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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호 2005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총장님들 힘내세요

5•16 다음해인 1962년 봄쯤으로 기억된다. 삼엄한 군정기였던 당시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군정 연장을 반대하는 데모가 일어났다. 당연히 군 병력과 경찰이 출동해 교문을 봉쇄했고, 교수님들은 학생들을 제지하느라 진땀을 빼셨다. 별 두 개가 붙은 모자를 쓴 최고위원이 검은 안경을 쓰고 현장에 달려왔다. 마침내 權重輝총장님이 단상에 나타나 학생들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단상 옆에서 검은 안경의 최고위원이 두 손을 점퍼 주머니에 찌른 채 서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소리쳤다. “야, 손 빼. 누구 앞에서 감히 손 넣고 서 있어. 손 못 빼!” 학생들의 고함이 높아지자 장성은 황급히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뒤로 슬며시 물러섰다.
40년도 더 된 옛날 얘기를 꺼낸 것은 대학 총장 얘기를 좀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립대 총장은 장관급이긴 마찬가지지만 총장의 권위나 총장에 대한 사회의 존경•배려 같은 것은 세월이 갈수록 떨어져 온 것 같다. 40여 년 전 최고위원은 권력자였지만 당시 학생들에겐 그런 권력이나 계급과는 상관없이 총장에겐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학생들뿐 아니라 사회 일반의 인식도 그랬던 것 같다. 실제 정치권이나 권력측에서도 학자와 학문•학교에 대해서는 일정한 존경과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의식이나 인식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과거엔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 사립대 총장이라면 정부에 나가더라도 대개 총리로 영입되었다. 어떤 총장들은 권력의 집요한 간청을 끝내 물리치고 학문 외길을 꼿꼿이 걸었다. 지금도 모교의 鄭雲燦총장처럼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길을 굳건하게 가는 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총장 출신이 전국구 의원으로, 장관으로 가는 것을 자랑으로 아는 경향마저 보인다.  누가 봐도 그것이 정략적이요 具色用 인사인 게 뻔한 데도 자기가 몸담았던 대학이나 제자•동문의 체면까지 구기면서 감투를 탐하고 정파에 가담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명문 사립대 총장이 현직에서 정부의 장관도 아닌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간 사례도 있다. 그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들끓은 것은 아직도 총장직에 대한 기대와 존경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모교의 한 전임 총장도 교육부총리로 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물러섰는데, 문제는 그 망신이 그 자신만에 그치지 않고 모교와 동문들에게까지 누가 된다는 점이다.  총리로 가면 괜찮고 그 밑으로 가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대학과 총장에 걸린 기대와 역할에 맞게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권위와 자존심은 스스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