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88호 2018년 1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명사칼럼 : 국격·치안 ‘두 토끼’ 잡는 신속정확한 난민심사

황우여(법학65-69)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최근 제주 예멘 난민 논란을 계기로 난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난민에 관한 부정적 소식을 많이 접하다 보니 여론도 난민에 대해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난민 문제는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익을 균형 있게 생각하며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난민은 주로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또는 공산·독재 국가의 박해에서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나 극단적 이슬람주의와 같은 종교적 절대주의 하에서 박해 받는 종교인들이 그 대상이 돼왔다. 우리나라엔 주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난민 신청을 해왔다.


우리에겐 전재용 선장의 소중한 이야기가 있다. 1985년 베트남 패망 후 보트 피플로 망망대해를 헤매던 96명을 수많은 배가 보고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지 구조하진 않았다. 전 선장도 관여하지 말라는 회사와 당국의 지시 때문에 처음엔 구조를 포기하고 지나쳤지만, 망설이던 끝에 회항해 죽음 직전의 베트남인들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 일로 전 선장은 회사에서 쫓겨났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게 됐지만, 그가 구해 한국으로 데려왔다가 미국으로 보내진 난민들은 의사, 변호사, 사업가가 돼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다. 그들이 생명의 은인인 전 선장을 찾고 찾아 결국 만나면서 이 이야기가 전 세계에 전해졌고, 필자는 국회인권포럼 대표로서 전 선장을 유엔 난센상 후보로 추천해왔다.


난민은 피난민이 아니다. 난민문제는 정치·종교·인종적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인간에 대한 보호 차원에서 형성된 인권의 문제다. 박해 받지 않으면서 모종의 정치적·종교적 목적을 갖고 침투하거나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입국은 난민 자체가 아닌 것이다. 난민을 가장하거나 난민법이 정하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돌려보낸다.


우리나라는 2009년 필자의 대표 발의로 2011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이 국회를 통과해 2013년 7월부터 시행됐다. 난민법을 입법하게 된 동기는 우리 민족의 뼈저린 경험에서 비롯된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각에서다. 법무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유엔 기구들과 긴밀한 협의 아래 최근 대두된 난민에 관한 법적 논의를 나름대로 충실히 반영한 법이다.


성서에도 나그네를 선대하라는 규율이 있듯 어려움에 처한 나그네 된 타국인을 선대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선행이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곤 했던 조상들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고 우리도 어려움이 있거나 난이 일어나면 만주나 일본 같은 이웃 나라로 건너가 피신을 해왔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전 세계로 흩어졌던 일이 바로 얼마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인류의 전통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랜 미덕이다.


난민은 그중에서도 일정 기준을 충족한 좁은 범주의 사람들에게 피난하는 권리(asylum right, Asylrecht)를 인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공화·평화의 나라다. 이젠 세계의 지도적 국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담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난민법을 정비해 난민을 소중히 수용하고 올바로 운영해야 한다. 난민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물고기같이 올바른 정신을 갖고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인사들로서 존중받아야 할 우리의 손님이다. 역사적으로 난민들은 대부분 입국한 나라의 귀한 인재로 역할을 해왔다. 난민은 단순한 출입국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국격에 맞게 새로운 차원의 난민법으로 처우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난민법을 갖게 된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안전에 위해가 될 사람의 입국을 철저히 막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재는 6개월을 기준으로 심사하고 있으나 2년, 3년으로 장기화되는 경우엔 불필요한 장기체류에 따른 문제가 파생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나 난민신청자 모두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당한 난민을 귀한 손님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난민이 아님에도 밀입국의 방편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을 빠르고 정확히 구분해냄으로써 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의 선량한 풍습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켜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속정확하고 엄격하게 난민심사를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보완돼야 한다. 판정의 잘못으로 난민 인정이 기각되고 강제송환 될 경우 그에겐 죽음과 같은 박해가 다시 찾아오는 형국이라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예견된다. 중국에서 강제소환된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잔혹하게 처형된 예를 들 수 있다.


아울러 무비자 정책은 난민법을 악용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으므로 무비자를 허용하는 조건을 명확히 하고 엄격히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인정 결정 취소 소송은 특별절차로 신속 전문적으로 종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난민문제에 대처해야 하는 세계 지도적 국가 간에 일정한 기준과 절차를 완비해 허술한 점이 없도록 협력해야 한다. 예컨대 몇몇 나라에 난민이 몰리거나 기후환경 또는 전통문화가 너무 달라 난민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경우 가급적 인근 국가에서 균형 있게 배분, 수용하고 대우와 절차를 균일하게 하는 것 등이 국제적으로 요구된다. 궁극적으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난민들을 일정한 여건이 형성되면 귀국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요컨대 난민법은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난민을 보호하는 데 주안점이 있는 법이므로 유엔 난민협약의 정신 아래 “의심스러울 때는 난민의 이익으로”라는 인권존중의 정신이 관철돼야 한다. 그래야만 혈혈단신으로 몸만 나온 난민신청자의 경우라도 언어나 변호능력이 없다시피 한 열악한 처지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를 받게 될 것이며 대한민국을 제2의 조국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