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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2024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한국인 기원은 아무르강 유역 수렵민과 중국 북동부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한국인의 기원 쓴 박정재 (지리91-97) 모교 지리학과 교수


“한국인 기원은 아무르강 유역 수렵민과 중국 북동부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한국인의 기원 쓴 박정재 (지리91-97) 모교 지리학과 교수



기후변화가 이동의 주요 원인
고유전학·고기후학 데이터 기반

부친 박동원 교수 학문 이어가
지리학 부흥 위해 책 계속 낼 것


미국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총, 균, 쇠 저자)가 있다면 한국엔 박정재 교수가 있다!? 과장된 비교일 수 있지만, 박정재 동문의 신간 ‘한국인의 기원’(바다출판사)을 읽다 보면 수긍 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리학과 교수로서 생물학, 기후학, 지리학, 고고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의 융합을 통해 방대한 우리 뿌리에 관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흥미롭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쉽지 않은 책임에도 10월 첫 주 교보문고 과학도서 분야에서 8위를 차지하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출판사에 따르면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고 한다. 10월 4일 관악캠퍼스 220동 연구실에서 박정재 동문을 만났다.

-책 반응이 좋습니다. 소감을 들려주시죠.
“1년 연구년 동안 온 힘을 다해 쓴 책이라 기대를 좀 했습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처음 쓴 책인데, 많이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전문가들의 평이 어떨까 궁금합니다. 제 가설을 지지할 수 있는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다 보니 책이 두꺼워졌습니다.”

-한국인의 기원을 밝히는 책은 여럿 있습니다. 이 책만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의 고유전체 데이터가 거의 없습니다. 남해안 해안가 패총에서 발견된 게 조금 있는데, 일본에서 넘어온 조몬 비율이 너무 높아서 내륙의 상황을 잘 보여주지 못합니다. 내륙에서 발견된 고인골(古人骨)은 가장 오래된 게 삼국시대 정도입니다. 중국, 일본 데이터를 갖다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했어요. 저는 최대한 데이터를 많이 수집해서 왜 한반도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됐는지를 추론했죠. 왜에 대한 답을 기후변화에서 찾았고요. 그동안 한국인의 형성에 관한 과정 설명은 있었는데, 왜 들어왔는지는 언급하는 분이 없었죠.”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기원은 뭔가요.
“한반도인은 홀로세 초기(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과 홀로세 후기(약 3500년전) 역시 추위를 피해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이 섞여 형성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반도까지 이주해오고, 다시 반복적인 이주와 정착을 통해 마침내 한국인이 형성되는 과정을 ‘기후변화’란 키워드로 풀어가셨는데, 단순한, 환경 결정론적인 방법이라는 비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국가 체제가 출현하기 전, 대규모 이동은 대부분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가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식량 위기는 보통 기후변화에 기인하고요. 어찌 보면 상식적인, 단순한 가설입니다. 보통 역사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글을 쓰기보다 데이터부터 수집하고 거기서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방식이니까, 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거라 봅니다. 책에서 제시한 ‘한국인 형성의 기후 변화 가설’은 관련 학계에서 동의 된 바 없는 전적으로 저의 의견입니다.”

-담대하게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제가 융합 학문인 지리학자라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한국인의 유전적 기원을 밝히기 어려운 게 한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시기의 고인골이 없어서입니다.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인 것은 최근 우리나라, 중국, 일본 고고학자와 고유전체 연구자들의 논문이 많이 생산됐다는 것입니다. 제가 참고한 자료들이 모두 최근 2~3년에 발표된 논문들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나온 고인골은 없지만,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한국인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북방계가 알타이산맥이나 바이칼 호수 주변이 아닌 남방계와 마찬가지로 남쪽에서 기원했다는 설 등이요.
“최근 고유전체 연구 결과가 그렇습니다. 동아시아 고유전체 자료는 북방계 또한 원래 남쪽에서 출발한 집단임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실제 한국인과 몽골인은 유전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한국인은 몽골인보다는 일본인 그리고 만주족과 같은 중국 북동부 사람들과 가깝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기후변화 상황을 담고 있는 제주도 동수악 오름의 중요성을 언급하셨는데.
“환경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퇴적물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퇴적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제주도밖에 없어요. 그중 하나가 동수악 퇴적물인데, 3m 정도 퇴적물을 뽑아 분석을 해봤더니 과거 기온 변화를 잘 보여줬습니다. 그 자료가 북반구 평균 기후변화를 볼 수 있는 그린란드, 중국 자료와 굉장히 유사하게 나와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박정재 교수의 저서 '한국인의 기원' 표지.


-책에 짤막하게 소개된 벽골제 논쟁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교수님은 벽골제가 인공저수지가 아닌 방조제라고 보시는 거죠?
“모양으로 봤을 때 방조제에 가깝지 않나, 저수지라면 그 안쪽에 농경지가 다 물에 잠겨버리니까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래 한국인은 고대 조상들처럼 다시 기후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는데.
“미래의 기후위기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를 것 같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현 추세를 보면요. 이제 인류 사회의 지속 여부는 기후위기의 올바른 대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인의 형성 과정에 기후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믿기 때문인지, 가까운 미래 한국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더 고통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드릴게요. 지리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가 어떻게 되세요?
“아버님이 박동원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세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찍 돌아가셨어요. 주변에서 네가 아버지 학문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많았어요. 그렇게 지리학을 선택하게 됐고, 대학원까지 공부하다 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요즘 고등학생들에게 인문학과가 인기가 없죠? 지리학과는 어떤가요?
“그렇죠. 취업을 생각 안 할 수 없으니까요. 재학생들도 로스쿨,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많이 해요. 대학원 진학하는 학생이 적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지리학 등 인문학에 대한 홍보가 많이 돼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대중서를 쓴 이유도 그런 부분이 있어요. 강연 요청 들어오면 웬만하면 다 가려고 하고요. 대중들과 접점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음 책은 뭔가요?
“12월쯤 서가명강 시리즈(21세기 북스)로 ‘인류세 이야기’를 낼 계획이고요. 내년에는 ‘기후로 읽는 한국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까 책을 빨리 집필하는 스타일이더라고요. 출판사가 좋아하죠(웃음).”

김남주 기자




박정재 동문은

모교 지리학과 교수로 생물지리학, 고기후학, 고생태학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다. 지리학 연구로 모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반도의 홀로세 기후 변화와 선사시대 사회 변동’, ‘홀로세 기후 최적기 한반도 남부 식생 및 환경’ 등 외국 연구를 답습하지 않고 우리의 문제인 한반도 고기후를 현장에서 연구하는 대표적인 지리학자로 기후 변화가 인류 문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과거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교란했는지 연구해 왔다. 지은 책으로는 ‘기후의 힘’과 ‘기후 변화와 사회 변동’(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