천하시는 교수님들께서는 이 문화의 중심에서 우리다운 길로 방향을 잘 잡아주시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이 원고는 서울대 개교 70주년 기념 교수 문인서화전 개막식 축사의 일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