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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2020년 9월] 기고 에세이

안익태와 코리아 판타지아

이명숙 전 모교 음대 교수
안익태와 코리아 판타지아

이명숙
성악52-56
전 모교 음대 교수

국민의 애국심을 불타게 일으키고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애국가는 나라마다 그의 역사, 전통을 국민에게 일깨워주고 다짐하는 애국선서의 역할을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의식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행사에서 자랑스럽게 자국의 애국가를 부르는 나라는 193개가 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학교 조회시간이면 전교생이 일본 국가를 노래 불렀다. ‘기미가요’ 라는 일본국가는 엄숙하고 느리며 우수에 찬 단조(minor key)의 곡으로 일본 천황의 장수를 기원하는 소망의 곡이었다. 어린 초등학생에게는 엄중하고 지루한 곡이었다. 군주제도를 가진 나라 영국의 국가도 느리고 4분의 3박자의 왈츠(Waltz)형이어서 국민이 힘차게 제창하며 행진해 나갈수 있는 음악곡조는 아니다.
태평양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의 항복으로 1945년 8월 15일 조선은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독립국가 대한민국으로 수립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할머니께서 다락방에 숨겨 놓으셨던 태극기를 꺼내서 대문 밖에 걸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다 같이 태극기를 휘두르고 애국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교육자이자 정치가였던 윤치호의 시 ‘나라사랑의 노래’, ‘애국가’를 자랑스럽게 마음놓고 불렀다. 그러나 그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가락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에 윤치호의 시 ‘애국가’를 맞춰 토를 단 노래였다. 한 해를 보내는 묵은 해 제야에 부르는 이 노래는 우리의 기상을 북돋워 주는 음악은 아니었다. 외국 선교사들에게서 배웠던 이 노래는 중국에 수립된 한국 임시정부가 한국 국가로 노래 불렀던 곡이었다.
그 이듬해 나는 학교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애국가 레코드 제작 취입을 하게 됐는데 이것이 나의 성악가로서의 첫 데뷔였다. 전국 초등학교 조회시간에 이 레코드를 틀어서 학생들이 다같이 제창하기를 위한 것이었다. 1946년 늦가을 레코드회사 ‘지구사’ 사무실에서 최 선생님이라는 기술자가 알루미늄 같은 납판 레코드를 제작했는데 지금 그 레코드는 행방이 묘연하고 세월은 흘렀다. 역사 기록이 허술한 것을 탓해야 하는지, 이 유성기 판을 찾아 틀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후 한국정부는 1948년에 안익태 작곡인 ‘애국가’를 국가로 지정했다. 안익태가 1936년 작곡한 교향곡 ‘한국 판타지아’(한국 환상곡) 후반부 합창으로 연주되는 가락이 우리 애국가이다. 동경에서 독창회를 가졌던 1961년 12월 그 자리에 참석하셨던 안익태씨가 ‘한국환상곡’ 연주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한국환상곡’을 올바르게 연주하려면 통상 관현악단 수와 합창단 수를 크게 늘려 대편성 해서 연주해야 된다고 하셨다.
한국 국민이 아름다운 한반도를 길이 보존하자고 드높이 우렁차게 노래하는 우리 애국가는 긍정적인 뜻을 가진 장조(Major key)로 가락은 한 옥타브인 (저음에서 고음까지) 8도 되는 음역을 가졌고 노래 박자는 4분의 4(4/4)이며 알맞게 짧은 18소절을 가진 곡이다. 남녀노소 누구나가 편하게 소리 높여 부를 수 있는 이 곡이 우리 애국가이다.

국경일마다 국민이 다함께 그리고 힘차게 우리 애국가를 불러 애국심을 다시 한 번 선서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