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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2019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모교를 떠나며, 결과로서 답하라

김병섭 전 모교 평의원회 의장




김병섭(농경제72-76)전 모교 평의원회 의장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뛰어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창의로 어떤 학생은 논리로 어떤 학생은 열정으로 어떤 학생은 수려한 문장으로 또 어떤 학생은 분석으로 저를 압도하곤 했습니다. 그러한 희열을 준 학생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착실히 성장하는 소식, 또 뛰어난 지도자로 활약하는 소식을 들을 때의 열락(悅樂)을 준 제자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학교 전체를 위해서 다른 집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양보도 했던 도정근 학생회장과 홍지수 대학원 사무총장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헌신적인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앞서서 챙기고 또 내가 보지 못하는 면을 보게 만든 직원들, 그래서 ‘당신, 정말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들었던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여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학교 전체와 조합원의 장기적 이익을 선택하였던 박종석 노조위원장께도 감사를 표합니다.


훌륭한 교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각 분야의 대가들을 몇 발자국만 옮기면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훌륭한 동료들과의 교류는 제게 끊임없는 깨달음과 자극을 주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성과를 내어서 명성을 날리는 교수님들 덕분에 덩달아 대접을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동료 교수님들께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렇게 받은 관악의 은덕이 너무 크고 갚아야 할 감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 부채의식이 서울대 재직 내내 있었지만 평의원회를 맡은 지난 4년은 특히 컸습니다. 서울대학교를 다들 민족의 대학, 겨레의 대학이라고 하는데, 우리 서울대학이 그런 대학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해야겠다는 책무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기여는 없고 질문만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활동을 하면서 느낀 소감을 두 가지만 밝혀 부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어볼까 합니다.


첫째, 서울대가 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대학은 국내적으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왔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대학 랭킹이 크게 상승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장 발전을 이룩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국민들이 바라고 꿈꾸는 나라,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서울대학교가 견인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의 민낯과 함께 우리 대학의 모습도 드러났습니다.


미세먼지와 저출산 고령사회 문제, 계층·이념·세대·성별·지역갈등 문제, 일자리 문제 등 해결이 갈급한 사회 현안에 서울대학교가 답을 제공하고 있는가? 50년, 100년 뒤 우리나라의 미래를 견인할 연구를 하고 있는가? 천하의 인재를 발굴하고 있는가? 서울대가 학문연구(書)에 빼어나고 충실하면서도(鬱) 나라와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恕)도 또한 풍성한(鬱) 그런 대학(書鬱大, 恕鬱大)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예스’라고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머지않아 ‘예스’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저는 보았습니다. 윤의준 연구처장께서 지난 7월 25일 평의원회에서 발표한 ‘산학협력단 혁신 추진방안’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많은 평의원들이 정말 계획대로 실천되었으면 좋겠다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박수를 보내게 된 것은 서울대학교가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견인할 수 있도록 연구 및 연구비 관리를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정부와 사회가 서울대학교에 결과로 말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천하의 인재가 교육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기회균형선발 제도를 운영 중에 있으며 또 우리 사회의 균형발전과 형평성 제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100년을 내다보면서 증거에 근거하여(evidence-based)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수시와 정시의 비율에 대해서 정부와 사회가 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요구를 합니다. 한때는 학부제를 요구하고 또 다른 때는 학과제를 지지합니다. 한때는 전공이 통합되어야 BK를 지원하고 또 다른 때는 분리가 되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 오로지 그것 하나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서울대학교에 널려 있는데 주요 결정을 바깥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이고 나라와 국민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대학이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한 규제는 받아야 하지만, 결과 상태로 규제하는 것이 훨씬 더 목표를 달성하는데 용이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말은, 우리 대한민국을 국민들이 꿈꾸고 바라는 나라,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미래에 기필코 만들고자 하니 그대 서울대학교는 그 기대에 부응하라는 말입니다. 서울대학교에는 진정으로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전적으로 신뢰하고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하여 서울대학교가 결과로 말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소망, 즉 적극적 책무성과 완전한 자율성이 서로 연결된 바람이 오세정 총장님의 리더십 하에서 많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재직하는 동안 오로지 감사할 일뿐이었는데, 떠나는 순간에도 기대를 가지고 떠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합니다.


*이 칼럼은 지난 8월 30일 열린 교수정년식 때 김병섭 모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의 대표 인사말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