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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2020년 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살아있는 정신에게(Dem Lebendigen Geist)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명사칼럼


살아있는 정신에게(Dem Lebendigen Geist)



윤영관
외교71-75
전 외교부 장관
모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인문학 강좌·사회봉사 교육
전교생 필수교과로 부과해야


위의 제목은 제가 하이델베르크대학을 방문했을 때 어느 고색창연한 건물 입구에 쓰여 있던 글귀입니다. 학생들에게 ‘정신이 살아있으라’는 말이겠지요.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서 계속 이 글귀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특히 제 모교인 서울대를 생각하면 더 그랬습니다. 그곳은 제 삶의 터전이었지요. 거기서 6년을 공부했고, 26년 남짓 가르쳤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모교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만큼이나 안타까운 마음도 큽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지 10년쯤 지나서 학생들의 삶과 생각들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 후부터였습니다. 수업시간에 또릿또릿 눈망울을 굴리며 반응하는 명석한 그들과의 교류는 즐겁고 보람찼지요. 그러나 서서히 그들의 마음속에서 기대와는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지쳐 보였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조급해 했구요. 큰 담론이나 꿈보다는 학점 잘 따서 좋은 데 취직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입시 경쟁에 치어서 살아오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약한 듯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탁월한 지적 역량에 걸맞은 큰 꿈을 가질 법도 한데, 꿈들이 작은 게 아쉬웠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확실한 것,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더군요.


점차 제 전공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훗날, 제자들 중에 좋은 머리로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를 했는데 극단의 이기적 행동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생기면, 지금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대학이나 인생살이와 관련해서 무언가 꼭 들려줄 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매년 15~20명 정도 신입생들을 모아 다음과 같은 것들을 토론하는 세미나 과목을 10여 년간 열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 것인가?’, ‘내가 존경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롤모델은 누구이고 왜인가?’, ‘그 사람을 닮으려면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가야 하나?’,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떤 꿈을 꿔야 하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이런 주제들을 토론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일과 삶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하는 것을 꿈꾸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의 세계’ 말고, 그것보다 한 차원 높은 ‘지혜의 세계’가 있으니 거기에 눈뜨기 시작하라는 이야기도 들려주곤 했지요.


물론 한 학기 동안 그런 수업을 들었다고 그들의 인생이 확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도하게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회적 흐름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어느 순진한 교수의 몸짓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도대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물신(物神)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의 흐름 앞에서, 공동체가 점차 해체되며 위아래 모두 할 것 없이 각자도생하는 세상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모험하고 실패하고 재도전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경직된 사회경제 구조 속에서, 공정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닫혀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 그들더러 어쩌라는 것이냐는 미안한 마음도 한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먼 훗날 그들 인생의 분기점에서 한두 마디 제가 했던 말들이 생각날지. 실제로 여러 학생들로부터 그 강의를 수강한 것이 대학 시절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힘들어도, 역설적으로 그 젊은 학생들의 순수한 내면에 그런 말들을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갈증이 깔려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이들의 갈증을 서울대가 교육내용의 개선을 통해 해소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서울대 학부의 커리큘럼이 인성교육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조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인문학 강좌와 사회봉사 교육을 전교생 필수과목으로 부과하면 좋겠습니다. 외국대학들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전공을 불문하고 고전을 읽고 생각하게 하는 인문학 강좌를 강화해왔습니다. 시카고대학은 1931년부터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의 ‘뉴 플랜(The New Plan)’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학부의 세부 전공에 들어가기 전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입문과목을 필수로 듣게 만들었습니다. 서울대도 최근 들어 그런 목적의 과목들이 생겨나고 사회봉사 과목도 선택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목으로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동문 대선배이신 이어령 교수님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아무리 실용적인 학과라 할지라도 리버럴한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해. 4년이라는 짧은 기간이라도 리버럴 아트와 리버럴 사이언스를 마음껏 하는 특권을 누려야지. 그때부터 취직을 위해 자유를 억압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아? 나는 대학에서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어. 싱킹맨(Thinking man)은 정년도 없지. 내가 나를, 정신을, 혼을 구했기 때문에 자족할 수 있었지. 그런 4년의 삶이 있어야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거야. 그 귀중한 4년을 일찍이 사회화돼서 값싸게 팔아넘기면 안 돼. 일평생 딱 한 번 있는 기회니까.”


그분의 시대와 지금 젊은이들이 사는 시대는 다를지라도 이분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 교육의 약점을 꿰뚫는 혜안이 있다고 봅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퀴만 열심히 굴려대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자전거 타기 같은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마도 안 계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