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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019년 1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대학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

우수 인재 길러 국가 부양, 시기·질투 거두고 지원해야

명사 칼럼




조장희
전자공학55-60
고려대 뇌과학연구센터장 및 석좌교수


우리나라 현대 대학의 역사는 반세기를 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국민뿐 아니라 국가도 대학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은 대학을 개인 영달의 한 도구, 사회적으로 필요한 간판, 승진을 위해 거쳐야 할 단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 등록금이 10년째 동결돼 어떤 대학은 고사 상태에 있는데도 일부 국민들은 “그것 봐라. 거~ 잘 됐다”는 비아냥거림까지 있는 게 현실이다. 30~40년 전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병역기피의 한 방법으로 사용됐고, 많은 대학들이 수금하듯 등록금을 거둬 대학재벌 행세를 한 것도 사실이다.


대학은 그 나라의 ‘머리’, ‘뇌’에 해당한다. 대학에서 우리는 경제 관료를 길러내고,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계 인물들을 길러내며, 산업을 구성하는 큰 기업에 핵심기술자를 양성해 공급한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은 국가적 차원에서 한 나라의 생존과도 같은 것이다.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곧 국가의 힘이라는 생각을 할 때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은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새삼 대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에선 100개의 대학을 엄선해 연구 중심대학으로 지정하여 과학기술, 경제 모든 분야에서 세계 선진국 대학에 도전장을 냈다. 중국의 100개 대학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으로 치면 20대 1로, 5개의 대학과 맞먹는다.


필자는 초빙교수로서 중국 상해의 교통대학(Shanghai Jiao Tong University: 1896년 설립, 중국10대 대학의 하나로서 연구중심의 명문 공립대학교. 공학, 정보기술 분야의 명성이 높음)을 가끔 방문하는데, 그 대학의 학생 수는 무려 4만명이나 된다. 더 놀라운 것은 4만명의 학생 중에 2만5,000명이 대학원생이며,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소위 말하는 ‘SKY대학’에 맞먹는 수준의 우수한 학생들로 분야별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항공연구소 한 곳에만 3,000여 명의 대학원 학생들이 연구하고 있는 것을 봤다. 2만5,000명의 대학원생은 우리나라 대학 전체의 대학원생과 맞먹는 규모로, 특히 교통대학 같은 우수한 대학원 학생들은 우리나라 일류 대학원 학생들과 맞먹는다는 것을 볼 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인 것이다.


이런 대학을 100곳이나 선정해 첨단 과학기술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웃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으로선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무섭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세계 선진국의 대학은 이미 국제경쟁에서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대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가르치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은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곳이다. 어째서 우리는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가? 국가는 물론이고 한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대기업들도 대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국가에서는 아직도 관료주도의 연구정책을 쓰고 있는가 하면 1분기에 10조원씩 이익을 내는 대기업들은 그 10분의 1조차 대학 발전을 위해 쓰라고 기부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늘날 대기업을 만든 인재들은 어디서 데리고 왔는가? 세계 속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학 졸업생들을 가질 수 있을 때 기업들은 세계 속에서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현실 속에서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 세계 속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경쟁력 있는 첨단 연구를 수행하고, 그 산물인 졸업생을 기업에 공급하여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우리도 중국과 같이 몇 개의 연구 중심대학을 선별하여 집중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되겠다.


둘째, 연구는 국경이 없다. 최고급 연구 인력을 세계 속에서 골라 와야 한다. 싱가포르 대학은 외국인 교수가 75%다. 이는 국가 경쟁을 위해서 세계 최고의 연구원과 교수들을 모셔 와야 된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학원생이다. 제대로 된 연구와 연구하는 교수가 없으면 오늘날, 영리한 대학원생들은 모두 최신 연구 환경과 교수진이 좋은 선진국으로 향한다. 국내 이류 대학에선 벌써부터 대학원생이 없어 연구를 못 한다고 야단이며, 일류 대학에선 좋은 학생을 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빼앗기고 이류 학생들로 겨우 채우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대학원생들은 연구의 꽃이다. 대학원생들을 전부 선진국에 빼앗기고 무엇을 제대로 하겠다는 것인가?


넷째, 연구는 세계 최고여야 하며 세계 최초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20조가 넘는 연구비를 쓰면서도 세계 제일의 연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앞서 얘기한 세계 최고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이자 최초의 연구는 연구를 하는 교수와 연구자로부터 나오며, 또한 이들을 뒷받침하는 연구비가 뒤따라야 가능해진다. 우리도 이제는 과학계에서 소위 말하는 ‘빅 사이언스(BIG SCIENCE)’가 있어야 되겠다. 빅 사이언스에 전제조건은 이것을 뒷받침할 사람(교수와 연구원)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대학은 이러한 좋은, 세계적인 교수와 연구원을 모셔 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좋은 대학이 꼭 필요하다. 정치, 경제, 과학기술 모두 우리의 문화이다.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우리가 문화민족이라는 좋은 증표이다. 어째서 세계 경제 10대국인 우리나라는 가까운 일본이나 구라파의 많은 작은 나라보다도 못한가!


대학은 우리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밝혀줄 인재의 산실이며 첨단 경제이론과 미래 과학기술의 산실이다. 국민 모두가 다시 한 번 그 ‘정체’와 ‘중요성’을 깨우쳤으면 하고, 국가는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비전 있는 ‘대학정책’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