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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호 2019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엑스레이 사진서 단서 발견해 의료과실 입증”

의사 출신 검사 이선미 동문


“엑스레이 사진서 단서 발견해 의료과실 입증”

의사 출신 검사 이선미 동문


의료분쟁서 전문지식 발휘
환자·의사 양쪽 입장 경청


인터넷방송 진행자를 통칭하는 ‘유튜버’가 2018년 초등학생 희망직업 5위에 올랐다. 최근 10년 동안 1위를 지켰던 교사는 운동선수에 밀려 2위가 됐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이들의 장래희망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부모가 선망하는 자녀의 직업은 의사, 판검사 등 이른바 ‘사’자 들어가는 전문직이 여전히 상위권을 차지한다. 연봉과 사회적 평판이 훌륭한 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가질 수 있는 ‘꿈의 직업’이다. 그 꿈의 경계를 넘나든 모교 동문이 있다. 의사 출신 공인전문검사 이선미(의학02-08) 동문이 바로 그 주인공. 선한 눈매와 서글서글한 말투로 검사의 냉엄한 이미지를 확 바꾼 그를 지난 1월 2일 서울중앙지검에서 만났다.

“분야는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점에서 의사와 검사가 서로 통하는 것 같아요. 몸이 아픈 환자들은 대개 마음부터 지쳐있게 마련이고, 법정 공방을 준비하는 피해자들 또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의학 전문지식은 물론 환자를 대하면서 익힌 친절함까지 검사로서 제 소임을 다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모교 졸업 직후 동네 의원을 개원한 이 동문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법을 공부해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품고 있었다. 진작부터 법률공부에 관심을 기울였던 셈. 개원 1년 후 때마침 로스쿨제도가 도입돼 의학 지식을 접목시켜 법조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이화여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사법시험과 달리 정해진 수학기간이 있고 학위의 성격도 짙어 용기가 났다고.

“저희 어머니는 처음엔 반대하셨어요. 의사로서 이미 자리를 잡아가는데 왜 굳이 힘든 공부를 또 하려 드느냐고 말리셨죠. 로스쿨 첫 학기 땐 어머니의 그런 걱정에 절절히 공감했어요. 학문적 논리의 체계가 완전히 달랐거든요. 풀어서 답을 제시하고 그 과정을 식으로 보여주는 의학 공부와 달리 법 공부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말이나 글로 풀어내는 과정 또한 평가의 대상이었어요. 머리를 따라와 주지 않는 손 때문에 답답해서 시험지에다 표를 그려 내기도 했었죠.”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이 동문은 변호사시험에 이어 검사지원시험까지 한 번에 합격했다. 임관식 땐 되레 가장 기뻐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검사 7년차였던 지난해엔 보건의약분야 2급 공인전문검사로 지정 받기도 했다. 공인전문검사 제도는 검사의 전문성을 강화시켜 날로 진화하는 범죄에 대응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3년 도입됐다. 공정거래·보건의약·식품안전 등 45개 분야에서 현재까지 174명이 활약하고 있다.

“2014년 춘천지검 재직 당시 흉통을 호소하며 내원한 20대 초반 환자가 돌연 사망했습니다.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본인의 과실은 없다고 주장했고 그 근거로 엑스레이 사진 등을 제출했죠. 경찰 또한 ‘혐의없음’으로 송치했지만 저는 엑스레이 사진에서 대동맥 파열 징후를 찾아냈습니다. 이렇게 의사의 과실을 밝히는 것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의사가 왜 그러한 처방을 내렸는지 이해하고 참작할 수 있습니다. 상식이 아닌 전문지식에 바탕을 둔 수사는 사건 당사자 모두의 신뢰를 구하는 지름길입니다.”

의학과 법학, 양쪽에 걸친 전문지식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듣는 귀가 돼준다. 그렇게 양쪽 입장을 잘 듣고 상대방에게 전달하다 보면 기소까지 안 가고 해결되는 사건이 의외로 많다. 잘잘못을 가리고 단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쪽도 억울함 없이 원만히 합의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 검사의 지론. 엄정한 판결이라고 해도 피해자에게 아무런 위안을 줄 수 없거나 형을 마치고 나온 피의자가 보복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가 초래된다.

“제가 맡는 사건은 하루에도 수십 건이지만 사건당사자들에게 저는 어쩌면 평생에 한번 만나는 검사일지 모릅니다. 항상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어요. 더욱이 모교 출신들에게 거는 일반인들의 기대는 상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스럽고 긴장감도 갖게 됩니다. 서울대 동문 모두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줬으면 합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