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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호 2005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노년에도 가슴은 따뜻하고 싶다

 “전 대법원장 한강 투신 자살기도….”  TV를 켜고 무심코 저녁 뉴스를 보는데 진행자의 이 말에 깜짝 놀라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TV 볼륨을 한 단계 높여 들어보았으나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내용인즉 이 분이 근래 허리 통증으로 많이 괴로워했으며 통원 치료를 받던 중이라며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나는 한 나라의 대법원장까지 지낸 분의 인생을 하직하는 마지막 순간이 너무도 처절하다 싶어 마음이 아프고 아무리 몸이 아프기로서니 어떤 말못할 사연이 있었기에 그 나이에 그 무시무시한 한강 물에 투신을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도무지 애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궁금해서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 1면을 차지한 그분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兪泰興(86) 전 대법원장이 1월 17일 오후 5시 45분쯤 한강에 투신해 숨졌다. 투신이유는 건강문제로 추정된다. 장남에 의하면 “아버지가 3주 전부터 극심한 허리 통증에 시달렸으며 2주 전부터는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하고 싶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 한 지인은 “부인과 사별한 것이 60년이고 많이 외로워 하셨다.” … 한 대법원 관계자는 “어떤 논평을 내 놓을 입장은 아니나 최근에는 여러 가지 노환과 합병증으로 육체적 고통도 심해지고 우울 증세도 보이셨다는 얘기도 들린다.” 요약하자면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오늘을 살고 있는 노년들이 얼마나 소외된 외로움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지를 절감했기에 그냥 스쳐 지나칠 수가 없다. 한 나라의 대법원장까지 지낸 분이 먹고 입을 것이 없어 괴로웠던 것이 아니고 노환과 우울증이 고통의 주원인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노년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가정의 제일 어른으로서 대접받던 시대였다면 노환의 아픔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는 자손들로 해서 외로울 시간이 없었을 것이기에 자살까지야 했겠는가? 이 문제는 비단 이분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기에 -젊은이들이 노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기에- 노년의 생각을 피력하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아무리 젊어 보인다하나 지하철을 무료 승차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 노년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소리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노년들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식들이 잘 되는 것만 바라면서 가능하면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홀로 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8•15광복을 겪고 6•25전쟁의 폐허를 경험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필사의 노력으로 살아온 덕분에 오늘날 자녀들을 최고학부까지 공부시키고 자식들에게 가능한 한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려고 본인은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것 쓰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자제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휴우…' 하고 긴 숨을 내쉬면서 이제 자식들도 제몫을 하게 된 것 같아 이제는 본인을 위해서 살아 보려하나 이미 몸이 늙고 병들어 쇠약하거나 아니면 부부간에 한사람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린 후 이기에 그 외롭고 비참함은 이루 설명할 길 없다.  어디 그 뿐인가? 늙어 쪼글쪼글해진 모습에 자세조차 휘어져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불쌍한 노인들을 보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내 모습도 저렇게 되려니 하며 비참하고, 금방 한일도 생각나지 않아 혹여 치매증상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일쑤이기에 아무리 속이 넓은 사람이라도 노년이 되면 불안과 초조함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해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년들은 그저 맑은 정신으로 팔다리 제대로 움직이다가 아프지 말고 자는 듯이 눈감기를 바라는 것이 노년들의 소박한 소망인 것이다.  “자식이야 울타리지. 키울 때 재롱떠는 것 본 것으로 부모의 행복이라 생각해야지, 무엇을 더 바라나”하고 흔히들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는 노인네들이 “빨리 죽고 싶다”, 장사꾼들이 “남는 게 없다”, 노처녀들이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공인된 거짓말이나 다를 게 없다. 어찌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성스럽기를 바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부모에게 어떤 큰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부모를 저희들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만 있어도 부모들은 푸근한 행복을 느낀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식들이 좋은 일 생겨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면 “저를 이렇게 잘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라고 하나 어찌된 영문인지 결혼을 하고 나면 부모의 은혜는 땅속으로 묻혀 버리고 만다.  오직 제 아내, 제 남편, 제 자식만이 가족인 듯 “그간 아내를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다. 무던히 기다려준 아내가 고맙다”, “아이들과 못 놀아주어 미안하다” “모든 것이 뒤에서 잘 보살펴준 남편 덕이다” 등등 하면서 직계가족에 부모는 포함시키지 않는 요즈음 자식들의 정서를 읽으면서 이를 지켜보는 노년의 부모 마음이 얼마나 허한지를 자식들은 아는가?  핵가족 시대라 부모와 따로 사는 자식이 당연한 것 같아진 세상이긴 하나 자식들 집에 부모님 사진 걸어 놓고 며칠에 한번 정도 눈인사라도 하는가? 부모 집에는 자식들이며 손자들 사진 줄줄이 걸어놓고 오가며 눈길 주고 기뻐하는데 그 속에서 나온 자식 몸들은 부모의 존재는 아예 멀리 가버리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호통을 칠 일이나 너무도 작아진 부모의 위상은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서운하다는 말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노년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서운하다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 공허함은 자식놈들은 아는가? 몸이 늙었다고 가슴도 메말랐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무리 늙었어도 심장의 맥박은 뛰고 있고 가슴은 따뜻하다. 사랑을 주고받고 관심을 기울여 주면 행복하고 소외당하면 젊은이보다 더 외롭고 쓸쓸할 것임을 배려해 볼 수 있지 않은가?  글자 그대로 이제는 주연에서 조연으로 그것도 지나면 엑스트라의 신세가 되고만 노년들은 가슴에서 찬바람을 일으키는 외로움에 때로는 자살하고 싶은 유혹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한다. 자식들이여! 노년의 부모 마음을 헤아려 보라! 비록 몸은 늙었어도 가슴은 살아 있다. 그 뛰는 가슴에 찬바람이 일지 않고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도록 당신들의 배려와 관심을 기울여 보라!  중국의 옛말에 `인생이 흘러가는 것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人生 如 白駒過隙)'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여! 당신네들도 언젠가는 늙어지리니 어른들 앞에서 조금은 겸손하고, 조금 더 배려하고, 노인들의 경륜에서 얻어진 삶의 지혜를 슬기롭게 받아들여 보라.  그리하여 언젠가 당신들이 우리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에게 불효했노라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말고 되짚어 생각해도 부모에게 최선을 다 했음을 인정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닐 수 있는 현명한 생활 태도를 지녀봄이 어떠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