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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2022년 8월] 기고 에세이

현미경 하나를 20명이 썼던 기억

양승영 경북대 명예교수

현미경 하나를 20명이 썼던 기억



양승영
지질57-63
경북대 명예교수


1950년대 후반 동숭동 캠퍼스에서 과학자의 꿈을 키우던 시절 당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소련이 느닷없이 인공위성을 쏴 올린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미국은 그동안의 과학교육을 반성해야 한다며 법석을 떨었고 우리나라도 덩달아 과학교과과정을 바꾸는 일이 있었다.

몇 년 후에는 미국도 소련에 뒤질세라 인공위성을 띄우고 1969년에는 달나라에 인간을 보냈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런 감격을 맛볼 수 있을까 참으로 아득하게 먼 나라의 일로만 생각했다.

그러한 일이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반도에서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지 않는가. 물론 로켓 엔진 기술이 차관 빚을 갚지 못한 러시아로부터 전수된 것이라지만 전수된 기술을 익혀 순수 우리 기술로 위성궤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이는 이제까지 다른 나라들이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와 비교하면 우리가 두세 번의 실패 끝에 1톤 이상의 위성을 궤도까지 성공적으로 운반한 것은 매우 놀라운 기술이라고 하겠다.

최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급격히 상승했다. 경제 규모가 10위권 안에 들었고 국방력도 5, 6위라고 한다. 그 외에 BTS를 비롯한 K-pop과 각종 한국의 문화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한 가지 넘기 어려워 심한 국민적 콤플렉스를 갖는 것은 노벨 학술상 수상자가 아직 없다는 사실이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금년에는 노벨 수상자 가운데 한국인의 이름이 들어 있을까 많은 이들이 기다린다. 아무리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지만 정말인가 싶다. 오래전에는 KBS에서 ‘노벨상에 도전한다’는 프로까지 여러 날 방영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 언론에서 외친다고 학문의 수준이 올라가겠는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조용히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며칠 전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이 상은 4년에 한 번씩 학계에 크게 기여한 40세 미만인 젊은 학자에게만 수여한다고 한다. 어찌 생각하면 노벨 학술상보다도 어렵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 한국인도 노벨 학술상에 이름이 오를 것으로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겠다. 정말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온 보람이 있다는 느낌이다.

돌이켜 보면 1957년 입학 당시 우리 교육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현재 중고교의 실험실만도 못한 실험실에는 흔한 암석 절단기도 없었고 편광현미경 한 대를 20명의 학생이 돌아가며 관찰했다.서울대 도서관에도 참고 도서목록을 찾아봐도 찾는 도서가 없어 실망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동기들은 앞으로 학계는 우리가 주인으로 책임진다는 엉뚱한 자부심이 있었다. 당시 학회지가 창간되기도 훨씬 전이어서 몇몇 동기들이 의논하여 원고를 모아 ‘Volcano’라는 학생 학술 잡지를 만들던 일, 이를 위해 선배들의 직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던 일이 기억난다.

정창희 교수가 1950년대 중반에 출간한 ‘지질학개론’(박영사)이란 저서는 최초의 대학 교재였고, 그 후에도 수십 년 간 지질학의 바이블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정 교수는 지질학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하셨고 한마디로 한국 지질학의 개척자이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정 교수께 ‘코로나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코로나가 풀리면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전화나 문자를 보내면 즉시 답을 보내시던 분이 답이 없다.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바로 다음 날 별세의 소식이 전해 오는 게 아닌가. 102세로 세상을 떠나신 우리들의 마지막 은사이신 정창희 교수께 명복을 빈다. 초, 중, 고, 대학을 통틀어 유일하신 은사님이 떠나시니 매우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