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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021년 12월] 기고 에세이

관악 치과병원에서 보낸 7년 

김윤정 관악서울대치과병원 교수
 
관악 치과병원에서 보낸 7년 


김윤정
화학교육01-05·치의학대학원05-09
관악서울대치과병원 교수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곳만큼 경치가 좋은 치과병원은 없을 겁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전면 창을 통해 진료실을 가득 비추던 어느 나른한 오후, 오랜만에 정기 검진 차 내원하신 어느 교수님의 한 마디로 외래 진료가 시작되었다. 

“관악의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이즈음 깊어가는 가을 풍경이 최고지요.” 나는 심심찮게 들어 왔던 멘트에 매우 익숙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드린다. 올해로 벌써 일곱 번째 맞이하는 단풍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시야를 가득 메우니,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한데, 또 다시 맥없이 넋을 놓고 상념에 잠긴다. 

2015년 1월, 관악서울대학교치과병원의 개원을 앞두고 임명장을 받은 후, 아직 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진료실 안에서 처음으로 통유리를 통해 관악캠퍼스의 광경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스무 살 그 시절 누구나 겪었음직한 수많은 고민과 방황이 새겨진 그 곳에 돌아와 보니, 세월이 흐른 만큼 캠퍼스는 더 많은 세련된 건물로 채워졌으나, 관악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특유의 압도적인 풍광은 그대로였고, 나는 고향에 돌아온 방랑자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7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관악서울대학교치과병원은 5만여 명에 달하는 학내 구성원과 인근 지역주민의 관심과 애정으로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다. 전 의료진을 교수로 구성하고 첨단 장비와 연구 시설을 갖추어 진료의 전문성을 극대화했으며, 다양한 협진 시스템을 갖추고 환자의 편의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도록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주민 대상의 강의나 무료진료를 진행해 왔으며, 지역사회 치과의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패스트트랙으로 환자를 의뢰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했다.

최근에는 시대를 앞서가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병원으로서 임상 교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정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지난 해부터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으로 지정되어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을 선도하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들에게도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찾아주시는 분들의 잇몸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로서, 필자 또한 양질의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평생 주치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궁리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조금은 성장해 있었다. 학내 구성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신선한 연구 아이디어나 가감 없는 비평, 때론 삶에 대한 통찰을 얻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대학을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석학들을 가까이서 뵐 수 있음에, 치과의료인의 무미건조한 삶에 지성과 식견의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매 순간 벅차고 감사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암울한 터널 속에서도 철저한 방역 하에 진료에 매진하고, 비대면 학술교류를 이어오며 쉼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터널의 끝이 반짝이고 있다. 이제 이 지성의 전당에서, 천상의 뷰를 자랑하는 관악서울대치과병원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에도 변치 않는 것이 있는 법. 오랜 벗에게 단풍잎에 짧은 시를 써서 보냈던 조선 후기 문인 서영보를 떠올리며, 어느새 창밖에 소복이 쌓인 낙엽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들고 연필로 끄적인다. “언제까지나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당신만의 편안한 주치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