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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호 2005년 3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만사는 `때'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요즈음 주말마다 재미있고 졸립다. 자정 무렵부터 일요일 거의 새벽 두시 가깝게 `겨울연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그 앞 시간대에는 고현정 출연의 `봄날'이라는 드라마도 있고, 朴景利선생의 `토지'도 있다. TV 앞에 그것도 드라마 앞에 몇 시간씩이나 붙어 앉아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별로 知的이지 않고 무슨 중독증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별 도리 없이 재미있다. 우리 연기자들의 놀랄 만한 연기력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원래 방송 당시에는 내가 장관으로 재임(99.6∼2003.2)하던 때였는지 `겨울연가'를 하는지 어쩐지도 몰랐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어 의원외교에 나서면서 `윈터 소나타'를 모르고서는 한국인이라고 하기가 좀 뭣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지난달에는 한일의원연맹 모임과 우리 민단의 신년하례식 참석을 위해 일본 동경을 다녀오는 길에 환경부 장관시절에 가까운 사이가 된 가와구치 요리코 현 총리외교특보(전 외무대신, 환경성 대신)를 만났다.
여기서도 겨울연가는 빠지지 않았다. 가와구치 장관은 자신은 물론 고이즈미 총리도 윈터 소나타를 즐겼거니와 NHK에서 우리말 사운드와 일본어 자막방송을 하는 것을 보면서는 한국말과 일본말 사이에 그렇게 느낌과 발음이 비슷한 줄을 처음 알았노라 했다.  일본측이 꼽는 `욘사마' 열풍의 연유는 대강 이러했다. 첫째, 한국의 정보통신기술 등의 눈부신 발전은 세계 속의 일류 한국의 위상과 함께 문화에 대한 우월성을 부각시키는 토양이 되었을 법하다. 둘째, 일본은 한국 축구선수들과 필드에서 부딪치면 거기서 엄청난 `기'를 느낄 정도로 한국의 `끼'는 대단하다. 셋째, 좀 말하기가 뭣한데, 장기적 경제침체에 짓눌린 탓인지 일본 남편들의 性情이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다는 해석도 끼어 있었다. 넷째, 남녀간 로맨스에서 서양식이 아니라 동양식이면서도 솔직한 사랑의 표현이 일본의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의원외교 현장에서 실감한 것은 욘사마로 대표되는 한류 열풍이 아시아를 거의 풍미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이다. 金元基국회의장의 동남아 5개국 순방을 수행한 길에서도 한결같이 한류가 화제였으니 고위급 의정활동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화두였던 것이다. 우리가 학생시절 교과서에서도 읽었던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는 세대교체를 하면서 `다이나믹 코리아'로 진화되어, 월드컵의 `붉은 악마',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낳고, 남의 나라 얘기인줄만 알았던 국제영화제 시상대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출장을 다녀오면서, 이에 대한 보고를 위해 찾아뵌 金大中 前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정보통신기술 진흥을 위해 전력투구한 것이 열매를 맺고 있고, 문화산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푸는 결단을 내린 것이 오늘의 한류로 이어지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누가 우리를 보고 창의력이 없다고 했나. 정보통신기술과 한류, 그런 것들이 창의력 없이 나올 수 있었을까. 지식기반경제사회에서 창의력은 모든 분야에서 발전의 최고 동력이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의 열매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에는 이 선진사회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후발국들의 추격이 녹록치 않다. 그 창의력을 어떻게 한껏 키울 수 있겠는가가 열쇠이다. 그렇게 본다면 선진한국의 진입은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는 데서 으뜸가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산업이 `한류'라는 바람을 일으키며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의 고유성과 글로벌 감각의 융합이 있어 가능했다는 생각도 든다.  정부에서 일한 경험에 비추어, 선진국 문턱을 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은 물론 문화나 경제도 모두 풀 건 과감히 풀어 자율경쟁에 맡기고 정부는 민간부문의 역할을 지원하는 합리적 조정자의 역할로 선회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규제의 벽을 허무는 일은 이제 국경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한류가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만큼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전향적 자세도 절실하다. 세계화가 우리 삶의 방식과 時空 개념의 절대성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오늘날, 수동적 `보호'의 논리 속에 안주하는 것은 금물이다. 세계를 무대로 굴뚝 없는 산업 `한류' 생산과 세일즈에 나서야 한다면, 좁게는 스크린 쿼터나 넓게는 FTA에 대해서도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만사는 `때'가 가장 중요하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되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