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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2019년 8월] 기고 에세이

여기는 우즈벡: 교육 소프트웨어 수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

설원태 우즈베키스탄 국립세계언어대 교수



교육 소프트웨어 수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


설원태
영어교육77-83
우즈베키스탄 국립세계언어대 교수



우즈벡, 국가발전 위해 교육수준 향상 절실
외국계 대학, 외국인 교수 초빙에 적극적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한국어 수요 늘어
인하대, 여주대 등 진출해 한국어·경영 강의



필자는 2015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 4년간 8개 학기 동안 코이카의 자문관 신분으로, 그리고 국립세계언어대의 교수 신분으로 우즈벡의 대학에서 수업을 해 왔다. 이번에 모처럼 긴 여름 방학을 맞아 휴가를 보내려 서울에 왔다. 집에서 총동창 신문을 읽으면서 나의 우즈벡 대학 경험을 이 공간에서 동문들과 공유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기고를 자청했다.

필자는 서울에서 중등학교 영어교사, KBS-세계일보-경향신문 기자(25년여), 동북아역사재단 홍보교육실장 등을 거친 다음 우연한 인연과 행운으로 인해 우즈벡에 갔다. 영어교육(학사, 석사수료)과 저널리즘(언론학 박사)을 공부했고, 아마도 당분간 더 그곳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는 우즈벡 정부가 지원하는 국립대학들, 그리고 이들과는 전혀 별개로 운영되는 외국계 대학들이 병존한다. 필자가 4년째 몸담은 세계언어대나 작년 9월 신설된 저널리즘대학(필자는 여기서도 두 학기 강의했음) 등 우즈벡의 대학들은 교육부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국립대학이다. 이에 비해 타슈켄트인하대학교(Inha University Tashkent, IUT) 등 외국계 대학들은 우즈벡 교육부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외국계 대학 중에는 웨스트민스터대(영국), 싱가포르대(싱가포르), 토리노대(이탈리아)를 비롯해 러시아계 대학이 몇 개 들어와 있다. 2019년 7월 말 현재 타슈켄트에서 운영되고 있는 외국계 대학은 10여 개에 이르는 것 같다. 한국계 대학으로서는 가장 먼저 진출한 인하대를 비롯해 최근 시작된 부천대, 여주대가 있고, 아주대도 곧 개교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모두 분교 형식이다.



타슈켄트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세계언어대 본부 건물 앞에 선 필자. 본부 건물의 대리석 표면에는 학교 이름이 우즈벡어와 영어로 제시돼 있다. 우즈벡의 공공건물들은 대체로 흰색의 대리석으로 표면을 장식한다. 한국어과는 2년 전 신설됐고, 9월이 되면 새로 입학하는 1학년을 비롯해 2, 3학년이 공부하게 된다.


타슈켄트에 진출한 외국계 대학들 중에는 웨스트민스터대가 꽤나 알려져 있고, 기타 몇 개 대학들은 대체로 몇 개의 제한된 과목들을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우즈벡에서 ‘대학’이라 하면 여러 개의 단과대학을 갖고 있는 한국의 대학보다는 규모가 상당히 작다. 대체로 몇 개의 학부를 둔 단과대 정도의 규모이다. 타슈켄트에서 운영중인 러시아계 대학들은 당연히 러시아말로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교육의 큰 흐름이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바뀌는 도중에 있기 때문에 우즈벡 정부는 영어로 수업을 제공하는 외국계 대학을 선호하는 것 같다.

한국계 대학의 경우는 여기에서 다소 특수성을 갖고 있다. 우즈벡을 비롯해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한국어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물론 여러 동남아 국가에서도, 심지어는 세계적으로도, K팝 또는 K푸드 등 ‘한류’의 바람이 일고 있는 상황이어서, 우즈벡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한국어로 다른 과목들을 가르칠 여지가 커지고 있다. 인하대(IUT)의 경우 경영학, 컴퓨터공학 등 몇 개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전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1년전 타슈켄트에 진출한 여주대의 경우 ‘한국어-경영학과’라는 이름으로 한국어와 경영학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와 경영학을 동시에 가르치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국어로 수업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우즈벡 학생들이 한국어나 경영학을 4년간 전공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통상적이겠으나, 이들 두 가지를 4년만에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약간의 의문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아무튼 이 두 가지를 엮어서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대학은 유아교육과도 운영하고 있고, 독립적으로 한국어 강좌도 여럿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세계언어대의 경우 2018년 9월 미국 웹스터대학(Webster University)과의 협약 아래 1년짜리 영어교육(TEFL) 전공의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언어대의 통역학부 건물에 미국인 교수요원이 파견돼 운영되는데 미국대학측이 ‘거의 완전한’ 전권을 갖고 분교 형식으로 학사를 운영하고 있다. 우즈벡에선 통상 한 학년도가 두 학기(9~1월, 2~6월)로 나뉘는데, 여기서는 4개 학기로 나눠 융통성 있게 수업을 운영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미국대학측은 1~2명의 최소한의 교수요원을 남겨 학사를 운영 중이다. 작년 9월 처음 시작했을 때엔 4~5명이 와서 수업을 했으나 그후 자체 선발한 우즈벡 교수요원들에게 다른 과목의 수업들을 맡기고 있다.

이런 형식의 대학 운영에 대해 세계언어대 총장 라히모프 박사는 “우즈벡 측이 건물 학생 등 필요한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웹스터는 교수요원, 교재, 교육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면서 미국식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우즈벡에 진출하는 외국계 대학이 거의 부담을 지지 않는 운영방식을 마련해 준 것 같다.

주목할 점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대학이 금년 9월부터는 다른 우즈벡 대학의 건물에서 몇 개의 학과를 추가로 신설해 운영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필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저널리즘 학사 및 석사과정도 포함돼 있다. 아마도 지난 1년간의 TEFL과정 운영을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지난 4년간 체험한 우즈벡 대학의 교육체계는 한국보다는 다소 느슨하다. 교수, 학생, 교재, 학사운영 등 전반적인 분야에 허점·약점이 보인다. 자세한 말을 할 수는 없으나, 예컨대 필자는 지난 4년 동안 학생들이 수업을 위한 대학교재를 들고 오는 것을 본 바가 없다. 필자가 아는 한 우즈벡 대학의 교수요원들 중 20% 정도만이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이런 대학교육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우즈벡 정부는 한국 미국 등 외국계 대학과의 공동 학사운영(joint programs) 또는 외국인 전문가의 영입을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우즈벡에서는 대학생들의 비율은 동년배들의 7~8% 수준에 불과하다. 또래 중 ‘공부 잘 하는’ 학생들만 대학에 간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대학교육이 보편화 단계에 들어가 70~80%가 대학에 입학한다. 또한 우즈벡 사회에는 대학교육을 통해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대학교육 수요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추세도 외국계 대학들이 우즈벡 진출을 시도할 만한 여건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내려가고 있다. 먼 이국 땅에서 필자가 듣는 한국의 소식은 부정적인 것이 적지 않다. 암울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좌우가 충돌한다고 한다. 1990년대 말 IMF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는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기가 필요해 보인다. 우즈벡을 비롯한 개발 도상국들과의 인적-물적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고 한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교육 소프트웨어의 수출을 적극 연구해 봐야 한다. 필자가 최근 읽은 국제정치 분야의 한 영문서적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교육분야(해외유학생의 미국 입국 및 미국대학의 해외진출)에서 상당한 수입을 내고 있다고 한다. 많은 돈을 들고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 대학, 대학원으로 가는 다수의 한국학생들을 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국을 보자. 다수의 개도국들에서는 ‘한류’의 붐이 있지 않은가? 이런 큰 흐름을 타고 한국어 또는 영어로 한국의 고급 교육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는 방안을 적극 연구해야 한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유학생들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우즈벡, 베트남, 중국 등 여러 나라 유학생들이 다수 한국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한국인 대학생의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 ‘대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 수가 감소하는 학과들은 통폐합되고 있다. ‘줄어드는 학생’, ‘남아 도는 교수요원’ 등 대학위기를 해결하고 한국과 개도국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어느 정도 선진 수준에 올라 있는 한국의 교육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는 것. 이 방안이야말로 한국의 대학을 되살리고 나아가 약화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성장 동기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리는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