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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호 2005년 5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백화점식 종합대학 통폐합…경쟁력 제고해야"

金振杓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담 : 본보 金鎭國논설위원(중앙일보 정치부장 대우)

金振杓(법학67 ­71)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정통 경제관료다. 국세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을 거쳐 청와대 수석,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후 경제를 총괄하는 부총리직인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올랐다.

 이런 金동문에게 교육부 수장자리를 맡겼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업무보고'를 발표하며 교육문제 해결에 시동을 건 金동문을 만나 취임 3개월 소감, 학창시절 이야기, 후학들을 위한 조언 등을 들어보았다.

-취임 당시 교육부 수장자리에 경제 관료를 임명했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장관 취임 후 3개월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지난 3개월 동안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을 위한 노력, 학업성적관리종합대책 수립, 인적자원강국 실현을 골자로 한 2005년도 주요 업무보고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습니다. 당면한 교육관련 국정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면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많은 사실들을 분명하게 학습할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이었죠.

 `수․우․미․양․가'식으로 표현하면 `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우' 정도로 자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익힌 바를 바탕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현장에 기반을 둔 정책집행으로 국민들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제시한다면 `수'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3월 25일 발표된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업무보고' 내용 가운데 국립대 통폐합을 통해 50개 국립대를 35개로 줄인다는 안이 눈에 띕니다. 35란 숫자가 나온 구체적인 배경은 어떻게 되는지요.

 대학 통폐합 등 구조조정 위주로 지나치게 보도되었으나 사실은 구조조정도 대학경쟁력 강화의 한 방편입니다. 우리 사회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학령인구가 급속히 줄고 있으므로 대학도 지금까지 백화점식 종합대학으로 운영되던 방만한 규모의 축소는 불가피합니다. 대학경쟁력, 질적 제고를 위해서는 대학 통폐합, 학과별 맞교환, 나아가 지역과 대학 특성상 강점을 갖는 분야로 발전해 가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국립대학교 수를 35개로 감축한다는 내용(50개 → 35개, 15개 감축)은 현재 통합을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한 대학(8개), 통합 논의 중인 대학(10여 개 내외)들을 감안해서 나온 숫자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고등학교내 폭력문제가 심각합니다. 여러 가지 해결안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학교폭력은 일반적으로 사회의 복합적 요인에서 발생하므로 가정과 학교, 관련기관, 사회 등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예방 근절을 위한 중․장기 종합대책 수립 및 관련 기관의 추진상황 평가, 범정부 차원의 연계체제 구축, 즐거운 학교생활 여건 마련, 학교의 자원봉사자 활용 등에 대한 지원,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제작․배포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상담과 대화를 통해 교육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정에서는 학부모님의 관심과 배려 및 학교와의 주기적인 정보교환 등이 필요하며, 사회적으로는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 존중, 유해환경 추방 등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향후 연구중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선정과 관련해 잡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형평성보다는 수월성에 입각해야 할 텐데, 이에 대한 복안이 있으신지요.

 수도권과 지방에 각각 7~8개의 연구중심대학을 선정,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육성해 대학이 국가균형발전과 지역혁신을 위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연구중심대학은 정부가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 Pool, 연구자의 능력, 세계적인 수준으로의 발전 가능성 등 다양한 요건에 비추어 대학 스스로 결정하여 발전해 나가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대학의 노력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죠.

 법학전문대학원 선정과 관련해, 현재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대통령자문기구, 05년 1월 발족)와 교육인적자원부가 협의하여 법학전문대학원의 추진방향 및 규모, 선정기준 등을 마련 중이며,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할 예정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추진의 근본 목적이 Global Standard에 맞는 고급 전문 법조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수월성' 확보는 국제경쟁력 차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 배출 인력이 사회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전문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사회 발전차원에서 지역에 대한 고려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양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주요 일간지들과의 인터뷰에서 3不 정책을 언급하셨습니다. 세계적 대학이 15곳 생기면 3不 정책을 완화하겠다고 언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유례 없는 교육열로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단계(고졸 대학 진학률 81.3%)이며, 교육열은 나라 발전의 원동력입니다만 현재 우수 대학 입학 경쟁에 과중하게 집중되는 현상이 심각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보내고 싶어하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수 대학을 지금의 3~4배는 더 늘려 수급을 조절해야 교육전반의 정상화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만약 현 상태에서 본고사를 부활시키면, 과거 경험했듯이 전국 대학과 학과를 한 가지 기준인 성적에 의해 줄 세우고, 이 결과가 평생을 걸쳐 따라다니는 현상이 생기며, 재수생 문제와 과외 열풍으로 초․중․고 교육이 황폐화되는 현상으로 회기할 수 있습니다.

 고교 등급제는 학교 선택권이 없는 평준화 제도에서 `선배' 성적으로 평가받는 모순이 있으며, 기여 입학제는 전국 학과를 기부금 액수로 줄 세우는 등 시기 상조로 판단되어 규제한 것입니다. 따라서 소위 `3不 정책'은 우수 대학을 육성해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경쟁이 많이 완화되면 폐지가 가능합니다.

 -고등교육평가원 설립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기와 구체적인 안을 말씀해 주십시오.

 국제화․개방화에 따른 우리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해 대학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학평가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며, OECD 등의 국가들이 90년대 후반부터 국가차원의 고등교육 질 관리 기구를 설립․운영〈핀란드(FINHEEC, 1996), 영국(QAA, 1997), 호주(AUQA, 2001), 아일랜드(IUQB, 2003)〉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

 교육부는 정부․대학 등으로부터 독립성․자율성을 갖춘 고등교육 평가 전담기구(가칭 고등교육평가원)를 2006년도에 설립할 예정이며, 국내외 고등교육 평가전문기관과의 체계적 연계를 통해 국제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공신력 높은 고등교육 질 관리 기구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국정관련 질문은 이 정도로 마치고, 학창시절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법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상대를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방직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권유와 당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그렇듯 법대에 대한 막연한 꿈이 법학을 전공하게 만들었죠.

 입학 후 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는 학점 까다롭기로 소문난 郭潤直교수님(민법총칙)과 劉基天교수님(형법총칙)으로부터 A학점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수업들은 학생이 2백여 명이었는데, 네 사람에게만 A학점이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경제학에 대한 미련이 늘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 3년간 고려대 이창렬 교수님 댁에서 입주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 댁에 큰 서가가 있었습니다. 경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경제학 관련 도서를 많이 읽었어요. 당시 금서였던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의 책도 접할 수 있었죠. 2학년 때까지는 법학 공부를 했지만 이후로는 경제학에 매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졸업 후에도 언론계로 진출해 현장에서 경제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법학보다는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죠.

 -대학시절 연합동아리인 `코러스'에서 활동하셨는데, 이 동아리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코러스'는 수원출신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일종의 향우회라고 볼 수 있죠. 나중에 고려대와 숙명여대까지 더해 5개 대학 연합동아리로 자리매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꽤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영벽'이란 잡지를 만들어 버트란트 러셀의 `The Conquest of Happiness(행복의 정복)'를 요약․번역해서 게재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4학년 때는 코러스 주최로 `70년대 한국의 안보와 통일'이란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했습니다. 제가 사회를 보고 주제 발표자는 당시 동아일보 黃善必기자, 토론자는 모교 朴奉植교수, 중앙일보 奉斗玩논설위원, 조선일보 朱燉植기자였어요. 그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중심이 돼 이런 심도 있는 토론회를 종종 개최하곤 했습니다.

 -사회 첫 출발을 은행원으로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원 배경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를 처음 봤어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다 신문사가 모집을 안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행정고시를 준비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이후 놀 형편도 안되고 노는 게 체질이 맞지 않아 바로 은행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신탁은행이었습니다. 그곳에 다니면서 모교 행정대학원에 들어가 고시를 다시 준비해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재무부 세제총괄심의관 시절, 금융실명제팀에 발탁돼 이 제도를 도입하는 데 큰 공을 세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에피소드를 들려주십시오.

 당시 금융실명제 담당국장을 맡고 있었어요. 금융실명제가 사회에 미칠 파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준비과정부터 보안을 철저히 지켜야했습니다. 금융실명제팀에서 일한 모든 사람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근무할 정도였죠. 그런데 사표를 써야 할 정도로 보안을 지켜야 하니까 예산을 따내서 작업실을 꾸밀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 李經植부총리, 洪在馨재무부 장관, 金容鎭재무부 세제실장, 저 이렇게 네 명이 5백만원씩 갹출해 과천 정부청사 주변에 아파트를 얻고 집기류도 빌려 비밀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처음에는 외국출장이라고 알려주고 김포공항까지 보냈다가 다시 복귀시켰죠. 소문이 나면 안됐으니까요. 그 덕에 보안이 잘 유지된 가운데 금융실명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국정운영에 있어 金부총리만의 스타일을 꼽자면…. 직원들과는 어떠한 철칙과 철학으로 함께 일을 수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합니다. 상황을 미리 예측해 닥칠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그것에 맞게 성실히 대처합니다. 그것이 일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란 직책은 그동안 성공한 장관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정운영을 하다보면 힘든 일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스트레스 해소책과 주량은 어느 정도 되시는지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인이 그렇겠죠. 저의 경우 운동으로 땀을 낸 뒤 샤워하고 푹 자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비결입니다. 운동으로는 자전거 타기나 걷기를 많이 해요. 경제부총리 시절엔 집에서 한시간 거리에 내려 일부러 걸어가기도 했어요. 스트레스란 것이 머리가 무겁고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악순환이 되면서 생기는 것 같아요. 일 처리를 미루지 않고 명확한 판단 하에 제 시간에 끝내는 것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주량은 예전 같지 않아요. 공보관 시절에는 기자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매일 폭탄주 10잔씩은 마셨죠. 그때 영향으로 아직도 언론에 술 잘 마시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게 못 마셔요.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골프와 등산을 주로 합니다. 골프 핸디캡은 14정도되죠. 매월 셋째 주 주말에는 지역구 당원들과 등산을 합니다.

 -선후배를 비롯해 막역한 사이로 지내는 죽마고우를 소개해 주십시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아무래도 가깝게 지내는 편입니다.

 -언급해 주실 만한 분이 없으신가요.

 언급 안 된 친구들이 섭섭해하면 어떡해요? (모두 웃음)

 -가족은 어떻게 되십니까.

 어머님을 모시고 있고 집사람과 아들, 딸 이렇게 다섯 식구입니다.

 -재수를 해서 법대에 들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 시험 실패 후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낙담해 있다가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부총리님에게 신앙은 어떤 것인지요.

 경복고 졸업 후 부친의 뜻에 따라 서울대 법학과를 지망했습니다. 시험 후 점수를 체크해 보니 `충분히 합격하겠다' 싶었는데,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찾아온 시련이었죠.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죽음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서해안 겨울바다에 뛰어든 순간 `이렇게 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더군요. 회개하는 마음이 들었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적으로 기독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이사를 다닐 때마다 교회 옆집이거나 윗집이었거든요. 신앙의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수원중학교 학생회장을 할 때 한 종교모임에서 金章煥목사님을 만나면서부터 입니다.

 -얼마 전 과학고 학생회장이 자살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학업 성취도가 굉장한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는데, 교육 부총리로서 성적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제 좌우명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이것을 논어에서 보면 `성실'이란 말로 표현됩니다. 자기입장과 처지를 비관하는 것은 주어진 여건을 탓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재벌 집에도 있어봤고 유명 정치인 집에도 있어봤는데 모두 다 문제를 갖고 살더군요. 남들이 보는 것과 자기가 느끼는 것은 정말 달라요.

 가톨릭 교리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까지 고려한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히 평등하게 창조하셨다.' 그런 것을 느낄 때가 많아요. 절대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조금씩 부족합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 스스로 대학에 실패한 경험이 있고 큰아들이 과학고를 지원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긴 여정을 생각하면 학창시절 몇 년이 생명을 걸 정도로 중요한 시기가 아니거든요. 언제나 차선의 방법이 있고 패자부활전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동문의 한 분으로서 서울대 총동창회에 대해 평소 생각하신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5년 전까지는 동창회 모임에 소홀하다가 나이를 점점 먹으니까 친구들 생각이 나면서 동창회 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같은 곳이 동창회가 잘돼 있다고 하잖아요? 특히 하버드대 동창회의 경우 해외 동문 관리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동문들에게 자료를 다 보내고 각 동문의 신상에 대해 늘 챙기고 1년에 한두 번씩은 팀을 조직해 세계를 순회하면서 각국의 동문들을 만나 인터뷰도 한다는군요. 우리 동문 가운데도 외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 동문들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킹을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서울대 폐교론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괜찮죠.

 그렇게 될 수가 있겠어요? 다만 서울대 못지 않은 좋은 대학이 빨리, 많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어요. 현재의 입시지옥이 소수의 몇 개 대학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에 좋은 대학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나의 잣대로 전 국민을 줄 세우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없죠. 다양성의 기초 아래서 합리적인 경쟁을 해야 대학도 발전하게 됩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좋은 대학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한국산업기술대 같이 산학협력이 잘 돼 취업률이 높은 곳도 생기고 한동대 같이 좋은 지방 대학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서울대 이전설 역시 근거가 없는 것이겠죠.

 그건 옛날 이야기죠. 이미 서울대를 제외한 많은 대학이 지방에 분교를 만들었고 지방에 서울대 못지 않은 좋은 국립대가 많이 있는데 이전의 필요성이 없죠.

 -동창회에서 장학빌딩을 건립해 장학사업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동창회에서 학생보다 교수님들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의 경우 장학금 대출제도를 통해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놨습니다. 또 최근 서울대생들의 경우 강남 거주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옛날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학생들의 공부할 여건은 좋아지는 반면, 교수들 특히 인문사회계열이나 신진학자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BK21'제도를 통해 도와주려고 하나 한계가 있습니다.

 40대 신진 교수들은 집안의 가장으로 엄청난 짐을 안고 삽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도 장만해야 하는데 한달 벌어 한달 살기 빠듯한 분들이 많아요.

 학문이 발전하려면 이분들의 연구가 아주 중요합니다. 솔직히 나이가 50세가 넘으면 더 이상 연구가 안돼요. 요즘 점점 학문세대가 젊어지니깐 25세~40세 사이에 바짝 공부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그 때가 가장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큰 문제죠. 이런 분들을 동창회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수한 사람들이 더 들어와 실력 있는 대학을 만드는 것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 때를 생각하면 늘 즐겁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청춘은 아름다워라!'란 소설이 있죠? 꿈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인생의 4년이라는 황금기를 정말 유쾌하게 보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파트타임 일을 통해 돈도 벌어야겠죠. 그 일을 경험하며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아요. 그러나 이 소중한 시간에 마음껏 책 읽고 공부하고 토론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학생 학자금 융자제도를 확대한 것도 돈에 구애받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동창회보를 위해서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