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호 2020년 8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새로운 인재양성 시스템 마련 시급하다
이우일 한국과총 회장·모교 명예교수
새로운 인재양성 시스템 마련 시급하다

이우일
기계공학72-76
한국과총 회장·모교 명예교수
인재가 4차 산업혁명의 열쇠
코로나 계기로 교육개혁해야
1964년 일본은 동경에서 아시아 지역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했다. 동경은 2차대전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곳이다. 1945년 3월 10일 6시간 동안의 동경 대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는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에 버금가는 규모였을 정도로 동경을 비롯한 일본 대도시들은 철저히 초토화되었다. 그런데 불과 19년 후에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전 세계에 완벽한 부활을 선포한 셈이다. 일본은 올림픽에 때맞추어 당시 세계 최고속 열차인 신칸센을 개통하는 등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2차대전으로 인한 독일의 파괴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서독은 이미 1950년대에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부흥을 만들어냈다. 우리 젊은이들이 독일에 광부로 처음 파견된 1963년은 2차대전 종전에서 불과 20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 두 나라는 폐허에서 불과 20년도 안 되어 선진국을 다시 건설한 것이다. 무엇이 이 ‘기적’을 만들었을까? 모든 것이 파괴되었어도 부흥에 필요한 인재들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기업과 동의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키아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면서 핀란드 GNP의 25% 이상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시가총액이 핀란드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의 60%가 넘을 정도였다. 그러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2009년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고 말았다. 노키아의 부진은 핀란드 경제에도 직격탄이 되어 2009년 핀란드 경제는 -8.3%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노키아에서 무려 4만여 명의 인재들이 해고되었다.
그런데 불과 3년 후인 2012년 핀란드가 EU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2.3%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원인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했는데, 가장 큰 공로는 바로 노키아가 길러낸 인재들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우수한 인력들이 거대기업 노키아라는 온실에 안주하고 있다가 보호막이 없어지자 창업을 하며 자기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수백 개 벤처기업들이 생기면서 노키아가 차지하던 빈자리를 메웠고 핀란드 경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계를 휩쓰는 모바일게임 ‘앵그리 버드’나 ‘클래시 오브 클랜’ 등은 모두 핀란드 벤처기업들의 작품이다. 지금도 스타트업 천국 핀란드에서는 매해 4,000개 이상의 벤처기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핀란드의 우수하고 혁신적인 교육시스템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2차대전 후 독일과 일본, 얼마 전의 핀란드가 그랬듯이 우수한 인재만 있으면 환경의 변화에 얼마든지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이들 나라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탄탄한 교육시스템이 국가의 생존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인재 양성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우리가 선진국들을 따라 하는 빠른 추격자일 때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이해하고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인재들에게 요구된 임무였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 최고 기술들을 보유하게 된 지금 이러한 대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앞서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창의성과 도전정신의 함양이 중요한 교육 목표로 떠오른 이유이다. 달라진 교육 목표를 달성하려면 거기에 걸맞은 교육방법과 시스템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식전달은 영상 강의자료 등으로 미리 배우고 강의실에서는 토론 위주로 학습하는 거꾸로학습, 문제해결 위주의 프로젝트기반학습 등 우리가 도입해야 할 새로운 교육 방식들이 이미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사태는 온라인 비대면 교육을 일상화시키고 있다. 잘만 하면 이 위기를 교육개혁을 추진할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강의실에서의 일방적 지식전달 방법을 고수하면서 대면 강의를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학습방법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없이, 공교육에서는 강의실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놓기 위해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 등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래전부터 온라인을 활용하고 있던 사교육 기업들은 이미 본질을 꿰뚫고 소프트웨어인 콘텐츠와 학습방법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처할 때도 예외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의 총아인 AI 분야에서 가장 핵심은 전문가다. 전문가 확보가 AI 분야의 경쟁력을 가늠하며 세계 유수의 기업과 대학들은 핵심 인재 유치와 양성에 사활을 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도 AI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을 말할 때 건물과 장비에 대한 투자를 먼저 시작한다. 인재유치, 교육방법 개혁 등 소프트웨어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우리는 반도체, 무선통신,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전문가들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에 대한 꾸준한 투자 덕분인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전통적 사고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새로운 교육을 통해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우리가 참고할 모델은 이미 차고 넘친다. 미네르바스쿨, 에꼴 42 같은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외국에서는 이미 전통적 대학에서도 새로운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변화한 환경에 걸맞은 인재양성 시스템 마련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위기 극복 사례를 보며 마냥 부러워만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