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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2018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미래로 가는 작은 디딤돌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본지 논설위원

미래로 가는 작은 디딤돌



신예리
영문87-91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본지 논설위원


‘사회주의의 새로운 면모’ 얼마 전 뉴욕타임스 1면에 눈길을 확 잡아끄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곳곳에서 치러지는 예비선거에서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후보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해온 미국이란 나라에서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각광받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기성 세대와 비교해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청년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날로 가중되는 현실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분석이다.

앞서 2016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친 것 역시 청년들의 분노가 밑거름이 됐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가 내건 ‘공짜 등록금’ 공약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일부 부유층 자녀를 빼곤 대다수 청년들이 수억원 대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고 졸업 후 10년, 20년이 지나도록 빚더미에서 탈출할 길이 없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마저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13년이 걸렸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비싼 학비와 그 때문에 생긴 눈덩이 같은 빚이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는 거다.

우리나라 사정 역시 미국과 판박이라 할 만하다. 분배를 중시하는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져 10년 만에 최악의 양극화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청년들은 줄어든 일자리와 낮은 임금, 높은 집값과 비싼 등록금이라는 4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정부가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장학금을 대폭 늘리긴 했다. 그럼에도 20대 청년들이 진 빚의 규모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취업이 힘들다 보니 구직 관련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 학자금 외에 생활비 대출까지 받는 젊은이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신용불량’인 청춘이 허다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모교 총동창회가 벌이는 장학사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올 들어서만 지난 8월 말까지 학부생 및 대학원생 1,390명에게 36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선배들의 정성으로 학비 걱정을 덜게 된 학생들 중엔 졸업 후에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는 경우도 나온다고 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져버린 이 시대에 선후배 간에 주고받는 따뜻한 장학금이 젊은이들을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