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46호 2023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좋은 집 지어달라며 어떤 간섭도 안 한 노부부 깊은 인상”

김진휴 (건축01-07) 건축사사무소 김남 대표

“좋은 집 지어달라며 어떤 간섭도 안 한 노부부 깊은 인상”

김진휴 (건축01-07)
건축사사무소 김남 대표





아내와 함께 젊은건축가상 선정
“업계 종사자의 인정 영광스럽다”

김진휴 건축사사무소 김남 대표가 부인 남호진 소장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젊은건축가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건축은 올림픽 같은 게 아니어서 객관적으로 순위를 매길 수 없는 분야인데, 그럼에도 수상자로 뽑아주신 건 저희의 고민과 노력을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공감하고 인정해준 것”이라며 “무척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김 동문은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일본·스위스 등 해외 유수의 건축 회사에서 일하다 2014년 개인 사무소를 차렸다. 8월 22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김남 회의실에서 김진휴 동문을 만났다.

“저희 이름을 걸고 준공된 건물이 마땅히 없는 상태에서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 몇 년은 새로운 건물을 설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죠. 도면을 쳐다도 못 볼 만큼 힘든 시간이었어요. 저희 사무소가 지금 입주해 있는 이곳 ‘쿼드(Quad)’가 지어지고 나니 조금씩 일감이 들어오더군요. 하나, 둘… 완성된 건물이 축적되면서 나도 쓸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죠.”

쿼드는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의 5층짜리 건물. 뚜렷한 특징에 따라 4분할 되는 점에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다. 주거지역 건축법상 옆 건물의 일조권을 침해해선 안 되는 까닭에 꼭대기 층 벽면은 사선을 띠며, 입주 세대 수에 따라 일정한 주차 공간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1층은 김남 사무실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차장이 된다. 2·3층엔 3개 세대씩 6세대가, 4층엔 테라스가 딸린 2개 세대가 들어서 있다.

“저희가 설계했지만, 여기에 사무소를 차릴 생각까진 없었어요. 5층도 원래는 가정집 용도의 펜트하우스였죠. 덕분에 침실과 주방, 샤워실까지 갖춘 회의실이 됐습니다. 일하다 지치면 직원들 몰래 와 눈을 붙이기도 해요(웃음). 반지하 공간을 메우지 않고 1층과 합쳐 마련한 사무실 공간은 눈높이에서 바로 화단의 흙과 꽃을 볼 수 있고 채광도 뛰어나 지금 봐도 잘한 거 같아요.”


‘쿼드’, 김경태 작가 촬영, 김남건축 제공.


김남 건축은 쿼드를 비롯한 다세대 주택과 충북 충주호 인근에 ‘호숫가의 집’ 같은 단독주택, 서울 흑석동에 ‘은로유치원’, 광주 말바우 사거리에 ‘제일 볼링센터’까지 공공과 민간, 상업용과 주거용 등 다양한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건물은 무엇인지 묻자 특정 건물 대신 기억에 남는 건축주를 소개했다.

“은퇴와 함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이사하는 노부부셨어요. 누가 저희를 소개한 것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셨는데 어디에 쓴 저희 글을 보고 오셔서 믿고 맡길 테니 좋은 집을 지어줬으면 좋겠다, 하시더라고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큰돈이 들어가는 만큼 건축주 입장에선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데, 정말 아무 말씀 않으셨죠. 건축사로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온전히 건축물에 쏟을 수 있었던, 즐거운 기억이 많은 집입니다. 건축주 분들도 무척 좋아하셨고요.”

인생의 새로운 막을 시작하는 노부부에게 기분 좋은 친구같은 집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설계한 이 건물은 부부가 각자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취미로 재봉틀을 돌리면서 밭일 하러 드나드는 남편을 볼 수 있고,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집 안팎을 오가는 아내의 기척을 들을 수 있다.

“저희는 아름다움이 담긴 건물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아름다움은 즉각적 심미적 측면의 아름다움은 아니에요. 희소성에서 오는 아름다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루기 어려운 어떤 것을 이뤄내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이죠. 왕정 시대의 궁전이 귀한 건축 자재를 들여 이를 구현했다면 저희는 콘크리트처럼 흔한 재료를 써도 정성을 들이거나,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것을 만들어 드물어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콘크리트는 건축물을 떠받치는 구조적 강성을 확보하는 게 주목적인 재료. 표면이 거칠어지면 매끈한 마감재를 붙여 가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콘크리트는 벽이 세워지고 지붕이 올라가기 전까진 비바람에 노출돼 거칠어지는 게 당연. 때문에 그런 콘크리트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유지하는 일은 기술적 집중력을 비롯해 재료에 대한 선입견까지 돌파해야 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혹자는 아름다움이라기보단 어려움이나 귀함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 그런 관념이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입니다. 건축은 건축주 혹은 건물의 사용자를 전제로 하는 매우 실용적인 행위지만, 건축사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실용성이나 심미성, 효율성을 넘어 건축을 위한 건축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균형에서 아름다움이 비롯한다고 봐요.”

개원 날짜가 못 박혀 있는 유치원처럼 공공 기관의 경우는 준공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고, 수익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민간 건물은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건축가에게 설계의 시간이 늘 촉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나름의 고충은 피할 수 없는 법. 그럴 때 동문 건축가들이 있어 큰 위안이 된다고.

“건축학과 동문 단체카톡방이 있어요. 위아래로 한 10년쯤 되는 선후배와 동기들이 있죠. 덕분에 힘들 때 새삼 혼자가 아니란 것을 깨닫기도 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구한 적도 많습니다. 안정된 조직을 떠나 더 좋은 건축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을 택한 분들이죠. 앞으론 저도 누군가에게 조언해줄 수 있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