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84호 2018년 7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긴 시간 앉아서 연습하는 단원들 건강부터 챙겨야지요”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


“긴 시간 앉아서 연습하는 단원들 건강부터 챙겨야지요”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




법률지식 겸비한 공연예술기획자
‘음악수업 2교시’로 더 친숙히

“제 개인적인 의견보단 공연에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은경(사법90-94)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 대표에게 그간의 성과를 묻자 위와 같은 답이 돌아왔다. 취임 후 겨우 120여 일이 지난 시점에서 던진 매정한 질문이었지만 답변하는 강 대표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차 있었다. 꾸준히 서울시향 공연을 찾는 관람객 및 후원자들로부터 일정수준 이상의 안정된 연주력을 보여준다고 평가받았던 것. 문화예술단체로서 역량강화는 물론 지역사회와의 동반성장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강은경 동문을 지난 6월 27일 서울시향 대표실에서 만났다.

“서울시향은 예술분야 수장인 음악감독과 경영분야 수장인 대표이사가 상당 기간 공석이었습니다. 제가 부임해왔을 당시엔 단원들도 스태프들도 많이 지쳐있었죠. 저는 뭘 하든 즐겁고 열정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움츠러든 조직 분위기부터 쇄신해 나갔습니다. 스태프 및 단원들 한 명 한 명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양한 의견을 듣고 함께 해법을 고민했어요. 서울시향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더욱 구체적인 경영구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3월 1일 임기를 시작했지만 지난 5월 23일에야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게 된 이유가 여기 있는 듯했다. 몇 해 전 박현정(교육80-84) 전 대표와 정명훈 전 예술감독 간의 갈등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고, 최흥식 직전 대표는 금융감독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 동문은 취임 직후부터 외부 미팅을 최소화하고 조직의 사기 진작과 내부 화합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여성 CEO답게 섬세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조직원들의 건강부터 챙겼습니다.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이기 위해 우리 단원들은 긴 시간 동안 앉거나 서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거든요. 육체적으로 무리가 갈 수밖에 없죠. 국내대표 의료기관 중 하나인 세브란스병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 부담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요가수업을 개설해 체형 및 건강관리에도 도움을 주고 있고요.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생활밀착형 복지혜택을 적극적으로 발굴, 확대해 나가려고 합니다.”

문화예술단체가 존립하고 발전하기 위해선 기업의 협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직원들을 위한 복지확대도 재정여건이 받쳐줘야 함은 물론이다. 강 동문은 “기업의 사회공헌과 지역사회와의 동반성장을 융합시켜 협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후원 대상 문화예술단체의 공연을 선점하고 홍보와 함께 티켓을 배부하는 식의 천편일률적 협찬에서 벗어나 기획단계서부터 아이디어를 교환,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공연에 초청받은 문화소외계층 또한 자신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수동적 향유자의 위치를 넘어선다. 기업·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되고 이는 또 한 단계 발전된 공연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예술경영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소통능력인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이라는 건 결국 언어를 초월하여 나누는 궁극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갑과 을, 제작자와 후원자, 시혜자와 수혜자 등으로 나뉘지 않고 훨씬 즐거운 공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초중등학교에 찾아가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수업 2교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우리 단원들이 교육하는 ‘오케스트라캠프’ 등 생애주기별 교육시스템을 통해 음악교육 내실화에도 기여하고 미래 관객 육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 강의전담 교수,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 전임 컨설턴트,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공연팀장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강은경 동문이지만 모교에선 법을 공부했다. 벤자민 N 카조도 로스쿨에서 지식재산법 석사학위를 받았고 2011년 모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법과 음악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는 강 동문의 독특한 이력은 그의 가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상당부분 이해가 됐다. 어머니와 아버지(강철구·법학60-64)에게서 각각 음악과 법학의 DNA를 물려받았던 것. 강 동문의 외조부는 모교의 전신 중 하나인 경성제대법문학부를 졸업했으며 제7대 대법원장을 지낸 고 이영섭 동문이다.

외조부가 어머니에게 음악 공부를 권했고 후일 모교 법대를 나온 아버지와 맺어주면서 국내 유일의 법률지식을 겸비한 공연예술기획자가 탄생하게 됐다.

“중학교 때까진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무렵 인문계로 방향을 틀었고 서울법대에 입학했죠. 예술가의 길이 정말 내 길이라면 얼마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예술 밖의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저를 충동질하기도 했고요. 주변의 기대도 있었고 사회에 기여하는 도구로 유용할 것 같아서 법대를 선택했습니다.
사법고시에도 1차 합격했지만, 문제는 즐겁지 않은 거예요. 가족에겐 비밀로 하고 공연기획사에 취업했습니다. 처우나 근무환경은 열악했지만 몰입할 수 있었어요. ‘나는 이쪽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이 섰죠. 누군가는 제 삶을 두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모르지만 저는 제 방식대로 일관되게 살아왔습니다.”

73년 역사를 지닌 서울시향은 100명의 단원들을 거느린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단체다. 1949년생 바이올리니스트부터 1991년생 비올리스트까지, 한국과 미국은 물론 체코·캐나다·폴란드·러시아·덴마크·프랑스까지,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음악가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한다. 대표로서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강은경 동문은 요즘 먼저 인사를 건네며 반가워하는 모교 동문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고.

“전공과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탓에 동창회 활동엔 좀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최근 저와 관련된 뉴스나 인터뷰가 보도되면서 잊고 지냈던 대학동기들, 같이 음악했던 친구들이 공연 끝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모교 출신 후원 회원이 다가와 몇 학번이냐고 물어보기도 하셔서 뜻밖에 학창시절을 떠올리기도 했죠. 새삼 서울대 나와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따뜻한 관심 가져주시는 많은 동문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