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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호 2020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성품 곧은 춘향만큼 생각이 아름다운 ‘미인’ 되고 싶어”

춘향선발대회 진 신슬기 재학생

“성품 곧은 춘향만큼 생각이 아름다운 ‘미인’ 되고 싶어”

춘향선발대회 진
신슬기 재학생



피아노 전공, 한국무용 선보여
상금으로 마스크 2만장 기부



“교수님, 저 이번 주에 남원 가요.” 전북 남원에서 열리는 춘향선발대회 본선을 앞둔 9월 어느 날. 몰래 대회를 준비하던 신슬기(기악 2년)씨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도교수인 이민정(기악83-87) 교수의 답은 “이도령 만나러 가니?”. 농담인데, 가슴이 ‘뜨끔’했다.

남원으로 향한 신씨는 춘향 진 화관을 쓰고 돌아왔다.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재원으로 주목받더니, 상금으로 남원에 마스크 2만장을 기부했다. ‘마음씨도 곱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50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춘향 진’ 신슬기씨를 10월 27일 관악캠퍼스 내 카페에서 만났다. 중간고사와 씨름하고, 동아리 일을 하다 바삐 달려온 수수한 대학생의 모습. 쪽진 머리와 한복 차림이 아니어도 반듯하고 선한 인상은 대회에서 본 것과 같았다.

“나도 인생에서 한 번쯤 가장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춘향제를 알게 됐습니다. 한복을 입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이끌렸죠. 무엇보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어요.” 미인대회 하면 떠오르는 미용실 원장의 강권 같은 건 없었다는 그의 말. 오히려 부모님의 반대로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며 몰래 출전을 준비했다. 코로나19로 합숙 심사가 없어진 대신 심층면접이 강화돼 학교 수업을 들으며 남원을 오갔다. “춘향선발대회가 서울대 입시보다 관문이 많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웃음지었다.

“혼자 잘해왔는데 마지막 심사를 앞두고 남원에 갈 KTX 차비가 떨어진 거예요. 어머니께만 살짝 말씀드렸더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오라’며 응원해 주셨어요. 비대면 본선이라 남원에 오실 수 없었거든요. 진이 된 후에 아버지는 ‘그 정도는 아닌데…’ 하면서 떡을 돌리셨고요(웃음).”

전통음악보다 서양음악이, 한복보다 드레스가 익숙한 그다.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대회 특성에 맞춰 한국무용을 준비했다. “1학기 때 비대면으로 한국무용 교양수업을 듣고 처음 우리나라 전통의 매력을 느꼈어요. 알음알음 선생님을 찾아 배웠는데 특기로 선보이면 좋을 것 같았죠. 몸치라서 고생했지만 연습하는 100일 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친구들은 처음 보는 제 모습이 신기해서 많이 웃었다고 해요.”

신씨는 10세에 피아노를 처음 시작해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나왔다. 고교 시절 수리음악콩쿠르, 한국쇼팽콩쿠르 등 유수의 콩쿠르에 나가 여러 번 2위를 했다. 2위도 대단한 결과지만 춘향 진으로 처음 1위의 기쁨을 맛본 셈. 의미가 더 남다르겠다고 얘기하자 쑥스러운 듯 웃었다. “콩쿠르 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어요. 모래를 꽉 쥐면 손에서 흘러나가듯이, 결과에 너무 집착하면 끝이 좋지 않다는 걸 배웠죠. 대회에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되 최대한 즐기자는 마음으로 나갔고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2020 춘향선발대회 진 수상 모습 


오래 꿈꿔 왔고 여러 번 도전 끝에 입학한 모교다. 대회를 준비하며 “혹시라도 서울대에 폐를 끼칠까” 걱정도 했다. 외적인 요소만큼 생각과 가치관의 아름다움도 보여주자는 태도로 임했다. “서울대에서 만난 사람들 덕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아요. 평소엔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장난치다가도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 ‘역시 서울대구나’ 생각하죠. 내내 음악만 하다가 타대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야가 넓어지기도 했고요.”

입학 후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온 당찬 면모도 있다. 결혼식과 교회 반주, 입시 레슨,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 아르바이트를 했다. 모교 방송동아리 SUB에서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다. 매일 오후 다섯 시 교내에서 신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음악도가 ‘딴짓’한다 혼나진 않았을까. 그는 “이민정 지도교수님이 너무나 좋아해 주셨다”며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제가 서울대에 와서 제일 잘한 일은 교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에요. 학생이지만 한 사람의 예술인으로 존중해 주시고, 음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주셨습니다. 교수님을 정말 존경하고 닮고 싶어요."

신씨의 친할아버지는 서세옥, 고 민경갑 동문 등과 함께 동양화가 단체 묵림회에서 활동한 신성식(회화54-58) 화백. 손녀가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도, 춘향 진이 됐을 때도 누구보다 기뻐했다. “춘향전에서 변사또가 방탕하게 잔치를 열 때 암행어사 몽룡이 출두해서 시를 내잖아요.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흐른다…’는. 대회 끝나고 추석에 모였을 때 할아버지가 그 시를 천에 붓글씨로 써서 선물해 주셨어요. 제 소식을 듣고 도서관에서 춘향전을 판본별로 다섯 권이나 읽으셨대요. ‘대단하시다, 역시 서울대 동문은 다른가?’ 생각했어요(웃음). 동창신문에 나온 걸 아시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SNS를 통해서 까마득한 후배를 축하해주는 동문들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배우 박지영, 이다해, 아나운서 윤태진 등 역대 춘향대회 입상자와 미스코리아 진 이하늬 동문 등이 방송 연예계에서 활약 중이다. 많은 관심과 예측 속에서도, 이제 갓 세상에 이름을 알린 스물 셋 대학생은 차분하게 자신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대회 출신들이 이런 길로 가더라’고 많이 말씀하시지만, 아직은 어떤 길로 국한하고 싶지 않아요. 영화 ‘주토피아’ 보셨나요? ‘애니원 캔 비 애니띵(Anyone can be anything)’이라는 대사처럼 저도 지금 아무것도 아니니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 시절을 잘 활용해서 제가 가진 재능과 노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