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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2020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동문 기업탐방: 권병세 동문 설립 유틸렉스

40년 연구 쏟아부은 면역치료제로 암 정복 도전



40년 연구 쏟아부은 면역치료제로 암 정복 도전

권병세 동문 설립 유틸렉스



면역학자로 직접 면역치료제 개발에 나선 권병세 유틸렉스 대표(가운데).


면역학계 노벨상 후보급 석학
독보적 항암면역치료제 개발


“기초과학자로서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면역체계만이 부작용 없이 질병의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최근 암 치료의 대세는 면역항암이다. 전 세계에서 면역항암제 개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에도 이 분야에서 주목받는 바이오 벤처기업이 있다. 면역학 분야 세계적인 석학 권병세(치의학66-72) 동문이 2015년 설립한 ‘유틸렉스’다.

과거 교육부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국가석학’ 11인에 들며 노벨상에 근접한 국내 과학자로도 거론되는 권 동문이다. SCI급 논문 피인용 횟수가 통상적인 노벨상 수상자를 뛰어넘는 1만7,000회에 이른다. 그런 그가 필생의 연구 성과를 고스란히 쏟아부었으니, 유틸렉스는 업력에 비해 ‘내공’ 깊은 회사로 통한다. 7월 29일 서울 독산동 유틸렉스에서 만난 권병세 유틸렉스 회장은 회사명 ‘Eutilex’가 “라틴어로 ‘EU’(새로운), ‘TI’(면역치료의 약자), ‘LEX’(방법)을 합한 말”이라며 “면역항암제에 대한 오랜 확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치료제를 만들고자 회사를 세웠다”고 말했다.

“치대를 다니다 보니 순수과학 쪽이 더 적성에 맞아 방향을 틀었어요. 의과대학 기초연구실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면역학에 관심이 생겨 미국으로 갔습니다. 오늘날 각광받는 면역항암제의 표적을 그때 제가 발견했죠.”

권 동문은 ‘암세포 죽이는 세포’로 알려진 T세포의 활성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수용체인 4-1BB와 AITR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혈액 내 T세포가 암세포나 세균같은 항원의 자극을 받아 활성화될 때, T세포의 표면에서 신호를 보내 활성화를 완성하는 물질들이다.

조지아의대에서 면역학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대 박사후 연구원과 인디애나주립대 의대 교수를 거치며 연구를 통해 이들 인자의 면역치료 효과에 확신을 갖게 된다. “2000년대 초반 미국 학계에도 면역제재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퍼졌습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닿지 못하고 실험실에만 머물러 있었죠. 의사들이 ‘독한 약을 넣어야 암이 죽지, 면역기능 가지고 치료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에 수용하지 않았거든요. 면역치료제의 개념이 이미 완성됐고 확신도 있었기에 더 지체할 수 없었어요. 임상 진행까지 제약이 적을 것 같아 한국으로 오게 됐죠.”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이 보유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으로 가늠된다. 권 동문은 울산대 교수와 국립암센터 석좌연구원 재직 당시 이미 유틸렉스의 세 가지 주력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설립 3년 만에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파이프라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은 덕분이다.

가장 진척이 빠른 것은 ‘환자 맞춤형 T세포 치료제’. 우리 몸에 1조개 T세포가 있지만 모두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는 없다. 외부 항원 하나당 1만개씩의 T세포만 대응하기 때문이다. 특정 암 항원에 반응하는 T세포만 쏙쏙 골라내고, 대량으로 배양해 공격력을 높여주는 것이 유틸렉스의 T세포 치료제 기술의 핵심이다.

권 동문이 오래 개발해온 만큼 기술 이전 없이 자체 개발한다는 목표다. 우수 제조환경을 인정받은 GMP공장까지 세웠다. 암의 종류마다 달리 개발 중인 T세포 치료제는 혈액암 치료제 ‘앱비앤티’가 임상 1상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2상을 진행하며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폐암, 유방암 치료제 ‘터티앤티’, 뇌종양 치료제 ‘위티앤티’ 등도 국립암센터에서 임상 1상 진행 중이다. “유틸렉스의 T세포 치료제는 굉장히 유니크합니다. 자기 세포를 자신에게 넣기에 안전하고, 효능을 오랫동안 몸속에서 유지시킬 수 있는 게 장점이죠. 직접 개발하는 과정에서 최근엔 더 강력한 세포군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암 환자에게 채혈의 부담을 덜어준 것도 메리트다. 단 50ml의 환자 혈액만으로 항원 특이 T세포의 배양이 가능하다. “암의 소멸뿐만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권 동문은 강조한다.

‘면역관문활성제’는 일찌감치 해외에서 주목 받아 기술이전 가능성이 높은 항체치료제 파이프라인이다. ‘면역관문’은 말 그대로 T세포가 암세포에 면역반응 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관문. 면역관문에서 암세포가 T세포를 피하는 신호를 차단하는 것이 현재 쓰이는 ‘옵디보’, ‘키트루다’같은 억제제고, T세포의 활성을 촉진하는 것이 유틸렉스가 개발 중인 활성제다.

전투로 치면 면역관문억제제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전술, 면역관문활성제는 군사력으로 압도해 맹공을 퍼붓는 전술인 셈이다. 주력 면역관문활성제인 ‘EU101’은 T세포 활성화를 완성하는 4-1BB를 이용했다. 실험에서 타사 동종 치료제보다 더 효과가 좋았고 억제제와 병용하면 시너지를 냈다. 비임상 단계에서 중국 절강화해제약에 기술이전해 임상 1상 진행 중이다.

‘CAR-T 치료제’ 파이프라인은 기존의 동종 치료제가 가진 부작용을 대폭 줄인 것이 핵심이다. 환자 몸속에 있는 T세포가 정상세포는 공격하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해 완전 사멸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유틸렉스는 이러한 파이프라인을 매년 1개씩 정규 임상에 진입시키고 2024년부터는 매년 1개 이상 T세포 치료제를 발매할 계획이다. 목표한 대로 진행된다면 ‘꿈의 치료제’지만 임상 등 갈 길이 멀다. 인체라는 미지의 영역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바이오 기업의 숙명이다. “10년, 20년 동물실험을 해도 사람 한 명에 투입했을 때 상황이 더 복잡하고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지금도 인간의 면역기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서 불완전한 약을 개발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면역학적 원리로 보면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권 동문의 나이 67세. “엄두가 안 나 1년을 끌었다”는 그다. “제가 개발한 물질 덕에 차도를 본 지인이 ‘환자를 위해 어떻게든 계속해달라’며 설득도 했죠.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 환자에게 전달되어 끝을 맺는 걸 보고 싶었어요. 머릿속도, 생활도 복잡해졌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즐거움이 큽니다.”

100명 남짓한 본사 인력 중 약 40%가 석박사급 연구 인력으로 권 동문이 직접 트레이닝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경영진에는 공동대표 최수영(제약79-83) 동문, 연구소장 제훈성(공업화학79-83) 동문, 부사장 최소희(화학86-90) 동문 등 제약과 바이오에서 뼈가 굵은 모교 동문들이 다수 포진했다. “한국에서 신약 개발이 오랫동안 화두는 됐지만 실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회사 경영진에도 서울대 동문이 여러 명 있는 만큼 우리 동문들이 주체가 되어 개발한 신약이 우리나라의 최초, 세계적인 약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