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8호 2023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금융 만난 미술시장, 다가올 불경기 두렵지 않아요”



“금융 만난 미술시장, 다가올 불경기 두렵지 않아요”

김재욱 (경영00-08)
열매컴퍼니 대표



국내 최초 미술품 조각투자 시작
미술품 담보대출 등 선보일 것


이우환, 박서보, 쿠사마 야요이…. 미술시장을 주름잡는 대가들의 그림이 즐비했다. 열매컴퍼니가 운영하는 대치동 취화담갤러리에 들어섰을 때다. 그림들의 주인은 1명이 아니다. 때로는 수십명도 넘어간다. 열매컴퍼니에서 만든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통해 공동구매 형식으로 소유권을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는 2018년 국내 최초로 미술품 조각투자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은 부동산, 음악 저작권, 한우까지 조각투자가 이뤄지지만 당시엔 생소한 개념이었다. 1월 3일 만난 김 동문은 “처음엔 미쳤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젠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의 80%를 점유한 선두주자가 됐다”며 웃음지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학과 동기 30명 모임에서 김환기 화백을 얘기하면 단 한 명도 아는 친구가 없었어요. 최근엔 생각보다 많이 알더라고요. 미술품을 투자 자산으로 보는 시각은 높아졌는데, 평범한 일반인이 옥션이나 갤러리서 그림을 사고 파는 게 쉽지 않으니 그 어려움을 해소시켜 주는 셈이죠.”

아트앤가이드의 미술품 공동구매 방식은 이렇다. 그림을 선구매해 공동구매에 올린다. 1억원 초과 그림은 100만원, 3000만원 이하의 그림은 1만원 등 소액 단위로 참여할 수 있다. 수수료는 따로 받지 않고 공동구매가 이뤄질 때 회사도 5~10% 지분으로 함께 투자한다. 그림 가치가 상승하는 타이밍을 노려 재매각을 진행하고 양도차익을 나눠 갖는다.

“수수료만 챙기고 구매자의 손해는 나몰라라 하는 플랫폼이 되기 싫었다. 회사에서 공동구매에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팔아야 할 유인도 생긴다”는 설명. 지금까지 그림 165점에 대해 공동구매를 진행해 101점을 위탁 매각, 총 위탁 매각 금액이 총 213억원에 이른다. 공동구매가 15억9500만원이었던 이우환의 ‘동풍’은 22억원에, 1억1000만원에 공동구매한 단색화 거장 윤형근의 ‘무제’는 1억5000만원에 매각했다. 목표 수익률 20%을 달성하면 매각하는데 평균 가격상승률을 따지면 29% 정도다.

누가 봐도 좋은 그림을 싸게 사는 일이 쉬울까. 관건은 가치 평가다. 그는 “국내에 우리보다 작품 가격을 잘 산정하는 회사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작품 평가 노하우가 풍부한 유명 옥션과 아트페어 출신의 내부 심사위원단을 갖추고 데이터에 기반한 평가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작품을 볼 땐 스타일과 소재, 작가 생존 여부, 색감과 사인 유무까지 꼼꼼히 분석한다.

작품 보는 눈이라면 대표부터 빠지지 않는다. 김 동문은 개인 소장작만 300점에 달하는 컬렉터다. 고1까지 그림도 그렸다. 부모님 뜻에 따라 경영대에 진학 하고도 전시회장과 미술관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CPA를 취득하고 회계사로 일하며 아트펀드의 세계를 접한 후, 연봉을 깎고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미술시장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알면 알수록 폐쇄적인 미술 거래의 구조를 바꾸고, 대체투자 자산으로서 미술품의 가치를 알리고픈 포부가 생겼다. 회사를 차리고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서 산 첫 그림이 김환기의 ‘산월’이었다.

“화랑에서도 반신반의했죠. 조각 투자로 그림을 팔아 올 테니 수수료만 달라는 ‘브로커’는 전에도 있었거든요. 전 무조건 모든 작품을 제 돈으로 샀어요. 작품을 사는 순간 ‘컬렉터’가 되고, 미술시장에서 위치가 바뀌니까요.”

7분 만에 19명의 투자자가 모여 공동구매가 성사된 ‘산월’은 57일 만에 22% 높은 가격에 재매각했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리면 신바람이 나지만, 공동구매가 더디게 차기라도 하면 잠 못 이루기도 했다. 실물 한 번 안 보고 수익만 바라보며 구매하는 구조가 자칫 ‘돈 될 그림’에만 관심이 쏠리게 만들진 않을까. “소위 ‘팔릴 작품’을 다루긴 하나, 선호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선호도가 떨어지지만 가격이 현저히 낮은 작품도 찾는다. 10번 중 2~3번 정도는 중견이나 신진 작가 작품을 올리려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고 파는 투자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미술품에 푹 빠져 컬렉터가 된 고객도 더러 있다.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 설명도 안 읽고 구매하시던 분이 ‘저번 그림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 참여 안 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선호가 생기신 거죠. 매주 미술시장의 애널리스트 리포트 같은 뉴스레터를 보내드리는데 꾸준히 읽은 분들은 어느 화랑에 가도 ‘그림 좀 안다’는 소리 들으신대요.” 그림이 좋아 시작한 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최근 정부가 미술품 조각투자에 증권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자본시장법을 적용받게 됐다. 경기 침체로 미술시장의 위축도 예견됐지만 그는 “더 적극적으로 미술시장에 금융 기법을 도입할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반가워했다. 이미 탄탄한 작품 가치 평가력을 바탕으로 미술품 담보대출 서비스를 시작했고, 아트펀드, P2P방식의 미술품 거래도 도입하려 한다.

“앞으로도 계속 미술과 금융을 접목시킬 생각이에요. 미술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싶거든요. 선진국들은 미술시장의 35~40% 규모로 미술 금융 시장이 형성돼 받쳐주고 있는 반면, 국내 미술시장은 유동성 공급 방법도 한정적이고 거래 방식도 전통적이어서 시장에 충격이 오면 출렁이죠. 경기가 침체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미술시장을 만들고 싶어요. 전국 500개 갤러리와 딜러, 옥션, 개인 컬렉터 중 저희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자부합니다.”

박수진 기자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 아트앤가이드: https://artnguid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