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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호 2024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원시적 역동성과 과학성 그리고 팀워크, 미식축구만의 매력이죠”



“원시적 역동성과 과학성 그리고 팀워크, 미식축구만의 매력이죠”

홍종호 (경제82-86)
그린테러스 지도교수·모교 환경대학원 교수



50년 만에 전국대학 선수권 우승
모교 발전재단에 1억원 기부도

작년 12월 2일 모교 미식축구부 ‘그린테러스(GREEN TERRORS)’가 50년 만에 전국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서울대에 미식축구부가 있다는 것도 생소한데 우승이라니. 뜻밖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린테러스 OB 동문 30여 명이 결승전 경기를 직접 참관했다는 것. 비록 토요일이었다고는 하나 저마다 대소사가 있을 터인데, 경북 군위까지 찾아가다니. 세대를 초월한 우정이 느껴졌다. 미식축구가 뭐길래 ‘모래알’이라고 혹평받기 일쑤인 서울대인을 이토록 끈끈하게 묶어주는 걸까. 3월 4일 그린테러스 홍종호 지도교수를 만나 모교 미식축구부의 역사와 미식축구의 매력에 대해 들었다.

“서울대가 통합 개교하고 이듬해인 1947년, 법대 문리대 사범대에서 각각 미식축구부가 출범했습니다. 당연히 이보다 앞서 미식축구를 접한 서울대인이 있었죠. 1946년 12월 1일 개최된 한미 올스타전에 서울대 선배 5명이 참가했어요. 당시 2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할 만큼 인기가 대단했죠. 해방 직후 스포츠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거예요.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없어졌다가 1963년 사범대 미식축구부가 부활했고, 1964년 미대, 1965년 농생대에도 미식축구부가 결성됐습니다. 캠퍼스 소재지에 따라 서울팀, 수원팀으로 나뉘어 연습은 따로 하고 경기는 같은 팀으로 출전하다가 1966년 농생대 중심의 수원팀으로 합쳐졌죠. 현재의 팀명 그린테러스는 여기서 비롯합니다.”

모교 농생대 미식축구부는 가장 나중에 출범했지만, 기숙사 생활의 영향으로 단합도 잘 됐고 진지하게 운동에 임했다. 단일팀으로 꾸려지고 2년만인 1968년 서울 춘계 대학미식축구대회에서 구기 종목 최초 우승이란 영광을 모교에 안겼다. 모교 미식축구부는 이후 대회에서도 수차례 우승을 거머쥔 강팀이었으나, 1979년엔 정연일(농교육75입) 학생이 고려대와의 경기 도중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1980년엔 이송운(축산76입) 학생이 영남대의 초청으로 공동연습을 하던 중 숙소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망하는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미식축구는 굉장히 거친 운동입니다. 상상해보세요. 100㎏을 오가는 거구들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내리꽂히고…. 보호 장비와 응급의료 기술의 발달에도 여전히 크게 다칠 수 있는 격렬한 운동이에요. 그런 만큼 선수들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도 경기에 엄청 몰입하게 되죠. 원시적 역동성을 띠는 동시에 아주 과학적이에요. 감독이 작전을 세워도 세부적인 플레이는 선수 재량인 축구와 달리, 미식축구는 매번 플레이마다 각각의 작전이 있고, 그에 따라 세밀한 팀워크가 수반됩니다. 손흥민 같은 스타플레이어 몇몇으로 경기를 좌우할 수 없는, 11명 팀원 모두의 역할이 다 중요하다는 점도 매력이죠.”

그린테러스가 침체를 겪는 동안 그린테러스 출신 교수들이 각자의 재직 대학에 미식축구를 전파했다. 1970년대까진 서울 소재 대학에 한정돼 있던 미식축구부가 전국 규모로 퍼지는 데 일조한 셈. 현재 대학 미식축구팀은 35개, 사회인 팀은 7개 있다. 대한미식축구협회장을 역임한 박경규(농공66-73) 경북대 명예교수와 ‘미식축구 해설하는 과학자’로 유명한 윤석후(농화학73-77) 우석대 교수를 비롯해 많은 동문들이 국내 미식축구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홍종호 지도교수도 마찬가지.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1972년부터 52년째 미식축구를 관람하고 있고 2018~2019년 NFL(전미 미식축구 프로리그) 시즌엔 MBC 객원 해설위원을 맡았던 자타공인 미식축구 마니아다.

“초등학교 3학년, 미국 이민 시절 처음 미식축구를 접했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는 낯선 곳에서 난생처음 컬러TV를 봤고 미식축구 경기를 시청했어요. 내가 마치 필드에서 뛰는 선수가 된 것처럼 함께 흥분하고 환희를 느끼면서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중계방송을 보며 익힌 영어와 경기규칙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연결고리가 됐고요. 18개월 만에 이민 생활을 접고 귀국하면서 미식축구와도 결별하는가 싶었지만, 주한미군방송이 있었습니다. 한국 와서도 시즌 주말이면 미식축구를 시청했어요. 모교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TV로도 보고 경기장 가서도 보고, 천국을 만났죠(웃음). 그린테러스 출신 김정호(경제92-99) 아주대 교수가 지도교수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국대학 선수권 대회 우승의 모든 영광을 선수와 코치진에게 돌리는 홍종호 교수. 그린테러스 OB 동문들이 작년 말 우승 축하금을 전달할 즈음, 때마침 홍 교수는 후학 양성을 위한 논문상 기금으로 1억원을 모교 발전재단에 쾌척했다. 고액 기부자 자격으로 유홍림 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린테러스 자랑을 했고, 무급으로 봉사하는 강보성(체육교육01-05) 감독이 외부인과 똑같이 주차비를 내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유 총장이 그 자리에서 주차비 할인 혜택을 받도록 조치했고, 경기 때 모교 버스를 이용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우승 기념으로 학생들과 삼겹살 파티를 열었습니다. 이런 거친 운동이 뭐가 좋아서 하느냐 물었더니, 다른 운동은 장학금 받고 대학에 들어온 선수 출신들이 수두룩한데 미식축구는 누구나 동일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그래서 다른 종목은 공부로 대학 들어온 서울대생이 따라잡을 수 없지만, 미식축구는 우리가 열심히 하면 우승할 수도 있으니 좋다고 답하더군요.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인 데다 프로팀도 없는 점이 모교 선수들에겐 도리어 매력이 되는 겁니다. 그네들이라고 성적 걱정, 취업 걱정 없겠어요? 그러나 내면의 열정을 좇아 몰입하고 뭔가 이뤄낼 때의 성취감보다 귀한 것도 없죠. 결승전에서 모두 다 질 거라고 혀를 찰 때 막판 역전승을 일궈냈어요. 살아가는 동안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번 우승 경험은 학생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