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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2019년 6월] 문화 신간안내

저자와의 만남: ‘6월항쟁과 국본‘ 6월항쟁의 주역 5인의 생생한 경험담

공동저자 김도현 (정치61-11) 전 문체부 차관


6월항쟁의 주역 5인의 생생한 경험담





‘6월항쟁과 국본‘ 공동저자
김도현 (정치61-11) 전 문체부 차관



박종철(언어84입)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1987년 6월항쟁의 결과 우리는 상당한 정도의 민주주의와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항쟁 20년 뒤 나온 ‘6월항쟁을 기록하다’1~4(6월항쟁계승사업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2011년 서중석(역사67-84)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6월항쟁’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6월항쟁 당시 주역으로 활동했던 서울대 동문들이 당시의 기억을 함께 쓴 ‘6월 항쟁과 국본’(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간)이 나와 뜻깊다. ‘6월항쟁과 국본’은 6월항쟁의 엔진이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의 결성과 활동을 주도한 실무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해방 이후 최대 민주대연합 조직이었던 국본의 실체를 이해하고, 6월항쟁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고민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6월항쟁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필진으로 국본의 탄생과 6월항쟁의 전략전술을 마련했던 ‘4인 실무기획팀’의 성유보(정치61-65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김도현(정치61-11 민주화추진협의회)·황인성(독문81졸 개신교) 동문, 이명준(천주교) 씨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지역운동협의회 이명식 씨가 참여했다.

지난 5월 23일 만난 김도현 동문은 “6월항쟁에 따로 기획자나 지휘부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날짜를 잡고 구호나 참여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국본 안에서 이견조율, 문안작성, 연락 등 실무적 일을 맡은 몇 사람이 그때의 기억을 모으고 기록해 보자는 뜻에서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책은 5장으로 구성됐다. 성유보 동문이 개괄 격인 1장 ‘광주5·18에서 6월항쟁까지’를 쓰고 나머지 네 사람이 각각 그들이 속했던 단체를 중심으로 ‘국본’과의 관계를 풀었다. 성유보 동문은 출간을 보지 못하고 원고작업 중인 2014년 유명을 달리했다. 김도현 동문은 “이 책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거의 소개가 안 됐다. 이 책에 정성을 들인 친구 성유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2012년 여름, 성유보와 6월항쟁에 참여했던 분들이 더 기억력을 상실하기 전에 항쟁 당시를 되돌아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해서 이 책이 나오게 됐어요. 그런데 책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친구가 저 세상으로 가버려서…. 성유보가 쓴 첫 장은 200페이지 분량에 달해 한 권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어요. 80년대 초 독재정권과 관계했던 무수히 많은 사람과 민주화에 함께했던 많은 단체, 사람들의 빽빽한 기록만으로도 울림이 있습니다.”

김 동문은 6월항쟁 당시 정치학과 61학번 동기들의 활약상도 들려줬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났을 때 대학 후배고 해서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동기인 최 환 당시 공안부장이 박종철의 화장을 막고, 동기 안상수 검사가 부검해서 고문사라는 것을 확인했죠. 그때 형무소에 있던 동기 이부영이 박종철 사건의 범인이 축소됐다는 사실을 동기 김정남에게 알리고 김정남은 글을 써서 함세웅 신부, 김승은 목사에게 전해 세상에 발표가 됐지요. 데모는 나와 성유보가 계획을 세웠고요. 여섯 사람이 사전에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됐지요.”

김 동문은 1964년 4학년 때 한일굴욕외교 반대시위 참여로 제적됐고, 이후 윤보선, 장준하, 백기완 선생을 도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민추협 기관지 민주통신 주간, 영남일보 논설위원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 시절 문화체육부 차관, 북한 사리원금강국수공장 후원회장을 역임했다. 2010년 다시 학업에 들어가 100매 분량의 졸업논문까지 제출하고 2011년 졸업장을 받았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