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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2023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한국의 책거리 병풍과 수묵화, 미국서 잘될 거란 확신 있었죠”

김성림 다트머스대 미술사학과 교수
“한국의 책거리 병풍과 수묵화, 미국서 잘될 거란 확신 있었죠”


김성림 다트머스대 미술사학과 교수





미국서 화제의 한국미술 전시 기획
“내 어젠다는 한국미술의 세계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미술관 세 곳에서 열린 조선 책거리 병풍 순회전. 낯선 한국의 민화에 보여준 현지 미술 애호가와 학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 미술의 새로운 일면을 세계에 알린 일대 사건이었다.

‘현대 수묵화 대가’ 박대성 화백의 미국 순회전도 화제였다. 지난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에 이어 지금도 미 동부 스토니브룩대 등지에서 진행 중인 전시다. 국내에선 ‘이건희가 아낀 작가’이자, 전시된 그림을 밟고 논 아이를 용서한 거장으로 유명한 작가다. 칠순을 넘긴 박 화백은 현지 관람객을 만나 직접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작품에 대한 평론이 담긴 한국화 연구도록도 영문으로 출간됐다.

이 모든 일을 기획하고 UC버클리 최초 한국미술사 강의,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한국갤러리 재개 등 ‘미술 한류’의 씨앗 같은 일들을 주도한 사람, 김성림 다트머스대 미술사학과 교수다. 그가 지금 안식년을 맞아 교환교수로 서울대에 와 있다. 관악캠퍼스 50동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지금의 내 어젠다(agenda)는 ‘한국 미술의 세계화’”라고 말했다.

한국미술이 변방에서 세계에 알려지는 과정을 그는 몸소 겪었다. 선화예고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다 고2때 도미해 1996년 미술사 전공으로 UC버클리를 졸업했다. “대학 때 사실 혼란스러웠어요. 박물관에서 한국미술은 중국, 일본 갤러리 가운데 복도에 도자기 정도 놓은 게 전부고, 도서관에 영문판 중국, 일본 미술사 책은 즐비한데 한국미술사는 10권도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알던 세상은 한국이 중심인데, 이게 뭐지? 했죠.”

답답하던 차에 한국 신문에 실린 정양모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칼럼을 보고 편지를 보냈다. 그게 인연이 돼 학부 졸업 후 광화문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년간 유물부 인턴을 했고, 많은 작품을 접했다. 박물관에 통번역 담당이 1명일 정도로 해외 교류를 위한 인력이 적던 시절이다. “금관이나 도자기 말고 이렇게 좋은 우리나라 작품이 많은데, 해외에 알릴 사람이 없구나 싶었죠. 해야 할 일이 좀 생긴 것 같았어요.”

미국에 돌아와 캔자스대 석사에 이어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사 전공이 없어 중국미술사로 입학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뮤지엄에서 한국미술 큐레이터로 6년간 일하며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엔 UC버클리 최초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개설해 2년간 가르쳤다. 첫 학기부터 정원을 초과할 만큼 인기 있었다. 여러 대학의 교수직 오퍼를 받고 고민하던 중, ‘한국학을 시작하는데 함께하자’는 김 용 전 총장의 제안에 택한 곳이 다트머스대. 오래 생각해온 기획을 실행에 옮겼다. 첫 번째가 책거리 전시였다.

“책거리는 불과 몇 년 전까지 미술사책에도 나오지 않는 장르였어요. 조선시대에 산수화, 화조화, 영모화는 있어도 정물화는 없었거든요. 18세기 말 갑자기 등장하는데 상당히 독특해요. 한국의 책장과 다르게 비정형적인 책장은 중국의 것이고, 안경, 자명종 등 온갖 해외 문물이 함께 그려졌죠. 국제적이면서도 한국화되어가는 모습을 어느 학회나 발표에 가서 얘기해도 사람들이 재밌어 했어요. 경쟁력 있겠다 싶었죠.”

예상대로 전시는 대히트를 쳤다. ‘Korean still life’ 혹은 ‘scholar's accoutrements’라는 번역 대신 한국어 ‘책거리(Chaek-geo-ri)’를 고수했다. “일본의 우키요에도 그대로 쓰는데 왜 우린 번역하나 싶었어요. 미술 딜러들이 연락해서 ‘대체 뭘 했길래 미술관들이 책거리, 책거리 하냐’더군요.”

박대성 화백은 큐레이터로 일할 때 컬렉터가 한국에서 구매해온 ‘천지인’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 “관객들이 다른 그림은 지나치면서 유독 그 그림 앞에선 오래 머무르는 거예요. 5m 넘는 대작에 제가 봐도 그림에서 기운이 솟아나오면서 한편으로 그림 속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몇 년 후 큐레이터들과 경주의 화백님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도 질문이 쏟아졌고요. 늘 질문 받던 ‘한국화의 현재’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었죠.” 순회전 성공 이후 현지 미술관에서 한국인 큐레이터 채용도 늘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주류 아닌 입장으로 지내며 주목받지 못한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했다. 조선시대 미술 시장에서 중인의 역할로 박사논문을 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미술도 세계 미술에서 아직 비주류지만 상당히 경쟁력 있다. 문제는 자신을 알리는 법을 모른다”고 했다. “미국에 와서 수업시간에 자화상을 그렸어요. 작품 설명을 시키기에, ‘잘 그렸으니, 알아서 판단하겠지’ 하고 짧게 말했는데 칭찬은커녕 다들 멀뚱멀뚱해요. 반면에 손가락 하나 그려놓은 친구가 30분간 작품 철학을 떠드는데, 그걸 들으니 그림이 그럴싸해 보이는 겁니다.”

2021년 서울대 동양화과 졸업작품 전시회에 평론가로 초청받았을 때도 설명만 부탁하면 우물쭈물 말을 흐리는 학생들이 안타까웠다. 그 때 가르쳐준 것이 ‘엘리베이터 피치’다. 스타트업계에서 단 몇 분 내에 투자자를 설득하는 대화법으로, 예술가에게도 필요한 능력이다. “당시 서울대생들이 제일 궁금해 한 게 ‘동양화, 수묵화가 해외서 경쟁력이 있을까’였어요. ‘한 번 전시해보고 알려주겠다’ 했는데 정말 가능성을 봤잖아요. 이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죠.”

그는 다트머스대에서 미술사학과와 아시아문화학과 소속으로 근현대 한국 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2018년 정년을 보장받았다. 한국 여성 작가를 연구하기 위해 서울대에 왔고, 올해 12월까지 머무른다. “이번 학기 대학원에서 ‘한국 미술사 연구’ 수업을 열어요. 학기 절반은 한국미술사를, 나머지 반은 예비 작가들이 해외 진출을 대비해 자신의 철학과 예술관을 정립하고 영문 포트폴리오 만드는 걸 도와주려 해요.”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중간자로서 그의 눈에 보이는 것들,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특히 한국미술의 독자성만 강조하기보다 세계 미술사의 큰 문맥 속에서 바라봐야 함을 강조했다. “한류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에요. 17, 18세기 유럽에 중국 문화 열풍인 ‘시노아즈리’가, 19세기 중후반 일본 문화를 동경하는 ‘자포니즘’이 있었죠. 그런 물결 속에 우리의 시대가 온 거예요.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은 저도 가르치면서 놀랄 정도예요. 우린 이제 자신감만 가지면 됩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