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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2019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골프 매너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느티나무 칼럼 윤영호 본지 논설위원


윤영호(사회복지81-85) 동아일보 전문기자 본지 논설위원


10여 년 전 일이다. 골프를 좋아한 언론계 선배의 초청으로 함께 라운딩을 할 기회가 있었다. 주말 골퍼들이 대개 그렇듯 모처럼 필드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잔뜩 기대를 안고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그날 라운딩은 지금껏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선배의 다른 면모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평소 후배들 사이에서 ‘원칙’을 유난히 따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간단한 술자리에서도 골프가 화제에 오를 때면 “골프는 매너 운동”이라면서 “최소한 골프 룰은 한번 정도는 읽어보라”고 권유하곤 했다. 그런 선배였기에 골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필자로선 그와 처음으로 라운딩을 하면서 그에게 골프 매너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라운딩 초반부터 금방 그의 성격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점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분위기를 조금씩 얼어붙게 했다.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갈 만했다. 호승심이 강한 사람이니 골프에서도 후배들을 이겨보고 싶겠거니 하고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후반 들어 파(par) 3홀에서 한 그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친 티샷이 그린 앞 해저드에 빠지자 스스로 멀리건(mulligan 최초의 샷이 잘못됐을 때 벌타 없이 다시 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선언하더니 또 한번 티샷을 한 것. 멀리건은 동반자들이 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동반자들 모두 비슷한 심정인 듯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처음으로 함께 라운딩을 한 고향 친구는 많은 것을 깨우쳐줬다. 우선 플레이 시작 40분 전에 골프장에 도착해 보니 그는 이미 와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필자를 위해 미리 골프장에 등록하고 받아놓은 라커룸 번호표를 건네줬다. 친구 사이에 민망할 정도였다. 그와 라운딩을 하는 동안 그런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초보자인 필자 뒤를 따라다니면서 공을 찾아주고 플레이를 하는 데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말 골퍼들은 누구나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고 싶어 하기에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그럼에도 싫은 기색없이 라운딩 내내 ‘굿 샷’을 크게 외쳐 주는 등 필자를 격려해줬다.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언론계 선배의 태도는 전형적인 ‘내로남불’ 스타일이다. 지금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드물긴 하지만 요즘에도 가끔 골프장에 갈 때 떠올리는 사람은 그때의 고향 친구다. 복잡한 골프 룰은 잘 모르지만 그 친구처럼 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동반자들을 배려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당연히 동반자가 봤을 땐 필자도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고향 친구는 골프뿐 아니라 평소 인간관계에서도 향기가 묻어나는 사람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그러나 말로는 원칙을 앞세우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만 그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은 누구나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조 국 법무부장관 딸과 관련한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2030세대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동문에게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는 우선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