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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2023년 10월] 뉴스 모교소식

과학·공학 10가지 도전적 질문 1. 집적회로 기술로 양자컴퓨팅을 구현할 수 있을까


과학·공학 10가지 도전적 질문

집적회로 기술로 양자컴퓨팅을 구현할 수 있을까


박제근 (물리84-88) 모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김도헌 모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모교 국가미래전략원의 ‘과학과 기술의 미래 클러스터’(클러스터장 이정동)에서 최근 ‘2023 Grand Quests’ 10개 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포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정동 클러스터장은 “도전적 질문(Grand Quest)이 진정한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10개의 도전적 질문을 통해 최신 과학·공학의 이슈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총동창신문에서 10회에 걸쳐 그 내용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Grand Quests 연재 순서

1.집적회로기반 양자컴퓨팅
2.프라이버시 기반 인공지능
3.효소모방 촉매
4.추론하는 인공지능
5.체화 인지구조 인공지능
6.인공지능 기반 항체설계
7.노화의 과학
8.초미세/초저전력 반도체
9.환경적응적 로봇
10.초경량 배터리


양자컴퓨팅을 실용적으로 쓸 수 있으려면 고전컴퓨터만큼 오류가 낮아야 한다. 큐비트의 조작가능성과 계산의 신뢰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반도체 집적회로 분야에서 축적된 한국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집적회로 기반의 양자컴퓨팅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일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비트를 통해 정보를 한순간에 0과 1로만 표현할 수 있고 순차적인 연산만 가능하다. 이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양자 수준에서 나타나는 상태의 중첩을 이용함으로써 처리하는 정보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으며 양자 얽힘 현상을 통해 병렬 연산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론적 장점을 바탕으로 양자컴퓨터에 대한 개념이 제안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통해 기술을 개발해왔다. 하지만 현재의 양자컴퓨터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고전 컴퓨터보다 오류 발생의 확률이 높기 때문에 지금까지 구현된 양자컴퓨터는 실용적이지 못하며 대규모의 계산을 수행하기 역부족이다.

현재의 양자컴퓨터는 실용성이 낮기 때문에 “양자컴퓨터를 어떤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오류 발생을 최소화함으로써 실용적인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또한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고전 컴퓨터의 오류 발생 확률은 약 10-16 수준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구동 원리 상의 고유한(intrinsic) 오류 확률이 양자컴퓨터 분야의 선도 플랫폼의 경우에도 약 10-4, 즉 1만 번의 논리 연산에서 1번 꼴로 오류가 나는 수준이라 실용성이 크지 않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양자를 조작하고 측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조작과 측정을 위해서 상호작용이 필수적인데, 상호작용을 잘 할수록 외부의 영향을 받아 오류 확률이 올라가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생하는 오류를 적절한 수준에서 보정하는 방식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적용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오류 보정을 위해서는 각 큐비트가 일정 수준 이상의 오류 확률이라는 충실도(fidelity)의 문턱 값을 넘어야 한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를 실용적으로 쓰기 위한 오류를 보정하는 방법의 연구와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충실도를 가진 큐비트를 충분히 만든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난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류 보정을 위해 양자 상태 여러 개에 정보를 쓰고 체크하는 ‘오류 신드롬 측정-고속 피드백’ 방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양자 상태를 보면 안 된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교 대상인 양자의 결과와 비교하여 오류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중점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 외 대안적으로 연구 중인 여러 가지 오류 보정 방법들은 초전도, 이온 트랩, 반도체 등 회로 기반 양자컴퓨터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오류 보정 방법이 개발된다고 전제했을 때, 남는 문제는 “오류 보정을 적용할 수 있는 충실도가 높으면서 결맞음 시간(coherence time)에 비해 고속으로 측정이 가능한 대규모 큐비트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양자컴퓨터 플랫폼에 대한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양자컴퓨터 플랫폼 분야에서는 현재 초전도와 이온 트랩을 사용한 방식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초전도의 경우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되었던 분야이기 때문에 다른 플랫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축적된 연구 기반을 보유하고 있으며, 큐비트의 규모 확장성(scalability)을 큰 장점으로 갖는다. 하지만 초전도는 온도 변화에 취약하고, 큐비트의 상태가 완화되는 시간인 T1 시간(T1 time)이 비교적 짧은 단점이 있다. 반면 이온 트랩 방식은 현재 연구 중인 방식 중 충실도가 가장 높고, 임의의 큐비트 쌍을 자유롭게 한 번에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덩치가 큰 금속 블레이드를 이용한 이온 포획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큐비트 개수를 늘리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에 반해 반도체 스핀 큐비트 기반의 실리콘 양자컴퓨터의 개념이 제안되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초전도나 이온 트랩보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큐비트는 초전도 방식에 비해 온도에 덜 민감하고, 제어회로와 큐비트를 하나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규모 확장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원하는 위치에 스핀을 포획하기 위한 초기 튜닝을 매 실험마다 큐비트 각각에 대하여 교정해 주어야 하는 단점도 함께 존재한다.

오늘날 전자회로 및 반도체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대안적 양자 플랫폼들을 모두 집적회로에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초전도 큐비트와 반도체 스핀 큐비트는 이미 반도체 공정법을 이용해 제작되고 있으며, 큐비트 집적화를 목표로 반도체 파운드리 스타트업 기업도 설립되고 있다. 이온 트랩 방식 역시 집적회로의 표면전극을 이용하고 초고진공 체임버를 손바닥 크기의 초소형으로 제작하는 등, 집적된 형태로 제작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가지 플랫폼들은 공통적으로 회로 기반 양자컴퓨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오류 보정 방식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스핀 큐비트는 트랜지스터와 큐비트의 구조가 유사하다는 특성이 있어 반도체 관련 기술과 제조기반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대안이다.

현재 수준의 양자컴퓨터 분야는 제안된 개념을 실제 구현해 보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상용화되었을 때 어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또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독자적인 추진이 어려운 거대한 분야라는 특성으로 다양한 참여 주체 사이의 협력이 필요한 연구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만약 우리나라가 집적회로 기반의 양자컴퓨터 기술을 주도적으로 발전시키고 선점하게 될 경우, 협력적 기술 개발 측면에서 독자적인 협상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양자컴퓨터 시장이 형성되고 성장한다면 국내에 큐비트 칩 파운드리를 조성하는 등 추가적인 가치창출 기회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