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53호 2015년 1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권영세(법학77-81) 전 주중대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권영세(법학77-81) 전 주중대사

 


미국은 세계 제1의 강대국이고, 우리와는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함께 싸운 혈맹이다. 사람으로 치면 서로를 보호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관계이다. 중국은 우리의 이웃이자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제대국이다.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강한 이웃이다.


미국과 중국, 이 두 나라는 소위 G2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세계의 정치 및 경제적 역학관계를 좌우하고 있다. 미국은 소위 아·태 재균형(re-balancing) 정책으로 아시아 및 태평양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려 하고 있고, 중국은 자신의 경제적 힘에 걸맞는 정치적 지위를 아시아에서부터 확보하려 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정치 및 안보 면에서는 동맹(alliance)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가깝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량이 미국 및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중국과 가깝다. 중국은 이에 더해서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국익을 가장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외교가 당면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중요한 난제이다. 특히 두 나라 사이의 의견이 갈리는 이슈가 생기면 우리의 어려운 형세가 여실히 드러난다.


요사이 국제적 핫이슈가 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는 이런 이슈의 대표적인 예이다. 남중국해상의 도서에 대해 중국은 영토주권을 주장하고, 최근에는 이런 영토주권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암초에 인공섬을 건설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와 국제법을 들어 이와 같은 중국의 작업에 강한 유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에게도 남중국해 지역은 우리 수출 물동량의 30%, 원유 등 수입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교통로로서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지역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든(설령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한국이 미국편이냐 아니면 중국편이냐 하는 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 따라 한국정부를 비판하기도 하고 지지하기도 한다.


우리가 G2 사이에서 우리의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행동방식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결국 이와 같은 이분법적 선택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안보가 걸려있는 미국과 경제 및 북한이 걸려있는 중국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우리의 국익을 지켜낼 수 있다. 선택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명심해서 외교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중견강국으로서 우리의 힘과 장점을 잘 인식하고 활용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는 동북아 질서,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는 아시아 역학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조정해 나가야 한다. 피동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을 창출해 나가면 이분법적인 선택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고 선택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개최된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우리 외교의 바른 모습을 잘 보여준다.


둘째, 되도록 이슈 그 자체를 중심으로 우리의 이해관계를 정밀하게 따져 나가야 한다. 막연히 미국이냐 중국이냐 라는 일반론적인 기준이 아니라 이슈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의 국익을 결정해 나가야 한다. 그 이슈가 국제법이든 인권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간에 이슈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국익을 세심히 따져보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안보가 가장 중요한 국익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적으로 분열해서는 안 된다. 외교를 함에 있어 내부적으로 소모적인 분열이 발생하면 힘 있는 외교를 할 수가 없다. 건전한 비판과 분열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우리의 최대 소원인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당면한 외교적 난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다른 모든 국가적 난제와 마찬가지로 말보다는 실천이 수만 배는 어려운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