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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호 2005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정략적 판단으로 `덫'에 걸린 정치인들

지난 2월 23일 행정수도 이전 후속 대책이 여야간 합의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말이 합의였지 그 과정은 그야말로 진통에 진통을 거듭한 난산이었다.  정치권이 행정수도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은 지난해 10월.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 이후였다. 두 달 뒤인 12월, 국회에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마련을 위한 특위가 구성됐다. 하지만 특위 테이블에 마주 앉은 여야의 입장 차는 상당했다. 열린우리당은 16개 부처가 옮겨가는 행정도시 건설을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자족적 기능을 갖춘 다기능 복합건설 안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내부적으로 7개 부처 이전이란 안을 들고 있었다. 합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불만을 가진 한쪽이 한동안 특위 활동에 불참하는가 하면 마지막 부처 이전 규모를 정할 때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결국 여야는 23일 12부 4처 2청이 연기•공주 지역으로 옮겨가는 내용의 최종 합의문에 서명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은 원천무효라며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한나라당의 경우 특히 내부 반발이 거셌다. 한나라당은 결국 당내 의총서 표결을 거쳐 어렵사리 여야간 합의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후 이에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은 국회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처럼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과 이에 따른 후속대책 마련의 후폭풍이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여야 모두 이를 두고 지방분권, 균형 개발 대책이라 부른다. 하지만 지금의 본질이야 무엇이든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정략으로부터 시작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나온 것은 2002년 대선 때다. 선거 막바지 당시 민주당 盧武鉉후보는 충청권 공략을 위해 신행정수도 건설이란 공약을 내놓았다.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후보측은 이를 맹비난했다. 대선 승부는 결국 충청권에서 결판이 났다. 한나라당 내에선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내세우지 않은 것이 패인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대선 이후 한나라당호를 이끌게 된 당시 崔秉烈대표는 2003년 정부가 내놓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찬성해 주기로 결정한다. 2004년 17대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 법에 반대했다간 충청권에서 한 석도 건질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었다. 결국 나라의 수도가 어디에 정해지든 우선은 표부터 얻고 보자는 정략이 우선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충청권 의원들의 눈물 어린 호소 앞에 타 지역 의원들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결국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던 16대 국회 막바지에 국회를 통과한다. 하지만 당시 이 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판단이 얼마나 안이했었는지는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드러나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헌재의 결정을 분석해 보면 결국 그 속에 정치권에 대한 준엄한 경고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도 이전과 같은 국가 대사를 정파간의 정략적 이해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후 한나라당 崔秉烈 前대표는 이에 대해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실제로 이 법이 실행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록 야당이긴 했지만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수도 이전 문제를 얼마나 고민 없이 접근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또 다수당이 되고 2007년 대선에서 집권한다면 신행정수도 건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는 말도 언급했다. 두 번의 대선 패배 후에도 여전히 다수당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나라당의 한 단면을 보여준 모습이다.  崔秉烈대표가 물러난 뒤 당을 맡은 朴槿惠대표에게도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큰 짐이 됐다. 총선 전 충청권 유세에서 그는 “신행정수도 건설 작업이 잘 준비중”이라며 주민들을 달랬다. 하지만 총선이 끝난 뒤 당내엔 반발하는 의원들이 많았고 급기야 헌재의 위헌 결정까지 나자 충청권 민심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 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탄핵 충청권에선 단 1석만 건진 한나라당으로서는 충청권에서 완전히 버림받느냐, 기사회생하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었다. 朴대표는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충청권 대책 마련에 나섰고 이후 여야간 합의를 거쳐 후속 대책이 확정된 것이다.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정략적인 판단을 거듭해 가는 정치인들은 결국 그 `정략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은 그야말로 `천년 공사'가 아닌가. 그 공사를 두고 그저 표 좀 더 얻어 보겠다고 근시안적으로 판단하던 그들은 결국 그로 인해 씁쓸한 모습으로 퇴장했다.  이제 더 이상 그 결말이 뻔히 보이는 정략적 판단이 아닌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 나가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