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97호 2019년 8월] 뉴스 모교소식

80동 지하 1층엔…유리창에 눈 다친 솔부엉이, 골절 고라니

수의대 야생동물센터 탐방



80동 지하 1층엔…유리창에 눈 다친 솔부엉이, 골절 고라니

수의대 야생동물센터 탐방


야생동물센터는 서울시에서 모교에 위탁해 운영하는 기관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센터 직원들. 왼쪽부터 이유진 재활사, 하민종 수의사, 염명섭 행정실장, 연성찬 센터장, 장현규 수의사, 김태훈·고명균 재활사.



지금까지 1700여 마리 구조
시설·인력·예산 태부족
안락사시켜야 할 땐 아쉬움



“엑스레이 촬영 중입니다. 문을 닫아주세요.” 지난 8월 2일 연성찬(수의학84-88) 센터장의 안내를 받아 야생동물센터를 방문했을 때 방금 이송된 고라니 한 마리가 의료기구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하민종 수의사가 뒷다리를 모아 잡았고, 장현규(수의학10-14) 수의사가 앞다리와 머리를 고정시켰다. 제 목숨 살리려고 애쓰는 것을 모르는지 고라니의 눈빛은 겁에 질려 있었다.


모교 관악캠퍼스 80동 지하 1층에 자리한 ‘서울시야생동물센터’는 조난 또는 부상을 당했거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야생동물의 체계적인 치료·관리를 위해 2017년 7월 출범했다. 야생동물 치료·연구와 맞물려 수의대 재학생들에게 살아있는 현장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모교의 우수한 인력과 첨단 의료·진단 장비를 연계 운영하는 것. 이러한 관학 협력을 통해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 인공증식 및 복원 기술의 연구와 야생동물 유래 인수공통 감염병 관리의 업무까지 수행한다.






엑스레이실의 문이 닫히고 김태훈 재활사의 안내를 받아 야생동물센터의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센터로 이송된 동물들은 건강상태와 치료 경과에 따라 집중치료실, 재활관리실, 방사준비실 등 세 곳으로 나눠 관리됐다. 각각 운동금지-운동허용-운동가능에 해당되는 동물들이다.


집중치료실은 사람으로 치면 중환자실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고성으로 우짖으며 우리 안을 사납게 오갔다. 아픈 녀석들을 성가시게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유리창에 부딪쳐 날개를 다친 파랑새가 특히 그랬다. 같은 파랑새라도 성향은 개체마다 달라서 어떤 녀석은 가만히 앉아 상대방을 응시하는 것으로 경계심을 드러낸다. “파랑새들 바로 옆에 입원해 있는 새는 솔부엉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324-3호인 이 녀석도 유리창에 부딪쳐 오른쪽 각막을 다쳤어요. 새들은 유리창이나 전신주, 전깃줄 등과 충돌로 인해 센터로 이송돼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센터에 입원 중인 동물은 조류가 압도적이었다. 지난 2년 동안 구조된 동물 1,696마리를 종별로 나눠봤을 때도 파충류 22마리, 포유류 303마리인 것에 비해 조류는 1,371마리로 80%에 육박한다. 집중치료실뿐 아니라 재활관리실, 방사준비실에도 조류가 많았다. 재활관리실에는 건강엔 이상이 없으나 너무 어려 자립하지 못하는 새끼 새들이 많았다. 어린 직박구리 5마리는 서로 다른 어미에게서 태어났으나 비슷한 시기에 센터로 이송돼 합사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해 같이 지내는 게 사회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식사 시간에도 하나의 횃대에 꼭 붙어 앉아 숟가락으로 떠주는 먹이를 받아먹었다.


방사준비실엔 다 낫고 다 자라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4마리가 한가로이 비행연습을 했고, 시멘트벽으로 나뉜 그 옆방엔 너구리 몇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행정실 구석에 작은 울타리를 쳐 어린 고라니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주어진 사명에 비해 센터의 시설은 열악했다. 조류 및 포유류 진료실 등 4개 공간을 제외하면 70평 남짓한 지하 1개 층과 건물 옥상에 마련된 간이 계류장이 전부였다. 센터 인력 또한 4학년 재학생의 실습을 제외하면 센터장을 비롯해 수의사 2명, 재활관리사 4명, 행정실장 1명, 환경담당 1명 등 9명에 불과했다. 직원들 처우 또한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정도라고 한다. 새끼 고라니가 풀을 뜯어먹는 옆에서 직원들의 고충에 대해 들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엔 인력 또는 재정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장현규 수의사는 야생동물에 대한 처치와 치료는 반려동물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치료와 재활을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만큼 건강을 회복한 후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야생동물은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반려동물과 달라서 치료를 한들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방금 엑스레이 촬영을 했던 고라니도 목뼈 하나가 이탈한 정도의 부상이었어요. 민가의 경작지에 둘러쳐진 그물에 목이 걸려 마구 몸부림치다 다친 거죠. 경미해 보이지만, 안락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시간을 갖고 지켜볼 수도 있겠지만 가용한 시간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느 한 동물에만 신경을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치료는 물론 치료 이후의 상황까지 빠르고 정확히 판단해야 된다는 게 수의사로서 가장 큰 부담이자 스트레스라고.


“애초부터 안 되겠구나 싶은 녀석들은 차라리 편하게 보내줍니다. 될 것 같았고 그래서 열심히 치료하고 돌봤는데 결국 죽어버린 녀석들은 허탈감마저 느끼게 하죠. 인력과 재정적 측면에서 여유가 생긴다면 안락사 비중을 줄이고 더 많은 동물들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 힘을 기울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센터에서 분석한 2018년 한 해 기준 야생동물 구조결과에 따르면 총 769마리를 구조해 그중 109마리가 안락사됐으며 폐사한 동물도 266마리로 적지 않았다. 그래도 275마리가 치료 및 재활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후 방생돼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정 떼기 힘들까봐 일부러 이름도 안 지어주고 죄수처럼 번호로 부른다. 방생 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야생동물들, 섭섭하지 않냐는 물음에 김태훈 재활사는 “녀석들이 다시는 저를 볼 일이 없는 게 잘사는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나경태 기자


후원 및 문의:02-880-8659






관련기사: 연성찬 야생동물센터장 인터뷰 “혼자 다니는 새끼 고라니, 길 잃은 게 아닙니다”

https://snua.or.kr/magazine/view.asp?seq=14566&gotopage=1&startpage=1&mgno=&searchWord=&mssq=0200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