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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호 2018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조현민 물컵 갑질의 나비 효과

윤영호 (사회복지80-85)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본지 논설위원


총량불변의 법칙은 이른바 ‘갑질’에도 통하는 게 아닐까.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졌다고 알려진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어이없는 행태를 보면서 얼핏 떠오른 생각이다. 이미 총량을 넘어선 갑질을 계속한 조 전 전무 때문에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 일가족이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물이 섭씨 100도가 넘으면 끓는 것은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갑질을 계속하다 임계점을 넘으면 아무리 막으려 해도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조 전 전무의 행태를 보고 “터질 게 터졌다”고 말하는 대한항공 직원이 많다는 언론 보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평소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조 전 전무에 대한 회사 안팎의 불만이 높았던 셈이다.


물론 반론도 있을 법하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경영에 복귀해 갑질을 계속할 게 뻔한 만큼 ‘갑질 총량’엔 한계가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 근거로 2014년 말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올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한 조 전무의 언니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사례를 들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물컵 갑질’을 계기로 조양호 회장 일가족의 관세법 위반 등 비리 의혹이 터져나온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현아 사장도 결국 현직에서 물러났지 않은가. ‘땅콩 회항’ 사건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 일가가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갑질을 계속하는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갑질 총량의 법칙’은 유효한 셈이다.


어쨌거나 ‘조현민 나비 효과’는 한국 기업의 전통적인 승계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서민이라도 열심히 돈을 벌어 나중에 자식에게 집 한 채라도 물려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 대기업의 창업주가 경영 수업을 잘 받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 역시 당연시돼 왔다.


창업주의 기대에 부응하듯 2세 경영인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키워놓은 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시킨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 무리하게 기업을 확장하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재계에서 사라진 비운의 2세 경영인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창업주 밑에서 기업가 정신을 배웠던 2세 경영인에게 빚 진 게 많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제는 달라졌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나서서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얘기할 정도다.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해서라도 과거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부 고객인 직원을 하인 부리듯 하는 조 회장 일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조 전 전무 때문에 허공에 날린 대한항공 시가 총액이 수천 억원대라는 점에서 소액주주들도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갑질과 경영권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조 회장 일가가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고 해서 바로 경영권을 뺏을 수는 없다. 경영진 선임과 해임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고유 권한이다. 조 회장 일가는 대한항공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28.96%를 보유한 1대 주주다. 현실적으로 조 회장 일가를 경영진에서 물러나게 할 방법도 없는 셈이다.  


그럼 속수무책일까. 언젠가 모교 교수의 논문에서 읽은 대로 오너 경영인 자녀의 회사내 직급 및 직책, 연봉을 공시하되 그와 나이가 같은 직원들의 평균 연봉 및 직급 등과 비교해놓으면 어떨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자녀를 초고속 승진시키는 회사는 주식 시장에서 점차 외면 받을 것이다. 당연히 주주들이 들고 일어나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풀어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장의 힘이다.