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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2020년 2월] 기고 에세이

봄의 길목에서

박평일 전 미주동창회 감사

에세이


봄의 길목에서



박평일
농경제69-76
전 미주동창회 감사


이틀째 버지니아 숲속에 비가 내렸다. 겨울비는 아름답다. 지난 추억을 회상하게 한다. 며칠 전에 한 지인이 보내준 아름다운 ‘입춘대길’, 전자카드를 보고서야 알았다. 봄이 왔다는 사실을. 평소에 나는 달력을 잘 보지 않는다. 시계도 잘 보지 않는다. 달력과 시계를 볼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내 달력은 대부분 비어 있고, 내 시계는 대부분 멈춰 있다.


지난 겨울 난 뭘 하고 지냈을까? 머리 속에 떠오르는 특별한 것들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면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하고, 명상이 끝나면 나와 몇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기도가 끝나면 검은 양파씨 한 티스푼을 씹어먹고 난 후, 따뜻한 물 한 컵에 사과 식초와 꿀을 한 스푼씩 타서 마셨다. 내 건강 관리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시나 책을 읽었다. 그러다 마음이 동하면 헛소리 같은 독백의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건강을 위해서 코코넛 오일 한 스푼을 마셨다. 그 다음 일은 순간 순간 변하는 변덕스러운 내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에 따랐다. 몇 시간씩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몇 시간씩 혼자서 산책을 하기도 했었다. 참, 가끔씩 지난 4년간 배운 진도북춤을 추기도 했었다.


이게 지난 겨울 매일 매일 나의 일기장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 순간순간이 나에겐 스쳐 가는 폭풍우 같은 거였고, 나는 그 폭풍우들을 즐겼었다.


언제 이 푹풍우가 멈출지? 어디로 폭우가 몰려갈지? 언제 또 다시 폭풍우가 몰아칠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글 쓰는 일이 그러했었다. 며칠이고, 몇 달이고 미친 듯이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몇 달, 몇 년 동안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다.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나는 단지 스쳐 가는 폭풍우의 도구에 불과했었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신에게 드리는 기도 중 하나는 ‘나를 신의 도구로 사용해 달라’는 소망이다. 12세기 가톨릭 성자로 불리는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기도문에서 배운 것이다.


나는 지극히 단순한 사람이다. 그래서 남들처럼 종교경전이나 철학서적들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읽지 않는다. 읽다가 내 맘에 드는 말이 나타나면 내 것으로 만들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평범하고 단순한 사람이다.


내가 예수로부터 배워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몇 가지는 이렇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다. 자유가 없으면 사랑도 불가능하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지금을 살아라. 사랑 안에서 죽으면 사랑 안에서 부활할 수 있다. 내가 어린아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천국(행복)을 누릴 수 없다.”


노장자로부터 배워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들은 “운명은 내가 다가가는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춤을 추고 다가가면 운명은 춤을 추며 나에게 다가오고, 내가 노래를 부르고 다가가면 운명은 나에게 노래를 부르며 다가온다. 세상은 내가 주는 대로 받고, 내가 심는 대로 거둔다. 삶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생각을 멈추고 삶을 살아가라. 흐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다. 머물지 말고 흘러가라.”


붓다로부터 배워 실천하려고 하는 것들은 “선택하려고 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있는 그대로가 전체이고 진리다. 삶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선물일 뿐이다.”


인도에는 늙어서 행복하게 춤을 추는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시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노인이 되면 이 세상도 늙어 간다. 그런 노인 중에 늙음을 어린애들 마음으로 거듭나 게임으로 즐기는 독특한 사람들이 있다. 평범 속 비범의 삶이다. 어린애들처럼 천진난만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시를 읊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나도 노후를 그렇게, 어린이들의 마음으로 스쳐가는 폭풍우들을 즐기며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