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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019년 1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빚을 갚는 심정으로

심웅석 시인

동문기고



심웅석
의학59-65
시인


문학 교실에서 수업을 마친 후 평소와 같이 문우들과 점심 식사한 뒤에 차를 마시며 담소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5분이었다. 아차, 서둘러야 했다. 모교인 S대학교에서 금년 50주년 홈커밍데이 행사를 하는데 찬조하라고 납부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 오늘 수업 마치고 오면서 부칠 계획이었다. 주거래인 J은행 마감시간이 4시 30분이니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버스가 바로 있어, 시간 안에 낼 수 있었다. 은행을 나와 냇가 길을 천천히 걸어오면서, 내 인생과 모교인 S대학교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우리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불운도 따라붙고 행운도 찾아온다. 시골 촌놈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학에 다니게 된 것은 일생의 행운이었다. 물론 본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시험에 합격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황혼에 서서 생각해 보니, 이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혜택을 입었다. 이 은혜를 모교에 되돌려 갚아야 할 빚이라 생각했기에 적은 액수이지만 오늘 내려고 한 것이다.


국립이기에 등록금이 사립대학의 반 정도였고(졸업 때 한 학기 등록금이 2만5,000원) B학점 이상이면 신청하여 수업료 면제의 장학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유일한 고학 수단인 가정교사 자리도 좋은 곳으로 쉽게 구해 다녔다. 뿐만 아니라 좋은 교수진 아래서 공부하였기에, 전문의 시험에도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다. 학생 때, 전차 안에서 앞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가 교복을 보더니 얼른 일어서면서 “학생 여기 앉아요” 당연한 것처럼 자리를 양보해 주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의대이기에 종합병원에서 나와 개원을 할 때에도 S대 출신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환자들에게 더 믿음을 받았다. 그밖에도 살아가는 가운데 입은 은혜가 많다.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자신 있고 떳떳하게 처신을 해 왔고, 중학교·고등학교 친구들에게도 따뜻한 대접을 받아왔다.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사회생활 중에도,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모습으로 살지 않고, 정도를 밟아 살 수 있었다. 아마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학이었다면 대학에 다닐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최근에, 해당도 되지 않을 듯한 모 인사의 여식에게 부당한 장학금을 주었다고 대학 장학재단에 비난의 소리도 들린다. 성적 우수하고 집안 형편도 어려운 학생에게도 다 못 주는 장학금을 잘못 주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단체도 모두 완벽할 수는 없지 싶다. 강물도 흐르다 보면, 때로는 더러운 오수가 흘러들지만 큰 물줄기는 흐르면서 모두 정화되어 바다에 이른다. 이것 때문에 장학금 기부나 동창회비 납부를 주저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 될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에 비하면 모교에 되돌려 준 것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총동창회와 의대 동창회에 매년 이사 회비 몇 푼 내는 것, 이런 홈커밍데이에 납부서가 날아와야 쥐꼬리만큼 찬조하는 정도이니, 항상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개원을 지하철 2호선 대학 사거리에서 했기에 학생들 행사에 광고비 기십 만원 내본 적은 있다. 하지만 거금을 기부한 동문들의 명단을 볼 때 ‘이들은 자기 몫을 확실하게 하는구나’란 생각에 존경스럽다. 좀 더 뚜렷한 되돌림을 하고 싶지만, 업을 정리하고 신병을 치료하는 중이라 마음뿐이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에, 늘 모교에 빚진 느낌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