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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2019년 5월] 문화 전시안내

화제의 전시: 손용수 작가 “그림 그리는 것도 불도의 수행 과정”

불교계가 주목하는 작가 손용수의 ‘호법신’전



상해에서 활동하는 손용수(서양화90-98) 작가가 지난 4월 국내 데뷔전시를 열었다.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불교의 신, ‘호법신’을 주제로 해 불교계가 먼저 주목했다. 손 동문은 자신을 미술작업이라는 수행을 하는 수행자로 자처한다. 평론가 김대신 동문은 그를 가리켜 ‘그림 그리기를 숙명처럼 여기며 작업을 깨달음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4월 29일 구로동 안국문화재단 갤러리AG에서 손 동문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시장 양쪽 벽면에 건 호법신을 표현한 그림이 마치 사찰 천왕문 양쪽을 지키는 사천왕을 연상케 했다.


“전통적으로 호법신은 민간신앙이나 전설에서 고승, 장군, 호랑이 등을 신격화해 다루거나 도깨비, 용왕, 바위 등으로 상징했습니다. 저는 호법신을 자성(自性)에 존재하는 공생체, 제 자신의 선한 기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숯과 물감을 대칭적으로 찍어내는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호법신을 표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가상인물 ‘양 사나이’가 모티브다. 용맹정진을 돕는 호법신과 어떤 연결고리를 발견했을까.


“소설 속 양 사나이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기록합니다. 양 사나이가 제 모든 삶을 기록하고 있다고 상상해 봤습니다. 수많은 업을 지으며 참회도 하지 않고 무지의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기록하면서 무척 안타까워할 것 같았어요. 그는 무언가 제게 얘기를 전하고자 하지만 듣고도 모르는 척하기 일쑤입니다. 지치고 희미해져 가는 제 양심의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지각하고 인식하는 모든 것이 호법신이요, 양 사나이가 기록하는 것처럼 선악이 공생하는 자성을 깨달음으로써 호법신이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일종의 추상적 탱화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럴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내어주면서도 “추상과 구상을 굳이 나누고 싶지 않다. 신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니 상상하는 대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 동문은 “불교에 입문하면서 삶의 기준과 예술작업의 의미를 새로이 다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모교 졸업 후 KBS ‘애니멘터리 한국설화’ 제작 등 애니메이션 작업에 몰두했다. 프로그램 종영 후 중국미술학원에서 애니메이션 석사과정, 미술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그 무렵 상해 용화선원의 지엄 주지스님을 만나 티베트 불교에 귀의하고 ‘중현’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 접한 ‘공성(空性)’의 개념은 작업을 멎게 했고, 시작하게도 했다.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생각에 빠져 하루종일 점 하나 찍지 못했다. 비싼 임대료, 잘 갖춰놓은 재료도 ‘업’으로 느껴졌다. “예술은 철학에 가까워지면 얼어죽고, 종교에 가까워지면 타죽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힘든 시기”였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어느 새벽 숯을 갈아 접착제와 섞어 캔버스에 발랐는데 물밀듯 ‘하심(下心)’이 일었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다는 ‘가만난득’을 깨달으니 작업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감사했고, 반드시 죽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수명무상(壽命無常)을 깨달아 작가의 수행인 작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작이 수행자의 초심이 담긴 그 때의 작품들이었다.


상해에서 커뮤니티 아트 스튜디오 ‘DRAWING DNA’를 운영하는 손 동문은 중국동창회 화동(상해)동문회에서도 활동 중이다. “한국사회의 복잡함과 긴밀함이 답답했던 것 같다”며 “50여 민족이 같이 살다 보니 중국은 무슨 일을 해도 ‘저 사람은 저런가보다’ 인정하는 느낌이 있고 그런 자유로움이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작업하되 힘을 빼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