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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2020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지구의 주인은 인간 아닌 미생물

김규원 모교 약대 명예교수
<명사칼럼>

지구의 주인은 인간 아닌 미생물

김규원
제약72-76
모교 약대 명예교수

인간 중심 사고가 팬데믹 초래
생명체의 상호의존성 깨우쳐야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우리의 일상사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주저앉을 정도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나 병원균에 의한 또다른 재앙도 배제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의 존재와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생물은 우리 몸뿐만 아니라 공기, 물, 토양, 대양까지 지구 모든 곳에 서식하고 있다. 미생물들은 인간 세포에 비해 보통 100배 이상 작아서 우리 몸의 조그마한 틈새에도 서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모근과 같이 피부 깊숙이 산소가 부족한 곳에도 서식하고 있으며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 등 습한 곳에는 터줏대감 노릇하는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비교적 건조한 손에도 150종 이상이 있고, 입의 점액에는 800여 종, 코 점액에도 900종 정도가 서식한다. 인체내부의 장내에는 약 5,000여 종이 있으며 대변 양의 60%(1g당 1,000억개의 박테리아) 정도를 차지할 정도다. 이들 인체 미생물들은 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몸의 세포들과 긴밀한 우호적인 상리공생의 관계를 이루어 공존하고 있다. 우리 몸이 미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미생물들은 우리에게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류, 소화효소와 항생제 등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다.

이런 작은 크기에 의해 미생물들의 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전세계 인구는 약 80억명(8×109)이고, 동,식물의 수는 약 1×1021 정도로 추정이 된다. 이에 비해 세균은 1×1030, 그리고 바이러스가 약 1×1031으로 계산이 된다. 따라서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 전체수보다 미생물의 수가 100억 배 이상 더 많다. 따라서 이 지구상에서 생물체의 거의 대부분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이 차지하여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들은 보이지 않은 미생물의 바다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이 지구의 주인은 미생물이다.

그뿐 아니라 약 45억년 전에 지구가 탄생된 후 35억년 전에 미생물이 최초로 출현한 생명체로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긴 시간 살아오고 있다. 이후 이 미생물들은 지구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하면서 엄청난 다양성을 확보해 왔다. 수동적으로 지구환경에 적응만 한 게 아니라 미생물 스스로도 이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켜 현재의 대기상태, 즉 이산화탄소가 적고 산소가 풍부한 대기 상태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미생물들은 작은 크기, 엄청난 수, 다양성에 의해 이 지구상의 어떠한 생태계의 변화에도 쉽게 적응하여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출현한 동식물들이 이 지구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보완해 주거나, 아예 필요한 물질을 제공하는 공생의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아마도 미래에 큰 기후 변화에 의해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할지라도 미생물들은 살아 남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도 미생물을 매개로 하여 다른 생물체들과 상호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인간과 그외 나머지로 분리하고, 그 나머지는 인간을 위해 마음껏 이용하고 한없이 쓰고 버려도 되는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끝없는 욕구에 맞추어 대량으로 플라스틱을 만들어 쓰고 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용도에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플라스틱 세상이다. 그러나 이 플라스틱이 자연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앞으로는 인간에게도 위해성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이것이 인간 중심 세계관이 낳은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의 코로나 사태 속에서 미생물과의 관계를 숙고해보면 인간과 나머지를 분리한 관점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지금까지의 인간 중심세계관에서 미생물의 바다에 살고 있다고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이에 대해 미생물의 상리공생 학자인 마르크 앙드레 슬로스가 ‘혼자가 아니야’(2019)라는 책에서 이제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폐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인간 중심 세계관에 기반한 과학기술에 의해 야기된 크나큰 오류를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중세시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의해 이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 지구의 장기거주 주인은 미생물이고, 우리 인간들은 이 미생물의 대양에 잠시 방문하여 기거하고 있는 생명체의 하나로서 미생물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실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서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존과 모든 생명체간의 상호연결과 상호의존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깨우쳐 준 귀중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