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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2018년 9월] 문화 작가의 정원

버지니아 울프의 몽크 하우스

울프의 말년이 깃든 ‘글 쓰는 오두막’



작가의 정원 9. 버지니아 울프의 몽크 하우스


울프의 말년이 깃든 ‘글 쓰는 오두막’


글·사진 문현주(농가정74-78) 가든 디자이너


지난 5월 영국에 갈 일이 있었다. 요즘 영국은 브렉시트 문제로 외국인의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런던에 도착하니 입국장의 심사관은 풍채가 넉넉한 중년 부인이었다. 방문 목적을 묻기에 나는 몽크 하우스(Monk’s House)의 정원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녀는 환히 웃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좀 어렵지만 자신도 그녀의 정원을 좋아한다며 입국 도장을 꽝 찍는다. 사실 나도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은 친숙한 것 같은데 그녀의 소설 내용이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서 나오는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와 그녀의 마지막 자살 사건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정원 잡지에서 본 그녀의 정원과 작업실인 오두막이 보고 싶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철학자이며 문학평론가인 스티븐(Leslie Stephen)의 딸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정식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교육과 지적인 집안 분위기 그리고 독학으로 공부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또한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 모임은 남동생 에이드리언을 중심으로 케임브리지 출신의 작가, 예술가 그리고 비평가들이 모여 런던 블룸즈버리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던 그룹이다.


그녀는 1905년부터는 ‘타임스’지 등에 문예비평을 썼으며, 1915년 ‘출항’을 시작으로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이라 불리는 ‘자기만의 방’과 ‘3 기니’ 그리고 의식의 흐름을 써 내려가는 새로운 기법으로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했다.


그녀가 마지막 20여 년을 살았던 곳이 몽크 하우스이다. 이곳은 서식스(Sussex) 주에 있으며 런던에서 100㎞ 정도 남쪽에 있다. 버지니아는 1912년 오빠 토비의 대학 친구인 레너드 울프(Leonard Woolf)와 결혼해 런던에서 살았다. 1919년 울프 부부는 우즈 강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로드멜(Rodmell)의 몽크 하우스를 구입해 별장으로 사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들은 런던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 왔다. 버지니아는 1941년까지 그리고 남편은 1969년까지 남은 생을 이곳에서 지냈다. 사실 버지니아보다 남편 레너드가 정원 애호가였으며 50년을 이곳 몽크 하우스의 정원을 가꾼 사람이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50미터쯤 떨어진 마을 공터 같은 곳에 있다. 팻말을 따라 골목길을 올라오니 길가에 붙어 있는 주택의 주차장 안에 사람들이 서성인다. 그곳에서 입장권도 팔고 몇 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다. 주차장을 나와 조금 올라가면 작은 문이 있다. 문주에 내셔널 트러스트 팻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원은 화단과 텃밭, 과수원, 잔디밭 그리고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다. 주변에는 부분적으로 낮은 담이 둘러져있다. 그리고 담 밖으로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연한 자주색 목련 꽃이 아직 몇 송이 남아 있는 낮은 담 위에 버지니아의 흉상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담의 한쪽 끝에 레너드의 흉상이 있다. 마치 그들의 독특한 결혼생활처럼 하나의 담에 따로 떨어져 있다. 그리고 초원 쪽으로 작은 오두막이 보인다. 버지니아의 작업실이다. 처음에 레너드는 주택 주변에 있는 창고를 개조하여 버지니아의 작업실을 마련하여 주었다.


하지만 전망과 골목의 소음 등 주변 여건이 산만해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려워 정원 끝에 있는 지금의 장소로 작업실을 옮긴다. 그녀는 이곳을 ‘글 쓰는 오두막(writing lodge·사진)’이라 불렀다. 오두막 내부는 4×8미터 정도의 작은 공간이며 그녀의 책상이 한가운데 놓여 있다. 큰 창 너머 멀리 보이는 구릉의 능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책상 앞으로 커다란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나가면 네다섯 명이 둘러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작은 테라스가 있다. 그 테라스와 오두막 위로 오래된 마로니에 나무와 커다란 느릅나무가 폭넓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그녀의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