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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2020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총알 배송이 불편한 이유

김희원 본지 논설위원
<느티나무 칼럼>

총알 배송이 불편한 이유

김희원
인류89-93
한국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에도 사재기 없이 일상이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로 K-배송의 힘을 꼽는 이들이 있다. 24시간 빠르고, 저렴한 국내 배송이 필수 기간산업이 된 것은 팬데믹이 도래하기 전부터였다. 저녁에 주문한 물건이 다음날 아침 문 앞에 배달돼 있는 총알 배송 서비스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경탄스러운 것이다. 주문하고 잠자는 사이에 배달돼 아침 문 앞에 물건이 놓여있는 새벽 배송은 마법과도 같다.

그러나 나는 지나치게 편리한 배송이 불편하다. 진짜 급한 게 아니면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라고 딸에게 부탁한다. 이건 분명 마법이 아니라 밤잠을 자지 못한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인데, 소비자에게 편리한 만큼의 대가를,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지불하는지 의심스러워서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19가 쿠팡 물류센터를 덮쳤을 때, 물건을 분류하고 내리고 싣는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지 모두 알게 됐다. 수년째 눈덩이 적자에도 불구하고 쿠팡이 포기하지 않는 무료 배송은, 언젠가 부메랑처럼 소비자에게 돌아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일 뿐만 아니라 이미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가 사회 이슈가 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지금도 택배연대노조는 과로사 대책을 촉구하며 시위 중이다. 우체국 택배 덕분에 자가격리의 시대에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택배기사들은 건강과 안전을 상하고 있다. 배달의민족(배민) 라이더스는 월 소득이 최고 600~700만원에 달하는 ‘좋은 일자리’로 홍보된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앉은 채 빵을 집어 삼켜가며 하루 15시간씩 일한 대가라면 그것은 당연하다 할지언정 넉넉한 몫이라고 해선 안 될 일이다.

이런 불편함을 뚜렷하게 자각한 것은, 빠르고 편리한 배송이 공짜가 아닌 것이 당연한 세상을 경험한 이후다. 최근 2년간 캐나다에서 머무는 동안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느린 생활속도 때문에 적잖이 애를 태웠다. 가격표에 덧붙는 세금과 팁도 불만스러웠다. 내 손으로 조립하는 DIY 가구를 사는데도, 배달 건당 10만원 가까운 배달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되뇌었다.

불만 속에서 가구가 배달돼 왔을 때 더 놀란 것은, 덩치 작은 가구 부품들을 2명의 기사가 들고 오는 점이었다. 그 순간 한국에서 배송료 2만원에 무거운 소파를 등에 지고 우리집 계단을 올라오던 배달기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낡은 냉장고를 수거해 가던 환경부 폐가전 무상수거 기사는 약속시간을 정하기 위해 통화를 하면서 “그 시간에 사장님(남편)이 집에 계시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무료 수거와 2만원의 배송료는, 두 명이 해야 할 일거리를 한 명에게 얹어 절감한 비용으로 얻어낸 이익임이 분명했다. 내 불편함의 근원은 자명해졌고, 너무 편리한 서비스를 주저하게 됐다.

시장경제 질서에서 누군가의 임금이 다른 누군가의 비용이 되고 누군가가 지불할 가격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소비자가 되면 재화와 서비스가 ‘지나치게 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욕망만큼 누군가의 노동에 대해 제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기를, 그런 기업에 지갑을 열기를 기대해 본다. 시대의 화두인 공정함의 의미가, 내 몫만 제대로 챙긴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