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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019년 7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동문회의 득과 해

동문 광장



권오율 (상학56-62) 벤쿠버지부 회장

 

인간관계는 동서양 사회문화에 따라 많이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사회 구성원의 특징이 되는 공통적인 생활상태, 사고방식, 가치관을 의미한다. 이런 문화는 긴 세월 동안 주어진 환경, 역사, 종교, 사회제도, 언어 등을 통하여 인류생활에 수반되는 여러 문제와 욕구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형성되며, 세대를 두고 전달된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여러 측면으로 분석, 측정할 수 있지만, 대인관계에서 제일 뚜렷이 나타난다. 캐나다나 서구 문화의 기본은 개인주의인데 비해, 한국이나 동양은 집단주의이다. 개인주의는 사회구성의 핵심체인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개개인의 가치판단이나 권한을 집단의 것보다 우선으로 본다. 이에 반해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가치판단과 권한을 우선으로 본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단체와 더불어 발전하고, 단체 구성원 간의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자기 단체의 구성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구성원들 간에 화목하고 같이 발전하려 한다.


집단주의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유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 중국, 일본 등에 지배적인 문화이다. 한

국의 집단주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높다. 국제경영분야에 잘 알려진 한 측정에 의하면, 한국의 집단주의이념이 82점인데 비하여 캐나다는 20점이었다.


한국 사람이 중시하고 속하는 단체가 많지만, 가족, 동문, 고향 등이 중요한 단체 기반들이다. 한국사회의 동문회는 서양과 많이 다르다. 서양에도 동문회(alumni association)가 있지만, 그 취지가 대학과 졸업자를 연결시켜 기부 등을 통하여 대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고, 동문 간의 유대감은 없고, 한국의 동문 간에 느끼는 우정이나 정서는 전혀 없다. 동문 유대를 따지면 캐나다에서는 사회의 비난이나 조롱을 받는다.


한국의 동문회 중요성은 동양에서도 가장 높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에 양반만이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고, 과거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서당에서 공부를 했다. 서당 학동들은 양반 그룹이라는 의식도 있었고, 필자도 사변 후 서당의 경험을 잠시하였는데, 높다랗게 창문이 하나 달린 작은 방에 비좁게 앉아 받는 서당교육은 무척 엄하여, 훈장의 벌도 받고 매도 맞고, 갖가지 심부름도 하면서 학동끼리 가까워지고, 자연히 평생을 두고 서로 도우면서 지내게 되어 ‘동창생’이라는 유대가 생겼다.


이런 전통을 가진 동창회가 이제 서당교육이 없고, 같은 교문을 나왔다고 ‘동문회’라 부르면서 한국의 그룹사회에서 중요한 단체로 위치하게 되었다. 집단주의사회에서는 대인관계가 둘로 나누어져 크게 차이가 있다. ‘아는 사람’ 또는 ‘같은 단체 회원’에게는 대단히 친절하고, 서로 신뢰하고, 법을 어기더라도 서로 도우려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나 ‘비회원’에 대해서는 무척 불친절하고 믿지도 협조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유대만으로는 태부족이고,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서 오랜 전통이 있는 동문회가 사회생활의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집단주의의 특징이 한국 사회의 여러 면에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큰 재벌들이 창업자 가족들에 위해 운영되고, 한국의 고도 발전시기에 몇몇 일류대학 졸업자들이 주축이 된 고위 공무원들과 영남지역 출신 정치가들과 단합하여 영남지역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지역이 중요한 단체 기반으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런 학벌의 중요성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알려지는 수능시험결과에 의해 대학입학이 결정되어 수능서열과 대학서열이 일치되는 것이 보이고, 정객의 학벌을 밝히는 뉴스 미디어가 있고, 결혼 상대를 구할 때 학벌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학벌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제 한국사회도 많이 발전되어 학벌이 본인의 사회적 발전을 위해 제공하는 특별한 은전은 많이 희박해졌지만, 동문이라는 친교감은 이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본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동문 간의 우정을 높이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대인 간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도 동서양이 다르다. 서양에서는 처음 만나도 곧 친구가 되지만 한국문화에서는 동문이나 고향같이 연고가 있어야 우의가 형성된다. 특히 문화와 종족이 다른 외국에서 사는 많지 않은 동문들 간의 끈끈한 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큰 득이 된다고 본다.


동문회가 주는 해도 있다. 동문 등을 근거로 한 집단사회의 특징이 같은 회원들 간에는 서로 신뢰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일반 대인간의 신뢰도는 28%인데 비하여 캐나다는 42%였다. 대인간의 신뢰가 낮으면 여러 가지의 경제·사회적 피해를 유발한다. 사회갈등(conflict)을 높인다. 대통령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2%가 사회갈등이 심각하다고 하고, 27개 OECD 연구대상국에서 26번째로 높다. 사회갈등이 높으면 사회발전의 척도로 보는 사회융합(cohesion)이 낮아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사회융합지수는 22.2점으로 30개 OECD 연구대상국에서 29번째로 낮다. 대인 간의 신뢰가 낮으면 경제거래의 비용을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이것이 동문회 같은 단체들이 야기시키는 사회적 해로서,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를 낮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