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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2018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영화 ‘안시성’ 제작 박재수 수작 대표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영화판 뛰어드니 다들 미쳤다고 하더군요”



400억짜리 영화 185억에 제작, “542만 관객동원 자부심느껴”


영화 ‘안시성’이 542만여 관객을 끌어 모으면서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 2위를 차지했다.(10월 9일 기준) 20만 당나라 대군과 그에 맞선 고구려 병사들의 싸움을 스크린으로 옮겨온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제작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거액의 돈이 투자되는 만큼 웬만한 흥행 성적으론 본전을 뽑기도 힘들 터, 제작사 입장에선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시성을 제작한 영화사 ‘수작’의 박재수(기계설계87-91) 대표는 “하루하루가 드라마틱하고 희로애락이 휘몰아치는 직업을 쫓아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안시성 개봉 36일차를 맞은 지난 10월 24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수작 사무실에서 박재수 동문을 만났다.


“영화업계에선 다들 이건 못 만든다고 했습니다. 예산이 400억은 소요될 것이라며 국내 영화시장 규모가 빤한데 그만한 돈이 투자될 리 없다고요.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모두 의기투합해서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했어요. 순제작비 185억원 갖고 만들어냈죠. 그것도 물론 큰돈이지만 시나리오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어요. 주연 배우가 부상을 입거나 촬영 중 비라도 내렸다면 더 힘들었을 겁니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 없이 무사히 제작을 마쳤고 완성도 면에서도 호평을 받았죠. 흥행 성적 면에선 아쉬움이 더러 있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다들 재미있다고 하세요. 그럼 된 거죠.”


안시성은 소재부터가 기존 한국영화와 달랐다. 사극은 보통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마련인데 안시성은 1,400년 전 삼국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다뤘다. 또한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시키거나 사회적 이슈를 내세워 관객을 모으는 흥행 공식을 깨고 성을 뺏으려는 자(당 태종 이세민)와 지키려는 자(안시성주 양만춘) 사이의 ‘공성전’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 동문은 이러한 차별성이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이라 확신했고 오랜 준비기간 끝에 모험을 감행했다.


안시성 전투와 관련된 정사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단 세 줄뿐. 양만춘이라는 성주의 이름조차 16세기 명나라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를 통해 처음 등장했으니 실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팩트는 중국의 대표적 명군 당 태종이 서기 645년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5,000여 병사들이 지키는 안시성에 가로막혀 88일 만에 후퇴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군이 60여 일간 공들여 토산을 쌓았다는 것, 토산이 안시성 쪽으로 무너지면서 도리어 역공을 당해 고구려의 수비진지가 됐다는 것 정도만 확인될 뿐이죠. 왜 무너졌는지, 그전엔 어떻게 싸웠는지 등은 알 수 없는 부분이에요. 영화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하죠. 일각에선 정확히 고증했느냐 하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영화는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하지도 않고요. 개연성을 바탕으로 장면을 구현하고 관객들을 납득시키면 돼요. 저를 비롯해 안시성 제작에 함께한 이들 모두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 안시성의 큰 줄거리는 주필산 전투로 시작해서 세 번의 공성전을 거쳐 고구려 지원군의 도착 및 당군의 퇴각으로 완결된다. 그중 양만춘이 쏜 화살에 당 태종이 한쪽 눈을 맞는 마지막 장면은 야사에 근거하며, 고구려 신녀와 석궁을 쏘는 여군 등은 허구적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다.


박 동문은 모교 공대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 취득 후 전공을 살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일정한 출퇴근과 고액연봉, 무난히 승진하면 임원이 될 수도 있는 출세가도가 눈앞에 있었지만 거대 조직의 일부분으로 사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고.


“어른이 됐다고 ‘어떻게 살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멈추진 않잖아요. 관성에 따라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왔지만 틀에 박힌 일상을 반복하며 빤한 인생을 살 것 같았습니다. 재미없더라고요.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몸의 일부처럼 느끼며 모험을 즐기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영화 마니아까진 아니었어요. 한 달에 한두 편 흥행영화를 찾아 관람하는 보통의 관객이었죠.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영화판에 뛰어들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삶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기질의 차이인 거죠. 영화를 제작하는 매순간이 제겐 가슴 뛰는 모험이었습니다.”


1998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연출부 막내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딘 박 동문은 2001년 유니코리아 문예투자에 입사하면서 투자 파트로 전향, 영화 제작자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닦았다. 2003년 독립해 영화사 수작을 설립했으며 설립 5년 만에 개봉한 첫 영화 ‘7급 공무원’이 흥행 성공을 거두면서 명성을 떨쳤다. 2008년 ‘차우’, 2013년 ‘노브레싱’, 2014년 ‘널 기다리며’ 등을 제작했다. 작품 기획의 전문성을 갖춘 합리적인 영화 제작사로 평가 받는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