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호 2005년 3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눈물 흘리며 숯불 피우던 조리실습 시간
단칼에 깨진 공대생과의 미팅 아쉬워
`서투른 매너로 미움 살 일도/ 세상 깊이를 가름 못해 허방 짚을 일도/ 돌아갈 줄 모르는 혈기에 빗장뼈 부러질 일도/ 생애의 동반자를 찾아 외눈으로 밤거리를 쏘다닐 일도/ 무시로 파도쳐 오는 욕심을 쫓아 불나방 같이 불에 뛰어들 일도/ 모두 썰물 같이 빠져나간 노년의 빈자리에/ 오늘은 청매화 하얗게 꽃피어 沈境이 눈부시다' 까치 노을 붉게 물드는 하늘을 저공으로 비행하는, 한 해 한 달 한 주일이 화살 시간으로 달려간다. 2006년 입학 50주년 기념으로 `여행의 꿈'을 계획하고 달마다 모여 기금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는 60대에 만나도 언제나 20대로 돌아가는 행복한 청춘이다. 1950년 중학교 입학은 6•25전쟁으로 피난생활, 1953년 고교생활은 `정전 반대, 휴전 반대' 데모로 교실을 비우기도 하던 때. 전쟁고아, 전쟁미망인, 이산의 슬픔과 굶주림이 집집마다 겹겹으로 쌓여 비틀거릴 때. 세계 구호물자 밀가루와 분유로 배고픔을 딛고 일어서던 시절이다. 1956년 딸에게도 대학의 문을 열게 해준 부모님께 늘 감사한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사주 센 여자의 몫이라고 외면하던 시절 가정학과에 딸을 보내 현모양처 婦德의 길을 가도록 권유하던 아버지. 조리실습 시간엔 조별로 풍로에 숯불을 피우느라 매운 눈물 흘리며 부채질로 불꽃을 피우던 날, 가스 오븐레인지, 세탁기, 청소기, 냉장고는 유학한 교수님들의 꿈같은 이야기였다. 아궁이에 불 때서 밥 국을 끓이던 세월. 그럴듯한 낭만 하나 없이 수업 끝나면 집에가 어머니 일을 돕던 때 나는 金南祚교수님의 문학특강 한 과목을 더 신청했다. 교수님은 숙제로 제출한 내 시의 한 連을 예로 들면서 칭찬을 해 주던 기억이 지금도 잊을 수 없다.(아버지 산소에 다녀와서 쓴 시였음) 3학년 2학기쯤 공대생들과 과 미팅이 약속된 날, 설레는 가슴으로 학교에 가니 과대표(李義淑) 어머니가 이 일을 아시고는 단칼에 잘라 버린 일, 생전 처음 부푼 희망을 풍선같이 날려보낸, 파란 하늘… 이루어 졌다면 신나는 사랑의 파트너가 됐을까? 21세기는 남녀 공히 자아실현의 시대. 여성도 전문직 각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든 여성에게 찬양의 박수를 크게 보낸다. 그러나 뒤돌아 볼일 하나가 더 있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가 인내와 근면과 창의력으로 일구어 뿌리내려온 전통음식과 예절을 계속 전승해 자손 만만대까지 이어가야 한다. 어른 공경하기, 배우자 서로 존중하기. 세계적인 석학 아놀드 토인비가 한국에 와서 남긴 말에 귀 기울려 보자. “한국이 인류문화에 기여할 단 한가지는 孝이다.” 효 사상은 세계적인 사상으로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전승되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김치가 세계인들의 건강식으로 사랑받는 오늘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들의 무궁 무진한 지혜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