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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019년 7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사법정의 리포트

명사칼럼


송상현(법학59-63)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2015년 9월 유엔총회에서는 좀 더 낫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인류사회의 청사진으로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 17개를 채택해 빈곤, 불평등, 기후, 환경, 번영, 평화와 정의 등 전세계적 도전에 대응하고자 한다. 이 중에서 16번째 목표(SDG 16)는 다른 발전목표와 함께 인류생활의 평화, 정의 및 포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SDG 16.3은 구체적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를 촉진하고 2030년까지 모든 사람이 정의에 접근할 수 있게 함(access to justice for all)을 목표로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정의에 관한 특별임무팀(Task Force)은 아르헨티나와 시에라레온의 법무장관 및 네덜란드의 통상 및 개발협력장관, 그리고 파키스탄 출신의 인권운동가 히나 질라니를 공동의장으로 하고 많은 유엔회원국, 국제기구, 시민사회, 민간부문을 망라한 파트너십을 발족했다.


이 팀은 전문가를 동원하고 모든 기존 연구자료를 검토함은 물론 많은 토론을 거쳐 2019년 4월 말 ‘저스티스 리포트’를 발표했다. 7월 9일부터는 고위급 정치포럼이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필요를 충족하는 공정하고, 형평적이고, 관대하고, 개방적이고 사회적으로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려는 비전과 상통한다. 정의는 17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 전체를 관통하는 끈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의가 없으면 빈곤의 종식과 불평등의 완화가 불가능하고 가장 소외된 그룹에 미칠 수 없으며 평화와 포용을 촉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팀은 수억명의 사람들이 정의에 접근할 수 없는 세상에서 과연 이러한 목표 달성이 가능한지 연구하면서 소수자에게만 제공되는 정의를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질 수 있는 모델로 전환하고자 한다. 과거의 사법개혁은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유리된 채 존재하는 사법제도에 손을 댔으므로 대부분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제는 발상을 전환하여 사법제도의 중심에 사람을 우선적으로 강조함으로써(people-centered justice) 지속가능한 발전의 중심에 정의가 자리잡도록 했다. 정의에 관한 사람중심의 접근방법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어서 보건, 교육, 주거 및 고용 등 다른 분야와도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저스티스 리포트는 최초로 전세계적인 정의의 공백을 측정하여 통계를 마련했다. 세계적으로 2억5,300만명이 극도의 불평등 속에서 살고 있다. 그중에서 4,000만명은 현대판 노예이고, 1,200만명은 무국적자이며 약 2억명은 정의를 추구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15억명은 자기의 법률분쟁을 해결할 수 없고, 45억명은 법이 제공하는 각종 기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의미 있는 정의에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여성과 아동, 빈민, 장애인, 소수자 출신들이 가장 큰 정의의 결핍을 경험하고 있다. 많은 정부가 훌륭한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하면서도 정의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기 때문에 정의는 항상 빠진 연결고리이다. 정의의 요소가 없이도 경제는 얼마 동안 활발하게 돌아가고 교육과 보건문제는 개선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의의 뒷받침 없이는 사람들이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할 수 없고 국가사회발전은 공고해지지 않는다. 소외와 불평불만 및 부정불법이 만연하면 정치적 불안정의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아랍 스프링은 그 한 예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언젠가 큰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보면 전쟁 등 갈등은 매년 1인당 2,000달러씩 비용을 발생시키고, OECD국가의 경우 정의의 문제에서 초래되는 소득상실, 건강손상 및 구제비용은 매년 GDP의 0.5% 내지 3% 수준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사람중심의 정의에 1달러를 투자하면 전쟁위험 감소로 인하여 16달러의 이익이 돌아온다고 한다. 과테말라의 경우 부당면책과 싸우고 부패와 대결하기 위하여 사법정의 시스템을 재건하고 보니 우선 살인율이 5%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폭력과 범죄, 토지나 주거 또는 이웃과의 분쟁, 가족분쟁, 금전이나 채무 또는 소비자 문제에 관한 분쟁, 공공서비스에의 접근과 관련된 다툼, 고용과 영업에 관한 법적 수요 등 6개 분야가 전형적으로 정의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정의를 제공하는 단일 처방은 없다. 각국은 자신의 고유한 맥락과 우선순위를 존중하면서도 인권 기준 및 2030 유엔 의제를 달성하겠다는 약속에 맞추어 정의에의 접근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엘리트는 현상유지에서 이익을 얻으므로 사법개혁에 저항하고, 법률전문가들은 시스템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접근방법 또는 다른 정의의 제공자에게 개방적이면 위협을 느낀다.


정의의 갭을 메꾸려면 변화에 대한 정치적 저항과 맞서서 정의를 추구하는 지도자들 간에 상호신뢰를 조성하여 옳은 정책과 투자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국내 행동계획은 사람중심의 접근방법을 채택하여 예방적 정의를 실현하고 사람들에게 사회와 경제에 모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수립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Justice for All)’ 이라는 2030 유엔 의제의 약속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정의를 위한 파트너십이 구축돼야 한다. 또한 정의의 리더십을 강화하며 정기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전략을 수립하고 자원을 배정하며 파트너십을 개발해야 한다. 법률전문가는 사람중심의 정의를 위하여 정부와 긴밀하게 작업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정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소외된 자에게 스스로 손길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민간부문은 사람들의 정의수요를 저렴한 비용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국제적, 지역적 기구들은 국내이행을 일관되게 지원하여 각국이 정의를 위한 SDG목표를 달성하도록 좀 더 밀어주고, 공익재단과 자선가들은 사람중심의 접근방법과 우선순위에 따라 예방적 정의를 중점 지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