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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2022년 10월] 뉴스 본회소식

“소설 한 편이 지역사회 먹여 살려” 봉평서 만난 이효석 문학의 향기

이효석 문학기행


“소설 한 편이 지역사회 먹여 살려” 봉평서 만난 이효석 문학의 향기


“한 명의 작가가 지역사회 전체를 먹여 살리는 곳은 강원도 봉평이 유일합니다. 가산 이효석 선생은 일찍이 자신의 고향 봉평을 무대로 ‘메밀꽃 필 무렵’을 썼죠. 이효석 문학관 설립은 물론 그가 살았던 ‘푸른집’ 일대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그가 태어난 생가 일대는 메밀 음식 전문 식당가로 꾸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백억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올리고 있죠.”

이민부(지리교육74-78)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의 해설 및 안내로 동문 29명이 이효석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9월 22일 제4차 국토문화기행으로 강원도 봉평 일대를 둘러본 것. 소설 속 무대인 봉평 시장은 물론 주인공 허 생원이 봇짐을 지고 넘었을 고개며 기막힌 인연이 이뤄졌던 물레방앗간까지 살폈다. 동문들은 그 앞에서 사이좋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미소 지었다.

이효석 작가는 35세에 세상을 떠나는 짧은 생애 동안 300편 이상의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기고문, 답사문, 번역문 등을 남겼다. 특히 지리, 지역, 장소에 대한 감각과 서술이 눈에 띄어 정여울(독문95-00) 평론가는 “이효석은 특정 공간에 애착을 갖는 것을 넘어 인류 보편의 심상 지리(mental geographies), 상상 지리(imagined geographies)로 확장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경성제대 졸업 후 총독부 산하 도서과 검열계에 취업한 이효석은 친일 비난이 일자 곧 사직했습니다. 역사 대신 풍토 지리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죠. 그의 작품에선 지역, 장소, 공간에 대한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에 대한 설명이 매우 상세합니다. 그가 살았던 평창, 경성, 평양과 자주 여행했던 만주에 대한 지리적 기술이 특히 자주 등장하죠.”

커피와 빵을 즐기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할 만큼 서양 문물에 친숙했던 이효석은 슬하에 2남 2녀를 뒀으며, 1940년 막내아들과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1942년 별세했다. 이효석의 부친은 아들 내외를 수습하여 평창군 진부면에 묘역을 만들었지만, 1973년 영동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평창군 용평면 장평리로 묘소를 옮겼고, 1998년 영동고속도로 확장 공사 때 다시 묘소를 옮겼다. 부인 이경원 여사의 출신지를 따라 파주 ‘동화경모공원’ 함경도 구역으로 이장했다가 2021년 다시 평창으로 돌아왔다. 생전 못지않게 파란만장하다.
“이효석은 유럽을 매우 동경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특히 프랑스를 사랑했지요. 유럽의 풍모가 진한 하얼빈을 자주 찾았고, 동명의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태생적 자연미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첨단의 도시미에 천착했죠. 도시와 농촌, 해외 등을 작품 배경으로 활용함에 있어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분석과 기술이 탁월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4차 국토문화기행에 참가한 동문들이 이효석 문학관의 이효석 동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참가소감  아련한 그리움, 봉평을 찾는 이유


정연옥 (KFL 8기) 프리랜서 통·번역가

문득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되는 이 계절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국토문화기행을 떠났다. ‘산허리에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 다.’ 문학의 숲을 지나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생가, 문학관을 둘러보았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가운데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압축적인 삶을 살다간 이효석 작가. 죽어서는 평창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 같다. 더없이 청명한 하늘, 문학관의 녹색 정원,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이 마치 푸른 들판에서 한가로이 뛰노는 양들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잠시 아늑하고 포근한 정원의 벤치에 앉으니, 삶의 활력이 재충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메밀꽃 필 무렵’의 주제는 ‘자아정체성 찾기’이며, 이것을 로드무비적 방법으로 작품 속에서 구현했다고 한다. 허 생원은 ‘사랑’을 찾고, 동이는 ‘아버지’를 찾는 것 즉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이 ‘메밀꽃 필 무렵’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봉평을 찾아온다고 한다. 잃어버린 그 무엇, 그것에 대한 그리움, 아련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잃어버릴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온 것 같은 작가, 죽는 순간까지 지식과 문학에 삶을 불태운 부지런한 작가의 삶은 큰 울림을 안겨 주었다.

추수의 기쁨과 함께 자칫 찰나적 삶의 공허함을 느끼기 쉬운 가을날에 국토문화기행을 통해 충일한 삶과 살아 있음의 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민부 교수와 동창회 측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다음 기행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